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신공항 건설 논의와 추진이 정치권의 입법과 지지 속에 반복되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권은 ‘지역경제 활성화’, ‘스마트 물류’, ‘관광객 유치’, ‘미래 성장동력’ 같은 화려한 구호로 대규모 국책사업인 공항 건설을 부추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수차례 실패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같은 논리, 같은 환상, 같은 예산 낭비가 되풀이되고 있다. 더는 눈가림식 개발 논리로 국민 세금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실패 사례는 분명하다. 영암 F1 경주대회는 수천억원을 투입하고도 흑자로 전환하지 못한 채 시설이 방치됐고 무안국제공항은 ‘호남권 허브공항’을 외쳤지만 수요 부족으로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새만금 세계잼버리와 여수엑스포 역시 일회성 이벤트와 수익성 부재로 유지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또한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례로 거론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규모 개발이 곧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허구의 논리에 기댔다는 점이다.
공항 건설도 다르지 않다. 공항을 지었다고 화물 물동량과 여객 수요가 자동으로 늘지는 않는다. 물류와 항공 수요는 글로벌 공급망 구조, 산업 경쟁력, 항만·철도 네트워크, 배후 산업 인프라에 의해 결정된다. 공항이 수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요가 있기 때문에 공항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순서를 거꾸로 놓은 채 공급을 늘리겠다는 발상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경제성 분석 역시 이를 증명한다. 신규 공항 후보지 대부분은 B/C(비용 대비 편익) 1.0 미만이며 정부의 수요 예측은 반복적으로 과다 산출돼 왔다. 무안공항은 2023년 이용객이 최초 수요 예측치의 2% 수준에 그쳤고 양양국제공항 역시 국비 수천억원을 투입하고도 개항 이후 막대한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나 해양수산부가 추진한 철도·공항·항만 사업 가운데 수요 예측이 실제와 부합한 사례는 거의 없다.
문제는 건설 이후다. 공항은 건설비뿐 아니라 매년 수백억원의 운영·유지비가 소요되며 적자는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진다. 재정 부담이 늘어날수록 안전·복지·교육 등 필수 영역의 예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환경 파괴와 지역 갈등도 뒤따른다. 해안 매립과 산지 절개는 생태계를 훼손하고 소음과 오염은 인근 주민의 삶을 장기간 위협한다. 공항 건설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가 분열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역경제를 살릴 해법이 공항뿐이라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지역 산업 구조 혁신, 스마트 물류 클러스터, 특화 제조·농수산 가공 산업 육성, 항만·철도·도로 복합 물류망 고도화, 청년 산업 인재 양성 등은 훨씬 지속가능한 대안이다. 이제는 토건 중심 개발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봇, 드론, 수소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등 소프트 파워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적 포퓰리즘을 위해 가짜 논리를 반복하며 공항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질문은 “누가 공항을 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비용을 부담하고, 누가 이익을 얻는가”다.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환상을 지탱하는 개발은 공공선이 아니다. 신공항 건설이 지역경제 활성화의 만능열쇠라는 주장은 명백한 허구다. 이제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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