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시작되면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고, 자연스럽게 분리수거 횟수도 잦아진다. 투명 페트병을 버릴 때 라벨을 떼고, 다른 플라스틱과 구분해 배출하는 일은 이제 많은 가정에서 습관처럼 굳어졌다.
2020년 12월부터 시행된 ‘무색 페트병 별도 분리배출’ 제도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도입 5년 만에 전면 재검토 대상에 올랐다. 정부가 제도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는 방안까지 논의하고 있다.
무색 페트병 분리배출, 왜 시작됐나
무색 페트병 별도 분리배출은 재활용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플라스틱은 재질과 색상이 섞일수록 처리 과정이 복잡해지고, 결과물은 섬유나 노끈 같은 저부가 제품으로만 쓰이기 쉽다. 반면 색이 없는 투명 페트병은 세척과 가공 과정을 거치면 식품 용기 원료로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이 점이 정책의 출발선이었다.
정부는 시민들이 투명 페트병을 따로 배출하면 일정한 수거 물량이 확보되고, 이를 토대로 선별업계가 전용 설비를 마련할 여지가 생길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라벨 제거 의무, 전용 수거함 설치, 배출 기준 위반 시 과태료 부과 등 세부 지침이 함께 시행됐다. 공동주택과 단독주택 모두 같은 기준을 적용받고 있다.
현장에서 드러난 구조적 한계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처음 구상과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투명 페트병을 식품 용기 원료로 다시 사용하려면 수거부터 세척, 가공까지 별도의 처리 라인이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이런 설비를 운영하는 선별업체는 많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전체 선별시설 가운데 전용 라인을 갖춘 곳은 일부에 그친다.
이 과정에서 시민 불만도 이어졌다. 분리배출 기준을 지켜 투명 페트병을 따로 모아도, 수거 단계에서 다른 플라스틱과 함께 실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무색 페트병 전용 수거함이 설치돼 있지만, 수거 차량에 적재되는 순간 일반 플라스틱과 섞이는 사례가 반복됐다.
라벨을 떼고 별도로 배출한 수고가 현장에서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분리배출의 의미를 실감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왔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페트병 가운데 식품 용기 원료로 다시 사용되는 비율이 낮다는 점도 이런 인식을 키웠다.
정부, 제도 전면 재검토 착수
정부는 ‘탈 플라스틱 로드맵’ 개편 논의 과정에서 무색 페트병 별도 분리배출 제도를 다시 살펴보고 있다. 유지, 보완, 폐지까지 모든 선택지를 열어두고 검토 중이다. 현재로서는 별도 배출 기준을 없애는 방향에 무게가 실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환경단체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술 발전을 인정하면서도 혼합 처리 과정에서 물과 세척 물질, 에너지 사용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짚는다. 이미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제도를 한 번에 바꾸기보다는 운영 방식부터 손보는 접근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기술 변화와 정책 방향 고민
재활용 기술 환경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광학 선별 장비, 자동 분류 설비, 고도화된 세척 공정이 도입되면서 혼합 수거된 폐플라스틱에서도 투명 페트병을 골라내는 방식이 가능해졌다. 일부 업체는 이런 공정을 거쳐 만든 재생 원료로 식품 용기 사용 승인을 받았다.
이런 변화는 정책 방향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기술로 분류와 정제가 가능한 범위가 넓어졌는데도, 시민에게 별도 배출 부담을 계속 지우는 방식이 맞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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