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이집트 칼럼 #10] 이집트 대박물관(GEM)⑤ 신왕국 사회를 걷다: 3,500년 전 유물이 건네는 가장 인간적인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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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00:00 기준

[한민광의 이집트 칼럼 #10] 이집트 대박물관(GEM)⑤ 신왕국 사회를 걷다: 3,500년 전 유물이 건네는 가장 인간적인 위로

문화매거진 2025-12-22 14:34:12 신고

[한민광의 이집트 칼럼 #9] 이집트 대박물관(GEM)④ 중왕국 미술이 만든 균형: GEM 중왕국 갤러리 읽기에 이어 
 

▲ 신왕국 사회를 걷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신왕국 사회를 걷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문화매거진(이집트)=한민광 작가] 이집트의 긴 역사 속에서 신왕국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고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낸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 고왕국이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 피라미드의 시대였고, 중왕국이 혼란을 딛고 내실을 다진 복구의 시대였다면, 신왕국은 명실상부한 ‘황금의 제국’ 시대였다. 워낙 방대하고 중요한 시기이기에, 나는 이번 신왕국 편을 기존 방식처럼 한 편의 글로 묶지 않기로 했다. 대신 사회, 왕권, 신앙이라는 세 가지 큰 물줄기를 따라 총 3편에 걸쳐 아주 깊숙이,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려 한다. 이는 현대 이집트학의 정수이자 우리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신왕국의 숨결을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달하고 싶은 나의 욕심이자 진심이다.

그 첫 번째 발걸음으로 이번 글에서는 신왕국을 지탱하던 가장 단단한 뿌리인 ‘사회’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 강력한 파라오의 위엄이나 신비로운 신들의 이야기 뒤에 가려져 있던,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진짜 모습 말이다. 신왕국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단순히 먼지 쌓인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놀랍게도 현대 사회의 기틀이 된 정교한 계층 구조와 인간관계의 원형을 마주하는 일이며, 그들이 남긴 미술과 예술 속에 투영된 인간적 고뇌와 기쁨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때로 혹독한 시련을 가져오기도 한다. 중왕국이 저물고 찾아온 ‘제2중간기’는 이집트인들에게 뼈아픈 시기였다. ‘힉소스’라 불리는 이민족에게 북쪽 땅을 내어주며 이집트인의 자부심이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둠이 깊을수록 태양은 더 강렬하게 떠오르는 법이다. 테베(지금의 룩소르)의 용맹한 파라오 아흐모세 1세가 마침내 이민족을 몰아내고 이집트를 다시 하나로 묶었을 때, 사람들은 직감했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거대한 번영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말이다.

▲ 신왕국의 찬란한 여정이 시작되는 Hall 7의 입구는 제국의 화려한 사회상을 들여다보는 거대한 통로. 이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3,500년 전 이집트인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 초대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신왕국의 찬란한 여정이 시작되는 Hall 7의 입구는 제국의 화려한 사회상을 들여다보는 거대한 통로. 이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3,500년 전 이집트인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 초대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이집트 그랜드 박물관(GEM) Hall 7의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시공간을 건너뛰어 3,500년 전 활기찬 제국의 거리로 들어온 듯한 기분에 압도된다. 신왕국은 단순히 땅을 되찾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서아시아(레반트 지역; 투트모세 3세 시기)와 아프리카(누비아 지역) 깊숙이 영토를 넓히며 진정한 의미의 세계 제국을 건설했고, 안으로는 넘쳐나는 부를 바탕으로 예술과 건축의 정점을 찍었다.

이 시기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은 딱딱한 도식에서 벗어나 ‘사람’의 표정과 일상의 미학이 생생하게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왕권과 신앙이라는 거대한 담론 아래 묵묵히 제국을 일구었던 귀족, 서기관, 노동자, 그리고 가정의 중심이었던 여성들이 비로소 예술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등장한다. 이곳 Hall 7에 모인 유물들은 단순한 돌덩이나 파편이 아니다. 이민족의 지배라는 암흑기를 뚫고 일어나, 세상의 중심에서 “우리가 바로 케메트다!(Kemet, 나일강의 풍요가 만든 ‘검은 땅’이라는 뜻으로 이집트인들이 스스로의 나라를 부르던 이름)”라고 외쳤던 사람들의 뜨거운 열망이자 기록이다. 이제 이 입구를 지나, 화려한 제국 이면에서 저마다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켰던 신왕국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하나씩 만나보려 한다.

1. 사회의 기둥, 귀족과 신의 그림자
신왕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실제로 움직였던 힘은 파라오의 명령을 받들어 행정과 군사, 종교의 각 분야를 통치했던 고위 관료와 귀족들에게서 나왔다. 이 시기 귀족들은 단순히 부를 축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삶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그들이 남긴 유물 속에는 제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자들의 자부심과 당시 상류층이 추구했던 세련된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 정교한 가발과 부드러운 옷감의 표현이 돋보이는 귀족들의 돌상은 신왕국 상류층이 가졌던 예술적 자부심과 사회적 위엄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정교한 가발과 부드러운 옷감의 표현이 돋보이는 귀족들의 돌상은 신왕국 상류층이 가졌던 예술적 자부심과 사회적 위엄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전시실에서 마주하는 귀족들의 돌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외형과 품위를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이전 시대의 조각들이 다소 딱딱하고 엄격한 정형미에 집중했다면, 신왕국의 귀족들은 훨씬 부드럽고 인간적인 선을 보여준다. 정교하게 땋아 내린 가발의 세밀한 결, 몸의 곡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린넨(Linen) 옷감의 주름 표현은 당시 이집트 조각 예술이 도달한 정점을 보여준다. 조각 속 인물의 온화하면서도 당당한 표정은 사후 세계에서도 현세의 풍요와 지위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열망을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당시 귀족 사회의 우아한 분위기를 짐작게 하는 시각적 기록이다.

▲ 다양한 신들의 형상은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던 구심점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다양한 신들의 형상은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던 구심점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하지만 이 귀족들의 권위는 결코 세속적인 힘만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신왕국 사회는 종교와 정치가 마치 실과 바늘처럼 긴밀하게 엮여 있는 구조였다. 전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다양한 신들의 형상은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던 거대한 질서 그 자체였다. 여러 동물의 형상을 빌려 표현된 신들은 우주의 섭리와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상징했다. 귀족들은 이 신들을 모시는 제사장이자 대리인으로서 자신들의 사회적 역할을 규정했으며, 신앙은 곧 사회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했다.

▲ 신성함을 시각화한 이 돌상들은 종교적 숭배를 넘어 귀족들의 권력을 뒷받침하고 그들의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상징이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신성함을 시각화한 이 돌상들은 종교적 숭배를 넘어 귀족들의 권력을 뒷받침하고 그들의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상징이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특히 신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독립된 돌상들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을 넘어 권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상징물이었다. 신의 신성함이 차가운 돌 위에 예술적으로 구현될 때, 그 신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귀족들의 권위 또한 자연스럽게 신성화되었다. 이 조각상들의 배치를 통해 우리는 당시 이집트인들이 가졌던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신의 기운을 담고 있는 이 유물들은, 지배 계층이 어떻게 신의 권위를 빌려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했는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 신에게 정성껏 제물을 바치는 장면이 담긴 벽화는 인간과 신의 소통 방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신앙을 통해 하나로 묶였던 당시의 사회적 에티켓을 잘 나타낸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신에게 정성껏 제물을 바치는 장면이 담긴 벽화는 인간과 신의 소통 방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신앙을 통해 하나로 묶였던 당시의 사회적 에티켓을 잘 나타낸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이러한 신과 인간의 밀접한 관계는 벽화 속에 남겨진 제례 의식 장면에서 가장 생생하게 완성된다. 사람들이 줄을 지어 신에게 정성껏 음식을 바치고, 연꽃과 향유를 올리는 모습은 신왕국 사회의 가장 고귀한 일상이었다. 이 벽화들은 단순한 종교 행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에게 정성을 다함으로써 세상의 평화와 개인의 복락이 유지된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제물을 바치는 행위는 신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인 동시에, 사회 구성원들이 같은 믿음 아래 소통하고 화합하는 거대한 사회적 약속이기도 했다. 이처럼 신왕국의 상류 사회는 신의 그림자 아래서 자신들의 위치를 견고히 다지며 제국의 가장 찬란한 예술적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2. 지식의 수호자: 서기관 손끝에서 기록된 역사
신왕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굴러갈 수 있었던 실질적인 동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사람들은 흔히 화려한 전차를 몰고 전장을 누비는 파라오나 웅장한 신전을 설계한 건축가를 떠올리지만, 사실 그 모든 영광을 가능하게 했던 ‘제국의 뇌’는 따로 있었다. 바로 잉크가 마르지 않는 붓을 쥐고 제국의 모든 숨결을 기록했던 ‘서기관’들이다. 이집트의 역사는 파라오가 만들었을지 모르나, 그 역사를 영원 속으로 끌어올려 오늘날 우리 앞에 가져다 놓은 것은 오로지 서기관들의 지칠 줄 모르는 손끝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신왕국의 찬란한 문명은 그저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바람처럼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 전시실 중앙 통로를 지나는 이 길은 신왕국의 화려함 뒤에서 제국을 실질적으로 움직였던 기록과 지식의 세계로 향하는 관문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전시실 중앙 통로를 지나는 이 길은 신왕국의 화려함 뒤에서 제국을 실질적으로 움직였던 기록과 지식의 세계로 향하는 관문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전시실 중앙 통로에 들어서면 사뭇 엄숙한 기운이 감돈다. 이 길은 단순한 관람 동선이 아니라, 신왕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탱했던 거대한 ‘정보의 바다’로 향하는 관문이다. 당시 서기관은 누구나 선망하는 최고의 엘리트 계층이었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신의 언어를 이해하고 제국의 자원을 통제하는 절대적인 권력이었다. 서기관이 되는 길은 혹독했다. 어린 시절부터 수천 개의 상형문자를 익히고 엄격한 규율 속에서 훈련받아야 했다. 이 통로를 지나며 우리가 마주하게 될 유물들은 그런 고된 과정을 견뎌낸 지식인들이 남긴 제국의 가장 정교한 흔적들이다.

▲ 무릎 위에 파피루스를 펼치고 가부좌를 튼 서기관의 조각상은 지식인으로서의 당당한 자부심과 기록에 임하는 엄숙한 성실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무릎 위에 파피루스를 펼치고 가부좌를 튼 서기관의 조각상은 지식인으로서의 당당한 자부심과 기록에 임하는 엄숙한 성실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서기관의 조각상은 이집트 미술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걸작들이다. 대부분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릎 위에 파피루스를 펼친 채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적어 내려갈 듯 붓을 든 자세를 취하고 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정면을 응시하는 그들의 눈빛을 보라. 거기에는 제국의 모든 정보를 관리한다는 지식인의 긍지와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철저한 직업정신이 서려 있다. 툭 튀어나온 쇄골이나 집중하느라 살짝 긴장한 듯한 복부의 묘사는 당시 예술가들이 서기관이라는 존재를 얼마나 사실적이고 경외감 있게 표현하려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왕과 신 사이에서, 그리고 국가와 민초 사이에서 모든 소통을 문서로 증명해 내던 사회의 중심축이었다.

▲ 파피루스 위에 선명하게 남은 상형문자들은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내며 당시의 행정과 일상을 오늘날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주는 역사의 증거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파피루스 위에 선명하게 남은 상형문자들은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내며 당시의 행정과 일상을 오늘날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주는 역사의 증거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서기관들의 진정한 헌신은 그들이 남긴 파피루스 기록물에서 빛을 발한다. 3,50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선명하게 보존된 잉크 자국과 유려한 글씨체는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이 얇은 종이 위에는 거창한 승전 기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매일매일 들어오는 세금의 양, 군사들에게 배급된 빵의 개수, 건설 현장에 투입된 인부들의 명단, 심지어 어느 가정의 상속 문제에 대한 판결문까지 빼곡히 담겨 있다. 서기관들은 이 따분할 수도 있는 일상적인 데이터들을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정성껏 기록했다. 그들의 이러한 ‘기록에 대한 집착’ 덕분에 우리는 먼지 쌓인 유물 속에서 당시 사람들의 말소리와 숨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서기관이 매일 손에 쥐었을 붓통과 필기구들은 대제국을 지탱한 정교한 행정 시스템이 시작된 가장 작지만 위대한 현장의 도구들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서기관이 매일 손에 쥐었을 붓통과 필기구들은 대제국을 지탱한 정교한 행정 시스템이 시작된 가장 작지만 위대한 현장의 도구들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전시실 한편에 놓인 작은 도구함과 필기구들은 서기관들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서 느끼게 해주는 유물들이다. 나무로 만든 길쭉한 붓 케이스와 검은색, 붉은색 잉크를 굳혀 쓰던 작은 판들은 그들의 분신과도 같았다. 매일 아침 서기관들은 정성스럽게 갈대 붓의 끝을 다듬고 물에 적신 잉크를 준비하며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이 소박해 보이는 도구들이 모여 대제국 이집트의 거대한 행정 시스템을 만들었고, 수천 년을 버티는 역사의 기록을 낳았다. 화려한 금은보화는 아니지만, 서기관의 손때가 묻은 이 도구들이야말로 신왕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였던 가장 위대한 무기였다고 할 수 있다.

▲ 노동과 가축의 수치를 꼼꼼히 기록한 벽화는 서기관들의 눈이 사회 구석구석을 살피며 제국의 경제를 얼마나 철저히 관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노동과 가축의 수치를 꼼꼼히 기록한 벽화는 서기관들의 눈이 사회 구석구석을 살피며 제국의 경제를 얼마나 철저히 관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서기관의 시선은 결코 화려한 궁전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들의 붓끝은 나일강변에서 소를 몰며 밭을 가는 농부들의 등 위로, 그리고 시장통에서 물건을 주고받는 서민들의 손위로도 향했다. 가축의 마릿수를 꼼꼼히 세고 곡식의 수확량을 파악하는 벽화 속 장면들은 모두 서기관들의 철저한 감시와 관리하에 이루어진 경제 활동의 현장이다. “기록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신념 아래, 그들은 사회의 가장 낮은 곳까지 파고들어 모든 삶의 궤적을 데이터로 남겼다. 결국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정복자의 칼날보다 서기관의 부드러운 붓끝에서 더 강인한 생명력을 얻었으며, 그들의 성실한 노동 덕분에 우리는 3,500년 전의 사회를 마치 어제의 일처럼 공감하며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것이다.

3. 일상의 예술, 남녀의 사랑과 아름다움
제국의 견고한 행정 시스템과 서기관들의 엄격한 기록의 세계를 지나면, 신왕국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지극히 사적이고도 따뜻한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인간 본연의 감정인 ‘사랑’과 자신을 가꾸는 ‘미(美)’를 향한 끝없는 갈망이다. 이 시기 유물들은 3,50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무색하게 할 만큼 놀랍도록 세련된 감각을 보여주는데, 이는 신왕국 사회가 단순히 거대한 건축물이나 전쟁의 승리에만 매몰된 사회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오히려 그들은 개인의 감성과 정서적인 풍요를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으며, 특히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그들이 누렸던 아름다움에 대한 권리는 현대의 우리가 보기에도 경이로울 정도로 앞서 있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이란 단순히 겉모습을 치장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돌보고 사회적 품격을 유지하며, 나아가 신들이 부여한 생명력을 찬미하는 성스러운 의식과도 같았다.

▲ 남편과 아내를 대등한 크기로 묘사한 이 부부상은 신왕국 사회가 여성을 존중하며 서로를 소중한 파트너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증거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남편과 아내를 대등한 크기로 묘사한 이 부부상은 신왕국 사회가 여성을 존중하며 서로를 소중한 파트너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증거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전시실 한복판에서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은 다정하게 나란히 앉아 있는 어느 부부의 조각상이다. 이 유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대 수많은 문명이 남성을 거대하게, 여성을 아주 작거나 부수적인 존재로 묘사했던 것과 달리, 신왕국의 부부상은 두 사람을 거의 대등한 크기와 높이로 표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같은 높이의 의자에 앉아 남편의 어깨 위에 수줍게, 그러나 당당하게 손을 올린 아내의 모습은 당시 가정 안에서 여성이 누렸던 높은 위상과 존중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단순히 가문을 잇기 위한 결합이 아니라 인생의 고락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파트너였다. 남편의 굳건한 팔과 아내의 부드러운 손길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신왕국 사회가 지향했던 조화롭고 개방적인 인간관계의 원형을 발견한다. 이 부부상은 수천 년 전에도 사랑과 신뢰가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부드러운 접착제였음을 우리에게 속삭여 준다.

▲ 작은 향유병 하나에도 정교한 문양을 새긴 이 물건들은 매일 쓰는 소품까지도 예술적으로 가꾸고 즐겼던 이집트인들의 세련된 생활상을 증명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작은 향유병 하나에도 정교한 문양을 새긴 이 물건들은 매일 쓰는 소품까지도 예술적으로 가꾸고 즐겼던 이집트인들의 세련된 생활상을 증명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뒤로하고 고개를 돌리면, 그들의 일상을 빼곡히 채웠을 아기자기한 생활용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얼핏 보면 그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작은 그릇이나 세밀하게 깎인 도구들이지만, 그 하나하나에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집요한 미적 집착이 서려 있다. 귀한 향유를 담았을 작은 병의 우아한 곡선이나 화장 가루를 개어 쓰던 판의 정교한 장식들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에게 일상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 버티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주 작은 도구 하나를 만들 때도 예쁜 꽃 모양이나 동물 모양을 넣어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었다. 내 주변을 아름다운 물건들로 채우는 것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이라고 믿었던 그들의 세련된 취향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깊은 영감을 준다.

▲ 더위를 피하기 위해 머리를 밀고 대신 썼던 화려한 가발은 3,500년 전에도 이집트인들이 얼마나 외모를 가꾸고 꾸미는 일에 진심이었는지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더위를 피하기 위해 머리를 밀고 대신 썼던 화려한 가발은 3,500년 전에도 이집트인들이 얼마나 외모를 가꾸고 꾸미는 일에 진심이었는지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특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당시의 독특하고도 화려한 미용 문화다. 전시장에는 실제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정성스럽게 엮어 만든 가발과 미용 도구들이 마치 어제 사용한 것처럼 잘 보존되어 있다. 당시 신왕국의 파라오와 귀족들에게 육체적 청결함은 곧 정신적 거룩함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그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몸의 모든 털을 깨끗이 밀어 정결함을 유지했고, 그 대신 자신의 신분과 미적 감각을 드러내기 위해 이토록 정교한 가발을 착용했다. 수백 가닥으로 땋아 내린 가발 형태와 사이에 박힌 보석들을 보고 있으면, 3,500년 전의 유행이 현대의 최첨단 헤어 디자인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가발은 그들에게 단순한 치장을 넘어, 자신의 격조와 종교적 정결함을 세상에 알리는 가장 우아한 사회적 언어이자 필수적인 예복이었다.

▲ 자신의 품격을 높여주던 화려한 보석 장신구들과 고양이를 위해 정성껏 만든 목걸이는 스스로를 가꾸는 열정과 동물을 가족으로 사랑했던 마음이 공존했던 신왕국 사람들의 일상을 잘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자신의 품격을 높여주던 화려한 보석 장신구들과 고양이를 위해 정성껏 만든 목걸이는 스스로를 가꾸는 열정과 동물을 가족으로 사랑했던 마음이 공존했던 신왕국 사람들의 일상을 잘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장신구들이 모여 있는 코너에 이르면 그 화려함과 정교함은 절정에 달한다. 금과 보석으로 세밀하게 세공된 반지와 목걸이들은 당시 금속 공예 기술이 신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화려한 장신구들은 단순히 부를 과시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제국의 정점에 선 사람들이 자신의 품위와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필수적인 예술품이었다.

그런데 이 눈부신 귀금속들 사이 유독 시선을 끄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유물이 있다. 바로 ‘고양이를 위한 목걸이’이다(사진 중앙). 신왕국 사람들에게 고양이는 지금처럼 단순히 쥐를 잡기 위해 기르는 가축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고양이는 집안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수호자였고, 가족의 사랑을 받는 소중한 반려였으며, 때로는 여신 ‘바스텟(Bastet)’의 영물로 추대받는 존재였다.

자신을 가꾸기 위한 화려한 보석들만큼이나 고양이를 위해 이토록 아름다운 목걸이를 정성껏 만들고 채워주었을 그들의 마음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스스로의 화려함을 엄격하게 유지하면서도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며 정성을 다했던 그들의 따뜻한 시선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오늘날의 우리와 깊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사람을 위한 고귀한 장신구와 고양이의 작은 목걸이가 나란히 놓인 풍경은 신왕국 사회가 가졌던 삶의 여유와 생명에 대한 깊은 애정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 태양의 빛을 상징하는 청동 거울은 단순히 모습을 비추는 기능을 넘어, 상류층의 우아한 지위와 사치스러운 미적 생활을 상징하는 귀중한 장식품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태양의 빛을 상징하는 청동 거울은 단순히 모습을 비추는 기능을 넘어, 상류층의 우아한 지위와 사치스러운 미적 생활을 상징하는 귀중한 장식품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매끄러운 광택을 내뿜는 청동 거울은 당시 상류층의 일상을 투영하는 귀중한 도구다. 지금 유리 거울처럼 모공까지 선명하게 비추지는 못했겠지만, 은은하게 반사되는 그 황금빛 표면 위로 수많은 귀족이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나일강의 맑은 물에 비친 모습이 더 선명했을지도 모르나, 이 거울은 단순한 반사 도구를 넘어선 존재였다. 청동 거울의 둥근 형태는 태양신 ‘라(Ra)’의 광명을 상징했으며, 이것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빛과 생명력을 손에 쥐고 있다는 주술적인 의미까지 내포했다.

또 거울의 자루에 새겨진 정교한 여인상이나 꽃 문양들은 소유자의 높은 사회적 지위와 부를 과시하는 최고의 사치품이기도 했다. 거울 앞에서 가발을 매만지고 고양이 목걸이를 고쳐주었을 신왕국 귀족 여인의 일상, 그녀에게 이 거울은 자신의 외면을 가꾸는 도구를 넘어 제국의 풍요 속에서 누리는 우아한 삶의 자부심 그 자체였다. 이 거울 속에 비친 것은 단순한 얼굴이 아니라, 가장 화려했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당당한 영혼이었다.

4. 의식주와 삶의 무게

▲ 전시실 중앙에 배치된 다양한 석조물과 생활 유물들은 화려한 왕실 문화 이면에서 제국을 실질적으로 지탱했던 서민들의 일상 공간을 입체적으로 재현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전시실 중앙에 배치된 다양한 석조물과 생활 유물들은 화려한 왕실 문화 이면에서 제국을 실질적으로 지탱했던 서민들의 일상 공간을 입체적으로 재현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제국의 거대한 신전과 황금빛 보물들이 신왕국의 화려한 외형을 상징한다면, 전시실 한편을 소박하게 채우고 있는 생활 도구들은 그 시대를 지탱했던 실제 주인공들의 숨결을 오롯이 담고 있다. 박물관의 전시는 왕실의 권위를 보여주는 유물을 넘어, 당시 민초들이 매일 손에 쥐고 사용했던 실질적인 삶의 파편들을 폭넓고 깊이 있게 조명한다. 이러한 유물들은 3,500년 전 이집트 땅을 일구었던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도구로 고된 노동을 견디며, 고단한 하루 끝에 어디에 몸을 누였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물이다. 화려한 금장식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민초들의 땀방울과 지혜는 비로소 이 소박한 목재와 토기 파편들을 통해 그 거대한 실체를 드러낸다.

▲ 음식을 정성껏 나르는 여인의 벽화와 맥주를 담았던 커다란 항아리들은 당시 사람들의 생존과 직결된 가장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식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음식을 정성껏 나르는 여인의 벽화와 맥주를 담았던 커다란 항아리들은 당시 사람들의 생존과 직결된 가장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식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신왕국 사람들의 식생활은 나일강이 매년 선사하는 풍요로운 결실을 바탕으로 유지되었다. 전시장 곳곳에 놓인 길쭉하고 투박한 항아리들은 당시 사람들의 생명줄이었던 맥주와 물, 그리고 귀한 곡물을 신선하게 보관하던 핵심적인 용기였다. 고대 이집트에서 맥주와 빵은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수단이 아니라 노동의 대가로 지급되던 화폐와도 같았으며, 항아리의 크기와 개수는 그 집안의 풍요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벽화 속 여인이 풍성한 음식이 가득 담긴 쟁반을 한 손으로 우아하게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은 음식이 지닌 사회적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손길이 향하는 곳에는 신을 향한 공경이나 이웃과 나누는 연회의 즐거움이 서려 있었을 것이다. 흙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투박한 토기 안에 담겼던 소박한 식사들은 대제국 이집트를 움직이는 가장 실질적이고도 강력한 에너지원이었으며, 제국의 거대한 하중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 무더운 기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정교한 나무 목침과 견고하게 제작된 가구들은 신왕국 사람들의 실용적이고 지혜로운 주거 생활을 대변하는 유물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무더운 기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정교한 나무 목침과 견고하게 제작된 가구들은 신왕국 사람들의 실용적이고 지혜로운 주거 생활을 대변하는 유물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낸 뒤 찾아오는 짧은 휴식의 순간 역시 지극히 실용적이고 지혜로운 형태로 발전하였다. 전시실 한편을 차지한 독특한 반원 모양의 목제 받침대들은 당시 사람들이 잠을 청할 때 머리를 받치던 목침이다. 나무를 정교하게 깎고 다듬어 만든 이 도구들은 단순히 머리를 고이는 기능을 넘어, 나일강변의 덥고 습한 기후 속에서 머리와 바닥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통풍을 극대화하려는 공학적인 배려가 담겨 있다. 이는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찾아낸 최적의 수면 방식이었으며, 고단한 육체를 회복시키려는 간절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그 주변을 메우고 있는 나무 의자와 촘촘하게 엮어 만든 가구들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화려한 보석이나 금칠은 없으나 인체 공학적으로 설계된 곡선과 견고하게 맞물린 이음새는 당시 이집트 목공 장인들이 지녔던 기술적 자부심을 여실히 증명한다. 좁은 공간에서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가구들은 서민들의 소박한 가옥 안에서 가족들의 온기를 나누는 중심점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목제 유물들은 화려한 궁전 의자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고 생생한 삶의 현장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 도구를 사용하여 정밀한 작업에 몰두하는 장인의 벽화와 그 앞에 놓인 실제 의자는 이집트 문명을 일구어낸 실질적인 주인공들의 노동 가치와 헌신을 증명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도구를 사용하여 정밀한 작업에 몰두하는 장인의 벽화와 그 앞에 놓인 실제 의자는 이집트 문명을 일구어낸 실질적인 주인공들의 노동 가치와 헌신을 증명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민초들의 삶에서 노동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 동시에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근원이었다. 대형 벽화 속에 묘사된 장인의 모습은 마치 어제의 현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 생동감이 넘친다. 그는 낯선 도구를 손에 쥐고 오로지 눈앞의 작업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데, 그 진지한 표정에서 기술자가 지닌 엄숙한 소명 의식이 느껴진다.

장인의 발치에 놓인 실제 하얀 목제 의자는 벽화 속 장면이 허구의 기록이 아닌, 실제 존재했던 치열한 삶의 증거임을 일깨워 준다. 그가 앉아 있었을 의자의 닳은 모서리와 벽화 속 장인의 역동적인 자세는 3,5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뛰어 노동의 숭고함을 우리에게 직접 타전한다. 고대 이집트의 위대한 역사는 파라오의 거창한 선언이나 승전 기록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거친 돌을 깎고 나무를 다듬었던 이름 없는 기술자들의 숙련된 손길이 한 땀 한 땀 모여 완성된 거대한 건축물이나 다름없다.

▲ 정교하게 엮어 만든 바구니와 창고 모형들은 나일강의 풍요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보존하며 일상을 꾸려나갔던 이집트인들의 성실한 경제 활동을 생생하게 나타낸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정교하게 엮어 만든 바구니와 창고 모형들은 나일강의 풍요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보존하며 일상을 꾸려나갔던 이집트인들의 성실한 경제 활동을 생생하게 나타낸다 / 사진: 한민광 제공


곡물을 저장하고 물건을 이동하는 데 사용되었던 바구니와 각종 저장용기들은 신왕국 경제 시스템을 지탱하던 실핏줄과도 같은 존재였다. 촘촘하게 엮어 만든 바구니와 튼튼한 뚜껑이 달린 보관함들은 수천 년이 흐른 지금 보아도 그 정교함과 실용성에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소소한 물건 하나에도 소홀함 없이 최선을 다했던 그들의 성실함이 깃들어 있다.

특히 저장 창고나 작업장의 풍경을 세밀하게 재현한 작은 모형들은 제국이 거두어들인 막대한 자원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분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시각적 자료다. 창고 안의 곡식더미와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국의 행정력이 얼마나 치밀했는지를 웅변한다. 금장식의 눈부신 화려함은 없으나,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바구니와 소박한 보관함들은 화려한 제국 이면에서 매일의 일상을 묵직하고 성실하게 살아냈던 이집트인들의 가장 진실되고 꾸밈없는 모습이다. 우리는 이 작은 상자들과 바구니 속에서 거대한 문명을 일구어낸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생명력을 발견하게 된다.

Hall 7를 나오며: 돌 위에 새겨진 소망, 시간을 이긴 신왕국의 유산
박물관 전시실을 가득 채운 유물들 앞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의 잔해가 아니라, 영원을 향해 던져진 고대인들의 간절한 메시지다. 신왕국 사회의 질서와 사랑, 그리고 고단했던 의식주를 모두 훑어본 뒤 마주하게 되는 이 기록의 파편들은 우리에게 하나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들은 왜 그토록 집요하게, 그리고 거대한 돌 위에 자신들의 삶을 글과 그림으로 새겨 넣었는가 하는 점이다.

▲ 벽면에 조각된 파편화된 기록들은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기억되고자 했던 신왕국 사람들의 집요한 의지와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벽면에 조각된 파편화된 기록들은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기억되고자 했던 신왕국 사람들의 집요한 의지와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벽면에 남겨진 파편화된 기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영원을 향한 인간의 처절한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 신왕국 사람들에게 기록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후 세계에서도 자신의 존재가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갈망이자, 죽음을 넘어 영원히 기억되고 싶어 했던 인간 본연의 욕망이 투영된 결과물이다. 돌 위에 새겨진 이름 하나, 벽화 속에 묘사된 일상의 한 장면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가지 않으려는 그들만의 방식이었던 셈이다. 결국 이 파편들은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의 증거다.

▲ 글과 조각이 정교하게 결합된 돌판은 신왕국 사회가 지향했던 가치관을 압축하며, 3,500년의 시간을 넘어 현대인들에게 인간 본연의 욕망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글과 조각이 정교하게 결합된 돌판은 신왕국 사회가 지향했던 가치관을 압축하며, 3,500년의 시간을 넘어 현대인들에게 인간 본연의 욕망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 사진: 한민광 제공


글과 조각이 촘촘하게 어우러진 돌판은 신왕국 사회의 초상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다. 3,500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이겨내고 우리 앞에 선 이 기록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기술은 변하고 문명은 교체되지만,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어 하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신왕국이 남긴 유산은 단순히 고대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어떤 흔적을 남기며 살아갈 것인지를 묻는 거울과도 같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 공간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돌 위에 새겨진 것은 차가운 글자가 아니라, 영원히 살고 싶어 했던 뜨거운 인간의 소망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신왕국이 남긴 이 장엄한 유산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 존엄과 삶의 가치라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오늘날의 우리에게 여전히 타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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