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모제가 이어지던 가운데 대전역을 지나던 한 시민이 추모 공간을 찾아 헌화하고 묵념하고 있다. 조현재 기자
예년보다는 따뜻했다지만 여전히 추운 날씨의 대전역 앞. 모두들 뚜렷한 목적지를 갖고 만날 이들을 생각하며 수없이 발걸음 옮기지만 찾아갈 곳도, 찾아올 이도 없이 외롭게 생을 이어가다 고요히 별이 된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빈들공동체감리교회, 벧엘의집 등은 동짓날이던 지난 22일 밤 대전역 서광장에서 홈리스 추모제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올 한 해 길거리와 쪽방 등에서 세상을 떠난 20명을 기억하고 애도했다. 본격적인 동장군의 추위가 시작된 날씨 속에서 쪽방 생활인과 시민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떠나간 이들의 마지막을 애도했다. 추모제가 진행되는 공간 옆에는 추모 헌화소가 마련됐다. 어둠 속 은은히 타오르는 촛불 뒤로는 올해 세상을 떠난 스무 명의 영정사진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몇몇 홈리스 이웃들은 영정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며 입술을 뗐다.
“아는 얼굴 있어?”
덤덤하게 답한다.
“몇몇 보이네”
감정을 추스르지만 어떤이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세상을 떠난 홈리스인의 명단 낭독이 이어지자 현장은 숙연해졌다. 생전에도 찾는 이 없이 홀로 살다가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도 모르게 눈을 감고 뒤늦게 발견된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으리라. 추모제가 진행되는 동안 대전역을 지나치던 일부 시민들이 발걸음을 돌려 헌화하기도 했다. 생전 인연이 아니었어도 모든 죽음은 존엄하다는 생각에서다. 친구와, 연인과 걷던 시민들은 잠시나마 추모의 시간을 가진 뒤 다시 갈 길을 갔다. 그렇게 1년 중 밤이 가장 깊은 날은 저물어갔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내일부터는 다시 해가 길어지리라는 희망이 깃든 날이다. 그래서 현장에 모인 노숙인과 쪽방 생활인, 시민의 표정에서는 단순한 무거움보다는 결연함이 묻어났다.
원용철 벧엘의집 목사는 “가난은 절대로 죄도, 잘못도 아니다. 관리나 배제의 근거가 되지도 못한다. 복지가 아닌 인권 측면에서 바라보고 구제가 아닌 인권 보장 차원에서 하루빨리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등이 추진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남재영 빈들공동체교회 목사의 집례로 거리성탄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벧엘의집 제공
3부 팥죽 나눔에서 팥죽을 받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조현재 기자
조현재 기자 chohj0505@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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