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하며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법안은 같은 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헌정사 첫 야당 대표 필리버스터, 역대 최장 24시간 기록
장 대표는 전날 오전 11시40분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된 직후 필리버스터 첫 주자로 나서 23일 오전 11시40분까지 24시간을 채웠다. 야당 대표가 직접 필리버스터에 나선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이는 지난 9월 같은 당 박수민 의원이 세운 17시간12분을 크게 넘어선 기록이다. 1957년 스트롬 서먼드 전 미국 상원의원의 세계 기록 24시간18분에 18분 모자랐다.
판사 출신인 장 대표는 단상에 성낙인의 헌법학,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자유헌정론,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등 5권의 책을 들고 올라갔다.
장 대표는 24시간 내내 법안의 위헌성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비상계엄 내란특별재판부는 이름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반헌법적인 특별재판부"라며 "다수당이 판사를 입맛대로 골라 특정 사건을 맡겨서 원하는 재판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이 위헌 논란을 의식해 제출한 수정안에 대해서도 "똥을 물에 풀어도 된장이 되지는 않는다"며 "대놓고 앞문으로 들어가려다가 슬그머니 창문으로 기어들어 간다 해도 위헌이 합헌이 되지는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3일 이후 시작된 내란몰이가 실패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며 "나중에 위헌 판결이 내려져도 이미 선거는 끝났을 테니, 내년 지방선거에서, 다음 총선에서, 그다음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필리버스터 막바지 장 대표는 "국민께서 이 법을 영원히 기억하고, 이후 이뤄질 표결에서 어떤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는지 영원히 기억했으면 좋겠다"며 "그것으로 저는 이 긴 시간 여기 홀로 서서 필리버스터를 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野 "장동혁 잘한다" vs 與 "생떼 부리지 말라"
국민의힘 의원들은 106명 전원이 4개 조로 나뉘어 밤새 본회의장을 지키며 장 대표를 응원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장동혁 대표 잘한다"고 연이어 외쳤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장 대표가 최장 기록을 경신하자 새벽 5시께 의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현재 본회의장에서 장 대표의 무제한 토론이 종전 기록을 경신해 18시간 넘게 진행되고 있다"며 의원들의 본회의장 집결을 독려했다.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에 "지치고, 목이 마르고, 입이 바싹 타고, 다리가 저릴 텐데 밤을 꼬박 새워 혼신의 힘을 다해 20시간을 버텨내고 있다"며 "하지만 장동혁 대표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장동혁이고, 우리가 장동혁"이라고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3일 오전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장 대표가 최근 당내 여러 가지 문제점을 상당히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민주당의 입법독재가 극에 달했기 때문에 이것을 국민께 소상히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단순히 기록을 경신하는 문제를 넘어서 내란특별재판부법을 시작으로 사법부를 압박하고 사법부 독립을 저해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며 "우리 당이 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기 때문에 현재 제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국민께 호소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장동혁 대표의 20시간 넘는 필리버스터에 대해 "한 서너 시간 정도 해서 굵직하게 얘기하고 그 시간에 오히려 차라리 다른 일을 좀 더 고민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고 언급했다.
박 의원은 "대표가 몸소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 것에 대해 너무 비판적인 시각은 안 갖기로 했다면서도 최근에 (장 대표의)리더십 위기 이런게 있어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여러 포석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래 회사 동료가 밤새고 있는 걸 아침에 출근해서 보면 짠한 게 인간의 심리"라며 "고생하고 안쓰럽고 수고한다는 마음이 들어 더 심하게 말씀은 드릴 수 없다"고 전했다.
與 "장 대표 필리버스터는 본인 정치적 위기 모면하려는 의도"
반면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지금은 필리버스터가 아니라 민생 법안을 처리해야 할 때"라며 "처리해야 할 것은 산더미인데 생떼도 이런 생떼가 없다"고 비판했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원내소통수석부대표도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장 대표가 필리버스터에 나선 이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며 "본인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전 보스였던 한동훈을 곧 윤리위를 통해서 징계를 하고 또 내란과 관련된 내부의 사과도 없는 지도부의 모습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느끼자 이와 같이 필리버스터로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일종의 코미디"라며 "슬랩스틱 코미디라고 하죠. 넘어지고 쓰러지고 하는 그런 모습으로 저는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장 대표가 30초가량 자료를 뒤적이자 "못 찾겠으면 내려와라"는 등 항의를 쏟아냈다. 이에 장 대표는 "우리 김병주 의원이 듣기 싫으시면 본청 앞에 나가서 1인 시위하셔도 될 텐데 굳이 오셔서 불편한 얘기 들으시느라 고생이 많다"고 응수했다.
민주당 소속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국무위원석에서 밤새 자리를 지켰다. 정 장관은 필리버스터 시작 18시간 후 SNS에 "장 대표가 혼자 계속 토론하고 있다. 저도 국무위원석에 계속 앉아 있다"며 "대화 타협이 실종된 우리 정치의 현실"이라고 적었다.
장 대표가 24시간을 채우고 마무리 발언 없이 단상에서 내려오자 국민의힘 의원들로부터 박수가 터져나왔다. 본회의장을 나선 장 대표를 당대표실과 원내대표실 인근에서 당직자들과 의원들이 환호로 맞이했다.
[폴리뉴스 박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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