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해외주식 마케팅 광고를 일제히 중단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모바일·웹 광고 대부분이 미국 주식투자 상품광고였으나, 지난주 후반 이후 관련 광고가 자취를 감췄다. 증권사들은 현금 이벤트가 아닌 상품 광고도 일제히 내렸다. 금융감독원이 내년 3월까지 해외 투자 관련 신규 현금성 이벤트 등을 중단할 것을 권고한 데 따른 조치다. 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1480원을 돌파하자 '투자자 보호'를 명목으로 사실상 해외주식 투자를 규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규제 효과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이미 미국주식 거래량이 900조원을 돌파할 만큼 기세를 탄 서학개미 움직임을 '마케팅 중단'으로 멈출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2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들은 지난 19일을 전후해 해외 주식투자 광고를 일제히 내렸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19일부터 해외투자관련 이벤트를 전면 중단했다. KB증권도 내년 1월 말까지 진행하려던 주식쿠폰 이벤트를 지난 12일로 종료했다. 삼성증권도 해외투자 상품 광고를 일시 중단키로 했다. 중소형 증권사들도 마찬가지다. DB증권은 그동안 해외주식 수수료 무료 제공 등 이벤트를 홈페이지 전면에 배치했으나 지금은 채권 매수이벤트 등으로 대체했다. 해외 파생상품 관련 당국의 검사를 받는 키움증권과 토스증권도 관련 이벤트를 조기에 끝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 19일 금감원의 해외 투자 관련 이벤트 중단 조치 때문이다. 금감원은 해외주식 투자에 나선 개인의 손실이 크다는 점을 들어 내년 3월까지 해외투자 관련 신규 현금성 이벤트 및 광고를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 투자자를 현혹하는 과장광고, 과도한 투자권유, 투자위험에 대한 불충분한 설명 등이 적발되면 영업중단 조치도 취하겠다고 엄포도 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국 기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일단 모든 해외투자 관련 광고를 내린 상태”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불과 3주 만에 돌변한 이찬진 원장의 '입'에 주목한다. 이 원장은 이달 1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해외주식 투자를 직접적으로 규제하려는 차원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고환율 타개책의 하나로 서학개미 투자 제한 등이 필요하다는 당국 일각의 기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19일에는 "증권사들이 투자자 보호는 뒷전인 채 눈앞의 수수료 수입 확대에만 치중한다", "증권사 수수료 수입은 크게 늘었지만, 개인들의 이익은 크게 줄었다"고 강도 높게 질타했다.
증권가에선 금융당국이 서학개미에 대한 양도세 강화 등 직접적 규제를 꺼냈다가 여론이 좋지 않자, 증권사 압박이란 우회적 통제에 나선 것이라고 본다. 명목은 '투자자 보호'이지만 해외투자를 유도하는 광고를 중단하면 투자가 줄 것으로 정부가 생각한다는 얘기다.
실효성엔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올해(1월 1일~12월 18일) 미국 주식 거래량(매도+매수)은 6143억 달러로 지난해 전체 거래량 5099억 달러 대비 20.5% 늘었다. 지난 18일 기준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약 1621억 달러로 지난해 말(1121억 달러) 대비 44.6% 급증했다. 한 증권사는 "급증하는 서학개미 투자가 광고를 중단한다고 잠잠해지겠느냐"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지난 19일 해외투자 규제의 근거로 든 '개인투자자 해외주식 계좌 중 절반이 손실'이란 지적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불완전판매 등 명백한 잘못이 없는데도 마치 증권사의 과장광고가 손실의 원인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란 지적이다. 한 해외주식 투자자는 “국내 증시에서 손해를 봤을 때 마케팅을 금지하거나 투자자를 보호한 적이 있었나”라며 “형식적으로는 규제가 아니라지만 해외주식을 사실상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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