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남권과 서북권을 잇는 핵심 교통 인프라로 꼽혀온 서부선 도시철도 민간투자사업이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민자사업 활성화를 내세워 각종 제도 보완에 나섰고, 서울시 역시 이례적으로 건설사 설득에 직접 나섰지만 급등한 공사비와 불확실한 수익 구조라는 근본적 한계를 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서울시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서부선 민자사업의 핵심 축이던 두산건설 컨소시엄은 아직까지 완전한 재정비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앞서 주요 참여사였던 대형 건설사들이 연이어 이탈한 이후 1년 넘게 신규 출자자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사업 추진 일정도 사실상 멈춰 섰다.
서부선은 은평구 새절역에서 관악구 서울대입구역까지 약 15.6㎞를 연결하는 노선으로, 교통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서북·서남권을 관통한다. 은평, 서대문, 마포, 영등포, 동작, 관악구를 잇는 광역 노선인 만큼 지역 균형 발전과 통근 시간 단축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이 사업은 2020년 말 민간 제안 방식으로 추진되기 시작해 두산건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총사업비 산정과 수익성 문제로 기획재정부 민자사업 심의 문턱을 넘지 못하며 난항을 겪어왔다. 이후 정부는 최근 건설공사비 급등을 반영한 특례를 적용해 총사업비를 일부 증액하는 방안을 허용했으나, 현장에서는 "상징적 조정에 그쳤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실제 최근 수년간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급격히 오르면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사업성은 전반적으로 악화됐다. 민자사업은 초기 투자 부담을 민간이 떠안고 장기간 운영 수익으로 회수해야 하는 구조여서, 공사비 상승기에 특히 취약하다. 이로 인해 서부선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민자 철도·도로 사업이 속속 추진 동력을 잃고 있다.
서울시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통상적인 역할 범위를 넘어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하반기 들어 건설사와 금융권을 잇달아 직접 만나 사업 구조 개선 방안을 설명하고, 관계기관 협의를 통해 가능한 지원책을 모색해 왔다. 주무관청이 출자자 모집 과정에 사실상 전면적으로 나서는 것은 민자사업 관행상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건설업계의 반응은 신중하다. 일부 업체들은 사업 조건이 이전보다 다소 개선됐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현행 정부 지침 내에서는 위험 부담을 감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공사비 변동 위험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추가 제도 보완 없이는 참여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 같은 분위기는 다른 철도 민자사업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미 실시협약 단계까지 갔다가 좌초되거나, 민자 방식이 포기되고 재정사업으로 전환된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민자 활성화를 위한 정책 기조와 현장의 체감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서부선 사업의 향방이 향후 대도시 철도 민자사업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추가적인 공사비 조정 장치나 위험 분담 구조 개선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민자 방식 자체가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서부선 역시 재정투자 전환 또는 장기 보류 수순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서울시는 사업 추진 의지를 재차 강조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서부선은 지역 주민의 오랜 숙원인 만큼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라며 "건설 출자자 확보를 위해 가능한 행정적 지원을 이어가고, 여건이 마련되는 즉시 후속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책 의지와 시장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서부선의 향후 행보는 민자사업 활성화 정책의 실효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