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는 순간, 뇌 속 안전 장치가 풀리면서 신체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욕설은 단순한 감정 폭발이 아니라, 뇌의 ‘제한 장치’를 잠시 풀어 이미 가진 힘을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돕는 심리적 장치다.
연구 결과는 미국심리학회(APA) 학술지 'American Psychologist'에 게재됐다.
◆ 욕설이 근지구력을 끌어올렸다
영국 킬 대학교(Keele University) 리처드 스티븐스(Richard Stephens) 연구팀은 성인 190여 명을 대상으로 '체중 지탱(Chair push-up)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의자에 손을 짚고 팔 힘으로 체중을 지탱한 채 버티는 과제를 수행했다.
실험 조건은 두 가지였다. 한 조건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욕설을, 다른 조건에서는 의미 없는 중립 단어를 2초 간격으로 반복해 말하도록 했다.
그 결과 욕설을 반복한 참가자들은 중립 단어를 말한 경우보다 해당 자세를 평균 11% 더 오래 유지했다. 이는 근지구력 향상에 있어 욕설의 효과가 뚜렷함을 보여주는 지표다.
실험 후 설문에서도 유의미한 차이가 확인됐다. 욕설을 말한 참가자들은 과제에 더 깊이 몰입했고, 자신의 수행 능력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차이는 근육의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뇌의 자기 제어 방식이 달라진 결과로 풀이된다.
연구팀은 "이는 단순한 분노 표출이 아니라 심리적 몰입 상태(flow)와 비슷한 변화다. 욕설이 주는 약간의 유머 감각과 감정적 해방은 고통과 피로에 대한 인식을 낮추며 동작을 지속하게 만드는 일종의 심리적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 각성이 아닌, 안전 장치 해제로 나타난 효과
그동안 욕설의 효과는 긴장 상황에서 나타나는 투쟁·도피 반응, 즉 아드레날린 분비에 따른 생리적 각성으로 설명돼 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욕설의 작용을 '상태 억제 완화(state disinhibition)'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뇌는 평소 신체 손상을 막기 위해 근육이 실제로 낼 수 있는 힘보다 낮은 수준에서 통증과 피로 신호를 보내는 '심리적 안전 한계선'을 설정한다. 연구팀은 사회적 금기어인 욕설을 내뱉는 행위가 이 내부 가드레일을 순간적으로 무너뜨려, 스스로 정해둔 제한을 덜 의식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특히 욕설의 효과는 단어가 지닌 정서적 강도, 즉 감정적 충격(emotional valence)에 비례했다. 평소 거의 사용하지 않는 강한 욕설일수록 억제 완화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욕설은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재된 에너지를 더 자유롭게 쓰도록 이끄는 셈이다.
스티븐스 박사팀은 앞선 연구에서도 욕설이 악력(grip strength)을 약 8%, 사이클 페달을 밟는 파워를 4.5%가량 높인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효과의 기전이 단순한 각성이 아니라 인지적 억제가 해제되는 과정에 있음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팀은 이 같은 결과가 운동선수 퍼포먼스 향상뿐 아니라, 통증과 한계를 동반하는 신체 재활 훈련 현장에서도 낮은 비용으로 즉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심리적 개입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욕설의 효과는 일시적이며, 사회적 맥락에 따라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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