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MMA 2025에서는 수많은 하이라이트가 탄생했죠. 그중에서도 전 세계를 무대로 가장 또렷하게 존재감을 각인시킨 장면은 단연 제니의 무대였습니다. 단순히 제니의 압도적인 퍼포먼스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날 제니가 선택한 두 벌의 드레스는 한국적인 것이 얼마나 동시대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지 확실히 증명했거든요.
시작은 〈Seoul City〉였습니다. 몽환적으로 울려 퍼지는 음악과 함께 무대 위에 드리워진 건 다름 아닌 약 15미터에 달하는 베일이었죠. 베일에는 한글로 기록된 최초의 노래 가사집 『청구영언』의 구절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단순히 얼굴을 가리기 위한 액세서리가 아닌, 자신의 기원과 마주하는 장면을 극적으로 시각화한 장치였죠. 여기에 반가사유상 복식에서 영감을 받은 구조적인 어깨 라인의 가운과 장인의 손길이 깃든 병아리 매듭 노리개를 더해 고요하면서도 단단한 아름다움을 표현했습니다. 저고리 형태에서 착안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니와 댄서들의 의상은 무대 전반에 한국적인 미학을 한가득 수놓았고요.
〈like JENNIE〉 무대에서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절정을 이뤘습니다. 한국 전통 복식인 동정과 고름에서 영감을 얻은 상의에 서양 복식의 코르셋이 결합됐죠. 덕분에 전체적인 실루엣에 긴장감과 입체감이 더해졌고, 여성의 신체가 지닌 균형과 힘이 또렷하게 드러났습니다. 하의에는 펜화 기법을 활용해 노리개와 은장도 등 한국 공예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섬세하게 담겼고, 생사 댕기 매듭을 더해 유려한 볼륨감까지 더했죠.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하며 등장한 순간, 제니는 또 한 번의 클라이맥스를 선보였습니다. 핸드 드레이핑으로 섬세하게 완성한 드레스의 컷아웃 디테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익숙한 실루엣이 떠오르죠. 바로 불국사 석가탑입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구조와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 안에 정제된 긴장감이 흐르죠. 화려함보다 비례와 균형을 중시해온 한국 미학의 정수를 현대적인 언어로 번역한 결과입니다. 조지훈의 시 「승무」 속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라는 구절처럼 한국의 정교한 미감이 그대로 구현됐죠.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드레스는 모두 르쥬의 작품입니다. 앞서제니의 'ZEN' 뮤직비디오 속 커스텀 의상으로 한국의 미를 널리 알린 브랜드죠. 주목할 점은 이 모든 의상이 철저한 수작업과 장인정신에 기반해 완성됐다는 사실입니다. 약 200시간에 걸쳐 금박장으로 새긴 2,000여 개의 ‘제니’라는 이름과 얇은 사의 결을 살리기 위한 수작업은 동시대의 가장 뜨거운 아이콘, 제니를 만나 마침내 또렷한 의미를 얻었습니다. 이보다 극적인 전통과 K-팝의 만남이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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