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한 금융사 책임을 강화하는 입법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는 1500만원을 한도로 두고, 과실을 따지지 않고 피해를 전액 보전하는 ‘무과실 배상책임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관련 법안은 빠르면 23일 발의된다.
21일 금융당국과 국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해 금융사가 일정 금액까지 전액 배상을 하도록 하는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때 전액 보상이 적용되는 상한선은 1500만원으로 설정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피해를 보전할 수 있는지와 금융사의 부담 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기준”이라며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 데이터를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결과, 1500만원 기준이면 상당수 피해 사례를 포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법안에는 금융사의 배상 책임을 제한할 수 있는 면책 조항도 포함될 전망이다. 다만 구체적인 면책 요건을 법률에 촘촘히 규정하기보다 은행이 사전에 보이스피싱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했는지 여부 등 대원칙만 담고, 세부 기준은 시행령 등 하위 법령에 담는 방향이 유력하다.
이는 범죄 수법이 빠르게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특성상 법률에 일일이 기준을 명시할 경우 제도 경직성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앞서 금융당국과 정치권은 보이스피싱 대책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면책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지 지속적인 논의를 이어왔다. 금융당국은 제도 시행 이후에도 피해 유형과 금융 환경 변화에 맞춰 기준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법안은 정부가 지난 8월 발표한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의 후속 조치 성격이다. 당시 정부는 금융사 등 보이스피싱 예방 책임이 있는 주체가 피해액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배상할 수 있도록 제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은행권은 자체적으로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한 자율 보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 피해자가 보상을 신청하더라도 지급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10% 수준에 그친다. 과실 입증 부담이 피해자에게 과도하게 전가돼 있다는 지적이 반복돼 온 이유다.
다만 법안이 발의되더라도 실제 시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정부와 국회는 입법 절차를 거쳐 2027년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보이스피싱 대책 TF 측은 최종 발의안의 구체적인 배상 한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오는 30일 열리는 보이스피싱 대책 TF 당정협의회 및 성과보고회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Copyright ⓒ 아주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