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강지혜 기자】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역대 최장 기록인 24시간 필리버스터를 완주하며 정국의 한복판에 섰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둘러싼 공방 속에서 여권의 법안 강행을 “사법부 장악 시도”이자 “위헌”으로 규정하며 정면 돌파에 나선 것이다.
장 대표는 지난 22일 오전 11시 40분 첫 토론자로 나선 뒤 24시간 뒤인 23일 오전 11시 40분 발언을 마쳤다. 제1야당 대표가 필리버스터 연단에 선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또한 그는 같은 당 박수민 의원이 지난 9월 세운 17시간 12분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더불어민주당은 필리버스터 개시 24시간 경과 시 강제 종료할 수 있는 국회법 규정을 활용해 법안을 처리했다. 이날 본회의에서 ‘내란·외환·반란 범죄 등의 형사절차에 관한 특례법안(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은 찬성 175인, 반대 2인, 기권 2인으로 가결됐으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에 불참했다.
결과적으로 법안 저지는 무산됐지만 장 대표의 장시간 저항은 국면을 주도하며 이슈를 선점했다는 점에서 침체돼 있던 국민의힘의 존재감을 다시 부각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 대표는 토론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에게 헌법 수호 의지가 있다면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반드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국회와 국민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그는 연단에 A4 용지 뭉치와 함께 ‘헌법학’(성낙인),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미국의 민주주의’(알렉시스 드 토크빌), ‘자유헌정론’(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등 헌법·자유주의 고전을 잇달아 꺼내 들며 관련 구절과 언론사설을 인용하는 등 자신의 논리를 관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 대표는 “내란특별재판부는 특정 기구와 법관을 지정해 특별한 재판부를 만들고, 12·3 계엄과 관련된 사건을 그 재판부에 넘겨 민주당이 원하는 결론을 만들어내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하 “이런 법을 설계해 본회의에 올리는 것 자체가 역사가 기억할 반헌법적·위헌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어 “공정한 재판과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법원은 어느 누구도 본인의 사건에 대해 재판부를 선택할 수 없다”며 “특정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전담시키는 것은 그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민주당이 대한민국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도박을 하는 이유는 단 한 사람, 이재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공세를 이어갔다. 그는 “내란죄 성립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 어떤 사법적 판단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며 지난해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약 20명씩 조를 짜 교대로 본회의장을 지켰다. 다만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찬성 토론 기회도 보장해야 한다”고 항의하며 고성이 오가는 등 한때 충돌도 빚어졌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계파를 불문하고 호평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김민수 최고위원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침묵이 아닌 기록으로 저항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했고 친한(친 한동훈)계인 우재준 최고위원은 “최장시간 뿐 아니라 내용 또한 사법부에 대한 애정과 우려가 충분히 전달되는 명연설”이라고 평가했다.
장 대표의 이번 행보는 위기 국면에서의 반전 카드로 읽힌다. 그는 부진한 지지율과 한동훈계와의 갈등, 지방선거 참패 우려 속에서 쇄신 압박을 받아온 상황에서 이번 필리버스터를 통해 ‘사법부 파괴 저지’라는 명분 아래 당내 결속을 도모하며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일정 부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필리버스터 이후 뚜렷한 후속 전략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보여주기식 투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24시간 필리버스터가 국민의힘에 반전의 계기가 될지, 상징적 장면에 그칠지는 향후 정국 흐름 속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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