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업은 스스로를 전쟁터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전쟁의 방식은 기술이나 혁신이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태도에서 드러났다. 쿠팡 내부 문건을 통해 드러난 경영 철학은, 경쟁을 넘어 적대에 가까운 언어로 조직을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최근 MBC 뉴스데스크의 단독 보도는 쿠팡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핵심 경영진에게 공유한 내부 이메일을 공개했다. 제목은 ‘승진을 위한 평가 체제’. 2020년 3월, 쿠팡 리더십 팀에게 직접 발송된 이 이메일에서 김 의장은 리더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가 요구한 지도자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전시 상황의 지도자”, “쿠팡 문화를 지키고 알릴 수 있는 지도자”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 미국 쿠팡 이미지
김 의장은 좋은 리더의 조건으로 “참지 않는 지도자인지”, “잘못된 행동을 공개적으로 처벌해 조직에 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참지 않음’은 인내나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내부에서 갈등을 관리하는 방식 자체를 의미한다. 공개 처벌과 강한 메시지. 이 언어는 교육이나 설득이 아니라 공포와 위계에 기반한 통제를 연상시킨다.
이 기준이 단발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점은, 그 이전에 공유된 또 다른 이메일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2019년 1월, 김 의장은 실리콘밸리 투자자가 쓴 ‘평시 지도자 대 전시 지도자’라는 글을 리더십 팀에 공유했다. 이 글은 전시 지도자의 특징을 나열한다. 해고를 위한 인사 조직을 구축한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욕설을 사용한다. 정상적인 어조로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완전히 무관용적이다. 갈등을 의도적으로 증폭한다. 의견 불일치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 글은 전쟁 상황에서의 결단력을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기업 조직에 그대로 적용될 경우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경쟁을 전쟁에 비유하고, 노동자를 언제든 해고 가능한 존재로 설정하는 사고방식은, 성과 중심을 넘어 인간 존엄의 부정을 전제로 한다.
mbc 보도에 따르면, 이 문건들은 쿠팡에서 해고된 뒤 회사와 소송 중인 미국인 전직 임원이 법원에 제출하거나 언론에 제보하면서 외부에 공개됐다. 해당 임원은 김 의장이 실제 직원들에게 욕설을 사용했고, 관련 내용이 기사화되었으나 로비를 통해 삭제됐다고 주장했다. 단순한 내부 평가 기준을 넘어, 실제 조직 문화로 구현됐다는 증언이다.
이 보도가 갖는 의미는 단순히 한 기업인의 성격이나 리더십 스타일을 문제 삼는 데 있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 사회에서 거대 플랫폼 기업이 어떤 인간관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빠른 배송, 혁신, 편리함이라는 외피 뒤에 어떤 조직 문화가 존재했는지, 그 문화가 노동자의 안전과 존엄을 어떻게 취급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특히 쿠팡은 물류 노동자의 산업재해 문제, 하청 구조, 계약 관계 변경 지시 의혹 등으로 이미 여러 차례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번 내부 문건 공개는 그러한 사건들이 우연이나 현장 관리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상층부에서 공유된 경영 철학과 무관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시라는 말은 본래 비상 상황을 의미한다. 그러나 쿠팡의 내부 문건에서 전시는 일상이 된다. 항상 적이 존재하고, 항상 긴장이 필요하며, 항상 누군가는 처벌의 대상이 된다. 이런 조직에서 노동자는 동료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 되고, 리더십은 신뢰가 아니라 공포로 작동한다.
기업은 성장할 수 있다. 빠르게 커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속도가 인간을 앞지를 때, 사회는 그 대가를 묻게 된다. 쿠팡의 사례는 한국 자본주의가 어디까지 왔는지, 그리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묻는 하나의 경고처럼 읽힌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전시 지도자가 아니라면 기업은 운영될 수 없는가. 욕설과 공개 처벌 없이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은 불가능한가. 노동자를 전쟁의 소모품으로 보지 않는 경영은 비현실적인 이상에 불과한가.
MBC의 이번 보도는 그 질문을 다시 사회 한복판에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책임은, 더 이상 내부 이메일 속에만 머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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