이른바 '서학개미'로 불리는 한국 개인투자자들이 미국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인은 미국인을 제외한 국외 투자자 가운데 보유 규모와 시장 점유율 모두 압도적 1위를 차지하며 레버리지 ETF 시장에서 큰 손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이에 글로벌 ETF 운용사들 사이에서는 한국 투자자를 겨냥한 마케팅 경쟁까지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형 레버리지 ETF 보유 잔액은 156억달러, 한화로 약 23조1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레버리지 ETF'란 기초자산 가격 변동폭의 2배, 3배를 추종하는 상품으로 높은 수익 가능성과 동시에 큰 변동성을 동반한다. 한국 투자자의 보유 금액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전체 주식형 레버리지 ETF 순자산 약 1100억달러의 14%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개별 상품별로 살펴보면 한국 투자자의 비중은 더욱 두드러진다. 테슬라 주가 일일 변동률을 2배로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테슬라 불 2X’ ETF의 경우 전체 자산 가운데 한국인 보유 비중이 40%를 훌쩍 넘는다.
나스닥100 지수의 하루 수익률을 3배로 따라가는 ‘프로셰어스 울트라프로 QQQ’는 순자산 규모가 30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최대 레버리지 ETF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중 한국 투자자 지분이 11.2%에 해당한다.
반도체 업종에 집중 투자하는 ‘디렉시온 세미컨덕터 불 3X’ 역시 한국인 보유 금액이 전체 자산의 4분의 1 수준에 이른다.
이러한 미국 증시 레버리지 투자 열기는 최근 5년 사이 더욱 가속화됐다. 국내 개인투자자의 미국 레버리지 ETF 투자 규모는 같은 기간 약 26배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부동산 가격 급등과 고환율·고물가 환경 속에서 자산 격차에 대한 불안이 커지자, 장기 투자보다는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노릴 수 있는 고위험 상품으로 자금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레버리지 ETF 시장에서 제일 큰 손
한 외국계 투자은행 CLSA는 "한국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빠른 수익을 추구하는 성향을 보인다"라며 "높은 부동산 가격과 점점 심화되는 빈부격차로 인해 투기적인 거래가 횡행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한국 개인투자자의 영향력이 커지자 해외 ETF 운용사들도 발빠르게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디렉시온, 렉스셰어즈 등 미국의 파생형 ETF 운용사들은 최근 홍콩 지사를 중심으로 한국인 인력을 채용하며 국내 투자자 대상 마케팅을 집중하는 분위기다.
렉스셰어즈는 올해 초 KB증권 고객을 대상으로 미국 나스닥 시장 개장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도 했다. 해당 회사는 테슬라 주가를 두 배로 추종하거나 반대로 움직이는 레버리지·인버스 ETF를 운용하는 대표적인 운용사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국 투자자들은 한때 미국 주식 주간 거래 시장에서 거래 비중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해외 주식 투자에 적극적"이라며 "특히 변동성이 큰 레버리지 ETF 시장에서 한국 개인투자자의 존재감은 글로벌 운용사들도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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