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강지혜 기자】올해로 창립 66주년을 맞은 한국언론학회는 회원 수 약 2000여 명을 보유한 국내 최대 규모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술단체다. 미디어 환경의 급변과 정치 양극화, 혐오와 불신이 일상화된 시대 속에서 치열한 연구와 다각적인 담론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소통의 좌표를 제시하는 학회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엄중한 시기에 지난 10월 제52대 회장으로 취임한 정성은 회장(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은 학술교류와 지식의 생산이라는 학회의 기본적 임무와 더불어 전문인 집단으로서의 사회적 책무의 실천을 학회의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며 학회의 새로운 도약과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의 삶의 이력을 한 꺼풀 더 들여다보면, 이번 취임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경주의 한센인 정착촌에서 자라며 사회적 차별과 혐오의 아픔, 그리고 왜곡된 정보의 위해를 직접 목도했던 그의 유년 시절의 경험은 그를 사회적 통합과 공동체 회복에 예민한 언론소통학자로 이끌었다.
<투데이신문> 은 정성은 회장을 만나 한센인 정착촌에서의 경험이 그의 학문적 여정에 미친 영향과 함께 한국언론학회가 그리는 비전, 그리고 오늘날 한국 언론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투데이신문>
Q. 한국언론학회 66년 역사 속에서 제52대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취임 소감과 함께 학회 소개를 부탁합니다.
66년이라는 긴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한국언론학회의 회장직을 맡게 돼 무한한 영광인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동안 학회의 토대를 닦아오신 역대 회장님들과 임원진, 그리고 모든 회원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선배님들이 쌓아오신 업적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제52대 집행부와 함께 학회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헌신하고자 합니다.
한국언론학회는 1959년 창립 이래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의 산실 역할을 해온 명실상부한 모(母)학회입니다. 현재 전국 100여 개 대학의 관련 학과 교수 및 연구자, 그리고 단체회원 등 약 2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회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을 전문가들이 검증해 사회에 제공하는 것인데 그 핵심 통로가 학술지 발간입니다. 국내 주요 학술지뿐 아니라 국제저널도 발간하고 있으며 학술 교류를 위한 전기·후기 학술대회 등을 열어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발표와 토론을 이어가는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회는 유관 기관·언론사와 협업해 평가·심사 등 전문가 역할을 수행하고 언론 관련 주요 현안이 등장할 때는 책임 있는 실천을 고민하는 조직이기도 합니다.
Q. 회장으로서 학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시는지 주요 비전과 향후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회장으로서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싶은 과제 중 하나는 학술지의 국제 경쟁력 강화입니다. 제도적 뒷받침과 안정적인 후원을 통해 학회 학술지가 국제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며 이를 위해 학회 내에 학술지 관련 독립 기구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술대회의 내실화 역시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습니다. 내년 5월 8일부터 9일까지 여수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인데 형식적인 발표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학술 교류가 이뤄져 회원들이 즐겁게 참여하고 많이 배워갈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현직 언론인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사회적 현안을 함께 논의하는, 건강하면서도 재미있는 학술대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와 함께 학회 내 연구회 활성화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현재 30개의 연구회가 운영되고 있는데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활발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집행부 차원에서 지원 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사회적 현안에 대응하는 학회의 사회책무 기능을 강화하고자 합니다. 사회책무위원회를 구성해 운영을 시작했으며 향후 이를 상설 조직으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학회가 학문 공동체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공적 기관으로서 역할을 더욱 분명히 해 나가고자 합니다.
Q. 개인적으로는 언론학이 아닌 학문에서 출발해 이 분야의 최고 자리까지 오르셨습니다. 지금의 자리까지 어떤 여정을 거쳐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서울대에서 서양사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졸업 무렵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습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신문 읽는 것을 좋아했고 당시에 인상 깊었던 칼럼들은 지금까지도 기억납니다.
막상 기자가 되려고 보니 저널리즘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서강대 신문방송학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저널리즘만 있는 게 아니라 더 큰 틀의 커뮤니케이션(소통) 학문을 접할 수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신문·방송 같은 매스미디어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광고·PR, 조직 커뮤니케이션, 대인 커뮤니케이션 등 인간 소통 전반을 다루는 거대한 세계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은사님이신 김학수 교수님을 만나 대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게 됐고 설득 커뮤니케이션의 매력에 빠지면서 기자의 꿈 대신 학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이후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설득 커뮤니케이션과 사회심리학을 바탕으로 정치·헬스·과학 커뮤니케이션 등으로 확장해 연구했습니다.
Q. 설득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쌓아오셨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학문적으로 어떤 성과를 거두셨는지 궁금합니다.
연구자로서 좋은 연구를 통해 학계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습니다. 그 결과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학술지들에 논문을 꾸준히 발표해 왔고 다수의 논문 관련 상을 받았습니다. 국내에서도 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또한 한국언론학회의 국제저널인 아시아커뮤니케이션연구 (Asian Communication Research)의 편집위원장을 맡아 수년간 운영하며 국제 학술지 목록 등재를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아울러 과학 커뮤니케이션 연구와 관련해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자들이 국내외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계에서 연구자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Q. 남다른 유년 시절을 보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희망촌’에서 성장한 경험이 소통을 연구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습니다.
제 고향은 경주 인근의 ‘희망촌’이라는 마을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곳은 한센병을 앓았다가 치료된 분들이 사회로 나와 정착해 형성된 공동체였습니다. 과거에는 치료약도 부족했고 전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강해 사회적 차별과 격리가 극심했던 시기였습니다.
아버지는 그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교회 전도사로 지내셨고 한센인 연합회 대표를 맡기도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성경에서조차 ‘문둥이’라는 비하적 표현을 사용했는데 아버지가 한센인 대표로 일하시면서 이를 ‘나병’이라는 용어로 대체하도록 하는 일을 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오랜 차별과 아픔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뿐 아니라 마을 분들 모두 열심히 살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과정을 인간 승리의 서사처럼 지켜봤고, 어떻게 하면 그분들께 존경과 감사를 표현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한센인 관련해 심하게 왜곡된 정보가 오랫동안 사회에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왜곡된 정보들로 많은 한센인들이 고통받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보고 접하며 자랐습니다. ‘한센인이 어린아이를 잡아먹는다’는 끔찍한 헛소문이 기사로까지 등장한 적이 있었는데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그로 인해 고통을 받았습니다. 차별받는 이들의 아픔과 잘못된 정보가 만들어내는 폭력성을 가까이에서 목격하며 성장한 경험은 언론과 소통의 중요성뿐 아니라 그에 따르는 위험성까지 인식하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Q. 최근 언론을 둘러싼 여러 이슈에 대한 견해도 듣고 싶습니다. 정치 양극화와 혐오 확산, 확증편향, 허위정보 문제 등이 민주주의는 물론 우리 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지금 정치 양극화가 심각한 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언론 역시 양극화 경향을 보이고 있고 독자들 또한 진영에 따라 쉽게 갈라지고 있습니다. 허위정보에 대한 우려도 큽니다. 다만 이러한 현상이 요즘 들어 갑자기 생겨난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 역시 함께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2002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ICA) 관련 당시 신문 기사를 최근 다시 살펴봤는데 그때도 국내외의 대표적인 언론학자들은 진영 논리와 양극화, 허위정보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었습니다. 확증편향 역시 어느 정도는 인간이 본래 지닌 성향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는 반면 그렇지 않은 정보는 회피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여기에 집단 정체성과 감정까지 더해지면서 정보 처리 과정은 더욱 복합적으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보다 현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양한 언론과 다양한 스펙트럼의 주장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일정 수준의 갈등과 불완전한 소통도 민주주의 사회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저널리즘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언론의 자유는 최우선 가치입니다. 다만 그 자유를 악용하는 플레이어도 늘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적 대치와 대응은 계속 필요합니다. 허위정보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는 만큼 적절한 규제 논의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언론의 자유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진영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완전히 달라지면서 서로 간의 소통이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언론의 자유가 소중한 가치인 만큼 언론이라면 적어도 서로 다른 진영이 대화할 수 있는 ‘중간지대의 언어’와 ‘소통 가능한 플랫폼’을 열어갈 책임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입장이 논의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것이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더 나은 소통을 위해 보도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결코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좋은 언론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수 있도록 이를 격려하고 뒷받침하는 제도와 문화가 함께 마련돼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한국언론학회 회장으로서 학계·언론계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학회는 연구자들이 지식을 축적하고 검증하는 곳이지만 그 지식이 사회와 만나는 통로를 넓히는 일 또한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자유로운 소통의 가치를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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