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년 역사 영국 BP, 사상 첫 '외부 여성 CEO' 영입한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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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년 역사 영국 BP, 사상 첫 '외부 여성 CEO' 영입한 뜻은?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2-22 06:17: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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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12월 17일 밤 10시.

 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지 시티가 잠들 준비를 하던 시각에 영국 에너지 산업의 상징인 BP의 이사회는 전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머레이 오친클로스(55) 최고경영자의 즉각적인 사퇴와 호주 우드사이드 에너지의 수장 멕 오닐(55·여)의 선임 발표였다. 이는 단순한 인사 교체를 넘어선 사건이다. 115년 역사를 가진 영국의 BP가 처음으로 외부 인사를 최고경영자로 영입했다는 점, 그리고 그 인물이 '화석 연료 예찬론자'로 불리는 멕 오닐이라는 점은 BP가 지난 수년간 매달려온 초록빛 야망을 공식적으로 폐기했음을 의미한다. 이번 사태의 이면에는 아일랜드 출신의 거친 승부사 앨버트 매니폴드 의장의 인내심 한계와 행동주의 투자자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칼날 같은 압박이 자리 잡고 있다.

출처=구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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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임자 버나드 루니의 불명예스러운 퇴진(직장 동료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이사회에 완전히 공개하지 않아 발생한 스캔들 ) 이후 2024년 1월 정식 취임한 머레이 오친클로스는 사실상 과도기적 리더였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BP를 통합 에너지 기업으로 재편하려던 버나드 루니의 전략이 너무 멀리, 너무 빨리(Too far, too fast) 나갔음을 인정하고 전략적 재설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BP의 주가는 경쟁사인 엑손모빌이나 쉘에 비해 지지부진했고, 투자자들은 머레이 오친클로스가 내놓은 개혁안에서 절박함을 읽지 못했다. 이러한 불만은 2025년 7월 앨버트 매니폴드가 이사회 의장으로 부임하면서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도달했다.

 이사회 의장인 앨버트 매니폴드는 건축 자재 기업인 CRH를 10년간 이끌며 시가총액을 400%나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는 효율성을 가로막는 관료주의를 혐오하며, 성과가 나오지 않는 사업부는 가차 없이 쳐내는 경영 스타일로 명성이 높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사업진출 불만

본업인 석유와 가스로 돌아가는 행보

 건축자재기업 CRH 시절 그와 함께 일했던 투자 은행가들은 앨버트 매니폴드를 두고 체스 판을 지배하는 마스터와 같았으며, 협상 테이블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을 가졌다고 회상한다. 2024년 CRH에서 약 1,360만 달러(약 184억 원)의 보수를 받았던 그는 BP 의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머레이 오친클로스에게 훨씬 더 공격적인 비용 절감과 자산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앨버트 매니폴드 의장의 시각에서 머레이 오친클로스의 개혁은 주주 가치를 회복하기에는 너무나 미온적이었다.

 엘버트 매니폴드 의장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한 결정타는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등장이었다. 약 38억 파운드(약 6조 6,000억 원)에 달하는 BP 지분 5퍼센트를 확보한 엘리엇은 머레이 오친클로스 체제의 BP를 실행력 결여와 전략적 표류의 표본으로 규정했다. 엘리엇 측 관계자는 머레이 오친클로스가 18개월 동안 고민해서 내놓은 3개년 계획은 야심도 없고 시급하지도 않다며 시간은 BP의 편이 아니고 투자자들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들은 2027년까지 잉여 현금 흐름을 200억 달러(약 27조 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연간 자본 지출을 120억 달러(약 16조 2,000억 원) 이하로 삭감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태양광과 해상 풍력 부문을 전면 매각하고 다시 본업인 석유와 가스로 돌아가라는 압박을 가했다.

 이사회 내부 회의는 흡사 재판장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 속에서 진행됐다고 한다.엘버트 매니폴드 의장은 머레이 오친클로스에게 조직의 단순화와 더 날씬한 구조를 주문하며 구체적인 수치를 들이밀었다. 머레이 오친클로스가 추진하던 5%의 인력 감축안에 대해 엘버트 매니폴드는 충분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BP가 동종 업계 경쟁사들보다 운영 비용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더 파괴적인 수준의 비용 절감을 요구했다. 머레이 오친클로스는 전략 실행을 가속화할 수 있는 적절한 리더가 식별된다면 언제든 물러날 용의가 있다며 사실상 의장의 압박에 항복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BP이사회서 극비리에 신임 CEO 찾기 

엑슨모빌 출신의 수익성만을 따지는

호주 우드사이드 에너지의 멕 오닐 낙점

 엘버트 매니폴드 의장은 머레이 오친클로스를 대체할 인물을 찾는 과정을 극비리에 추진했다. 소수의 이사들로 구성된 서치 위원회는 외부 채용 전문 기관을 통해 전 세계 에너지 업계의 거물들을 훑었다. 그들이 낙점한 인물은 호주 우드사이드 에너지의 멕 오닐이었다. 그녀는 엑손모빌에서 23년간 잔뼈가 굵은 미국 출신 엔지니어로, 자본 배분에 있어서 철저하게 수익성을 따지는 실용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엘버트 매니폴드는 멕 오닐이 우드사이드에서 BHP의 석유 부문을 인수하며 보여준 결단력과 가스를 에너지 전환의 핵심 연료로 활용해야 한다는 그녀의 확고한 신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2025년 12월 17일의 밤샘 회의 끝에 머레이 오친클로스의 사임은 기정사실화되었다. 앨버트 매니폴드 의장은 공식 성명을 통해 이번 리더십 교체는 BP를 더 단순하고, 더 군더더기 없으며, 더 수익성 높은 회사로 만들기 위한 전략적 비전을 가속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진전이 있었으나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엄격하고 부지런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머레이 오친클로스의 지난 리더십에 대한 사실상의 경질 선고였다. 머레이 오친클로스 본인 역시 이제는 새로운 리더에게 고삐를 넘겨줄 적기라며 앨버트 매니폴드가 의장이 되었을 때부터 적절한 리더가 있다면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퇴임사를 남겼다.

번 사이드 리서치의 분석가들은 이번 인사를 두고 "이사회가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인내심이 완전히 고갈되었다는 강력한 신호"라고 평했다. BP의 멕 오닐 등장은 그동안 천착해온 깨어 있는 경영(Woke Management)의 종말을 고하는 서곡이다. 그녀는 부임과 동시에 BP의 전체 포트폴리오를 재검토하고, 수익성이 낮은 친환경 자산들을 과감히 정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엘리엇이 요구했던 50억 달러(약 6조 7,500억 원) 규모의 추가 비용 절감과 자사주 매입 확대 역시 멕 오닐 체제에서 가속화될 전망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머레이 오친클로스가 사임 직전 '멕시코만 유출 사고'를 '미국의 만(Gulf of America) 기름 유출'로 언급하며 명칭 변경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기조에 맞추려는 시도였다. 이에앞서 트럼프는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이름을 바꿨다. 머레이 오친클로스의 이런 행태를 지켜본 앨버트 매니폴드 의장과 엘리엇의 눈에는 '실질적인 수익 구조 개선보다는 정치적 수사와 이미지 관리에 치중하는 모습'으로 비쳤을 뿐이다. 앨버트 매니폴드 의장은 BP가 더 이상 정치적 올바름이나 명목뿐인 환경 지표에 매달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BP가 가장 잘하는 것, 즉 땅속에서 석유와 가스를 캐내어 현금을 창출하는 근본적인 사업 모델로의 회귀를 주문하고 있다.

 앞으로 멕 오닐과 앨버트 매니폴드라는 두 명의 외인 리더가 이끌 BP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앨버트 매니폴드 의장은 CRH 시절 본사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미국 뉴욕으로 옮겨 기업 가치를 폭등시킨 성공 방정식을 BP에도 대입하려 할 것이다. 이미 시장에서는 BP의 미국 증시 상장이나 본사 이전설이 파다하다. 멕 오닐이 엑손모빌 시절 휴스턴에서 쌓은 인맥과 미국식 자본 규율에 대한 깊은 이해는 이러한 전략적 이동의 훌륭한 자산이 될 것이다.

 머레이 오친클로스의 퇴진은 개인의 실패라기보다, 시대착오적인 에너지 전환 속도에 베팅했던 BP의 구조적 오류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앨버트 매니폴드라는 거친 성격의 의장은 그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가장 날카로운 칼을 뽑아 들었다. 이제 BP는 초록색 세탁을 멈추고 다시 검은 황금의 시대로 돌아가려 한다. 자본의 논리는 차가웠고, 의장의 인내심은 짧았으며, 변화의 속도는 무자비했다. 멕 오닐이 정식 취임하는 2026년 4월, BP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 영국 회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수익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미국식 에너지 기계로의 변모를 의미한다. 앨버트 매니폴드가 직원들에게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머레이 오친클로스에 대한 감사는 아주 짧았고, 향후 펼쳐질 가속화된 변화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BP의 미래가 어떤 색깔일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분석가 애슐리 켈티는 "머레이 오친클로스는 버나드 루니 시절 추진된 수익성 낮은 재생 에너지로의 재앙적인 피벗을 설계한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며 "그의 영감 없는 리더십이 BP를 오랫동안 침체에 빠뜨렸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냉혹한 평가 속에서 물러난 머레이 오친클로스는 2026년 12월까지 고문직을 맡으며 인수인계를 돕겠지만, BP 내부에 그의 자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앨버트 매니폴드는 BP를 그들이 가장 잘하는 분야인 상류 석유 및 가스 생산으로 복귀시키겠다는 의지를 엘리엇과의 만남에서 분명히 했다. 이는 지난 수년간 환경 운동가들의 환호 속에 추진되었던 BP의 모든 행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선언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자본 시장이 기업의 리더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장밋빛 비전보다는 당장 주머니에 꽂아줄 수 있는 현금과 명확한 실적을 원한다는 것이다. 앨버트 매니폴드는 그 욕망을 가장 정확히 읽어낸 리더였고, 머레이 오친클로스는 그 욕망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희생양이었다. 런던 밤거리를 울린 사임 소식은 글로벌 에너지 메이저들이 처한 냉혹한 현실이자, 새로운 생존 방식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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