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이 지난 11월 국가유산청 고시를 통해 국보로 지정되었다. 국가유산청은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고려 초기 석탑의 특징을 함께 보여주는 기준작이라는 점, 학술적·예술적 가치와 우수한 보존 상태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국보로 확정했다.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이후 63년 만에 서산에서 탄생한 국보로, 한국 석탑사에서 보원사지 오층석탑이 차지하는 위상을 새롭게 확인한 계기다.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오랜 세월 말없이 서 있었지만, 그 침묵 속에는 한국 불교미술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새겨져 있다. 이는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이어지는 미학과 사상의 흐름을 돌에 기록한 역사적 증언으로서, 국보 지정은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석탑의 가장 큰 의미는 통일신라와 고려를 잇는 가교적 성격에 있다. 통일신라 석탑의 정제된 비례와 안정된 구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고려 초기 특유의 조형 감각과 변화의 조짐을 함께 담고 있다. 양식의 단절이 아닌 계승과 전환의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그 학술적 가치가 크다.
기단부에서 탑신, 옥개석에 이르기까지 구조적 완성도가 높다. 각 부재는 장식을 앞세우기보다 비례와 균형에 집중하며, 질서와 안정감을 통해 불교적 이상 세계를 구현한다. 특히 옥개석의 추녀선은 시선을 붙든다. 지나치게 날카롭지도, 무겁게 처지지도 않은 선은 통일신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점차 새로운 조형 감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탑이 석탑 양식 전환기의 기준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보존 상태 또한 주목할 만하다. 원형이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어 있어 축조 기법과 조형 의도를 정확히 읽을 수 있다. 이는 석재 가공 기술과 구조적 계산의 수준을 보여주는 동시에, 오랜 기간 이 공간이 성역으로 존중받았음을 증명한다.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학계에서도 중요한 좌표로 활용돼 왔다. 석탑의 연대 추정과 양식 분류를 논할 때 반복적으로 언급되며, 한국 석탑사의 흐름을 설명하는 기준점 역할을 해왔다. 국보 지정은 이러한 학술적 평가를 제도적으로 확인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탑이 서 있는 보원사지는 보원사지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걸쳐 불교 사상과 제도의 변화가 집약된 공간이었다. 법인국사 탄문이 머물며 중창을 주도한 이 사찰은 당시 불교계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였고, 오층석탑은 그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세워진 상징적 구조물이다.
석탑은 불법의 영원성과 우주 질서를 시각화한 조형물이다.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이를 절제된 형식으로 구현함으로써, 고려 초기 불교가 지향한 수행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권력 과시와는 거리를 두고 내적 균형과 긴장을 중시한 조형은 당시 불교 미술의 정신적 방향을 명확히 드러낸다.
국보 지정 이후,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지역 문화유산을 넘어 한국 석탑사 전체를 이해하는 대표적 사례로서 위상이 강화되었다. 향후 연구와 해석이 더해질수록, 이 석탑은 새로운 질문과 답을 생성하며 시대마다 다르게 읽히는 문화유산으로 기능할 것이다.
천 년을 견뎌온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그 침묵 속에서 한국 불교미술의 연속성과 변화를 증언하고 있으며, 국보라는 이름은 그 오랜 이야기를 이제야 공식적으로 호명한 결과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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