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에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의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김종길(1926~2017)은 시인이자 영문학자다. 본관은 의성(義城), 본명은 김치규(金致逵)이며, '종길(宗吉)'은 그의 아호다. 고려대에서 영문학 교수로 34년간 재직하며 현대 영미시와 시론을 소개하고 한시와 한국 현대시를 영어로 번역해 영미권에 알렸다.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문(門)」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시집으로 『성탄제』(1969), 『하회에서』(1977), 『황사현상』(1986), 『천지현황(天地玄黃)』(1991), 『달맞이꽃』(1997), 『해가 많이 짧아졌다』(2004), 『해거름 이삭줍기』(2008), 『그것들』(2011), 『솔개』(2013)를 남겼다.
김종길 시인은 안동의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한학을 수학한 이후 영문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세속에 거주하면서도 삶과 시가 격(格)을 벗어나는 것을 용인하지 않으며, 인내와 초연함으로 선비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의 시는 감상이 넘치지 않고 간결한 언어로 이미지를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탄제’는 시인이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대구의 어느 거리를 거닐며 쓴 시다. 이 시는 시인이 태어난 지 2년 반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그 일 년 후 감기 뒤 폐렴으로 한 달 가량 몹시 앓았던 기억에서 출발한다. 이 시에서 추운 겨울밤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가 상징하는 아버지의 사랑은 성탄제의 분위기와 어울려 그 성스러움 느낌을 준다.
이반 시시킨 ‘겨울’(1890). 캔버스에 유화, 125.5x204cm. 러시아박물관 소장
이반 시시킨(1832~1898)은 러시아의 풍경 화가로 모스크바예술학교 건축/조각부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 아이들이 먹는 초콜릿 포장지부터 달력과 교과서까지 일상 곳곳에서 함께하는 ‘국민 화가’다. 그는 ‘숲의 차르(황제)’라 불릴 정도 숲 그림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리언 앤더슨,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매리언 앤더슨(1897~1993)은 미국의 흑인 콘트랄토 오페라 가수. 정열적이고 깊은 정취에 충만된 알토로 연주곡목도 다양하고 흑인영가의 제1인자로 불린다. 또한 흑인 최초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 선 가수다.
‘아베마리아’는 프란츠 슈베르트가 월터 스콧의 서사시 《호수의 연인》을 가사로 삼아 1825년 발표한 가곡으로 서사시 중에서 호수의 연인 엘렌 더글라스가 성모 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 김시행 저스트이코노믹스 논설실장: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산업부, 증권부, 국제부, 문화부 등 경제·문화 관련 부서에서 기자, 차장, 부장을 두루 거쳤다. 한경 M&M 편집 이사, 호서대 미래기술전략연구원 수석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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