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김병조 기자]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이 부여의 왕자일 때 한나라와의 전쟁을 앞두고 유목민인 백산 말갈족(백두산 근처에서 살던 말갈족)을 찾아가 정착할 비옥한 땅을 내어줄 테니 전쟁에 출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말갈족은 주몽의 청을 거절한다.
그러자 훗날 주몽의 아내가 되는, 졸본의 거상이자 군장인 연타발의 딸 소서노가 말갈족을 설득해 말 100필과 용병 100명을 출전시키겠다는 답을 받아 냈다. 주몽이 설득하지 못한 말갈족을 소서노는 어떻게 설득했을까?
유목민인 말갈족은 땅이 없어서 떠돌이 생활하는 게 아니라,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그 때문에 땅을 소유할 필요가 없다. 그런 말갈족에게 주몽은 땅을 주겠다고 했으니 통할 리가 없었다.
반면에 상단을 이끌며 이리저리 원행(遠行)을 다닌 경험이 많은 소서노는 유목민의 그런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소서노는 말갈족에게 땅이 아니라 돈을 주고 용병을 샀다.
용병으로 출전하는 대가로 주몽은 비옥한 땅을 제시했고 소서노는 현찰을 제시했는데, 주몽이 제시한 선물은 유목민에게는 쓸모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걸 아느냐 모르느냐는 주몽과 소서노의 경우에서 보듯이 경험에서 차이가 난다.
독일의 유명한 택배 물류회사인 DHL은 택배 운송 차량을 몰고 직접 고객과의 접점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임원으로 승진시키지 않는 전통이 있다. 택배회사의 최종 소비자는 택배 물품을 받는 고객인데, 그런 고객을 접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임원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고객 접점에서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야 잘하고 있는 것과 잘못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외식경영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졸업 후 취업했을 때 희망하는 부서가 마케팅, 기획 분야라는 설문 결과를 접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외식경영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할 때는 외식업체에 취업하면 자원해서라도 주방보조나 홀서빙부터 시작하라고 권한다.
음식점의 고객 접점은 음식을 손님 테이블에 서빙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고객의 반응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만족하는지, 불만이 있는지, 어떤 점에 만족하는지, 뭐가 잘못됐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손님들의 표정과 대화를 통해 고객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다. 또 주방 보조원으로 일을 해보면 음식점의 핵심인력인 주방 인력의 어려움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밑바닥 생활을 해봐야 만이 나중에 본사에서 책상머리에 앉아 기획을 하고 마케팅 전략을 짜도 그것이 현장과 괴리감이 없는 이론을 만들 수 있다. 현장 경험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가맹사업법을 통해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직영점 운영 경험이 없으면 가맹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매장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실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요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산업재해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해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특히 건설현장의 산업재해는 여러 단계의 하청 때문에 발생하는데, 원청 업체가 하청 업체의 현장 애로사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산업재해를 줄이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
원청 업체도 한때는 현장 경험이 있었다고 자기합리화를 하겠지만, 대기업이 되기 전인 20~30년 전의 경험은 사실상 죽은 경험이나 마찬가지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현장의 목소리와 사정을 가감없이 듣고 반영할 수 있다면 현실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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