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고금리와 고물가의 긴 터널을 지나온 한 해, 금융권의 화두였던 '상생금융'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보여주기식의 일회성 현금 지원이나 이자 환급에 그쳤던 방식에서 벗어나 소상공인의 경영 체질을 개선하고 사회적 위험을 분담하며 미래 세대에게 투자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뉴스락>뉴스락>은 연말을 맞아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금융 각 업권이 '업의 본질'을 살려 새롭게 그려낸 상생의 지도를 펼쳐보고, 단순한 지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기반'을 다지는 금융권의 변화된 노력과 그 의미를 짚어본다.
현금 살포 넘어 '자생력' 심었다… 2조 1000억 상생의 진화
은행권은 연초 1조 5000억 원 규모의 이자 환급 공통 프로그램을 조기 마무리한 뒤, 곧바로 은행별 자율 프로그램 집행에 나섰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자율 프로그램 목표액 6156억 원 가운데 5918억 원이 상반기에 집행돼 목표 대비 96%에 달했다.
재원을 신속히 투입해 체감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과거 연말에 집중되던 상생금융과는 결이 다르다.
자율 프로그램은 ▲소상공인·소기업 지원(2020억 원) ▲청년·금융취약계층 지원(1594억 원) ▲서민금융진흥원 출연 등(2304억 원)으로 구성됐다.
특히 소상공인 지원은 단순 대출 감면을 넘어 고정비 부담 완화와 경영 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은행들은 전기료·통신비 등 경비 지원에 312억 원을, 보증료 지원에 83억 원을 투입했다.
여기에 142억 원을 들여 경영 컨설팅과 키오스크 도입 등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며, 급변하는 영업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핀셋형 지원'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올해 상생금융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은행 산업이 사회와 공존하기 위한 필수 생존 전략이었다"며 "내년에도 취약 차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책을 발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수익보다 '기반'에 투자했다… 상생은 느리지만 길었다
자산운용업계의 상생금융은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현금 지원도, 대규모 공동 프로그램도 없다.
대신 운용사들은 자본을 굴리는 본업의 방식을 그대로 사회로 확장하는 길로, 상생의 단위는 '지급'이 아니라 '투자'였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자산운용업계의 사회공헌 활동은 장학·교육, 학술 진흥, 취약계층 자립 지원 등 장기 프로젝트 중심으로 전개됐다.
일회성 기부보다 특정 대상을 정해 수년간 지원하거나, 금융·투자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뤘다.
특히 두드러진 것은 청소년·청년 대상 장학과 교육 지원이다.
일부 운용사는 취약계층 학생을 소수로 선별해 장기간 후원하는 방식을 택했고 임직원이 직접 선발·멘토링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단기간 성과를 내기보다는 자산 형성 이전 단계에서의 ‘출발선 격차’를 줄이겠다는 접근이다.
자산운용업의 전문성을 살린 재능 기부형 상생도 이어졌다.
금융 멘토링, 경제 교육, 투자 기초 교육 등은 현금 지원보다 즉각적인 체감은 낮지만 금융 이해도를 높여 장기적으로 금융 취약을 줄이겠다는 목적을 공유했다.
자산운용업계의 선택은 '자본'은 단기 처방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라는 인식이다.
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하고, 증권이 역량과 참여를 확장했다면, 자산운용사들은 '기반을 키우는 투자'를 통해 상생의 또 다른 축을 맡았다.
'돈 대신 시간과 지식'… 증권업 상생은 장기 투자
증권업계의 상생금융은 은행권과 다른 궤적을 그렸다.
고금리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즉각적인 현금 지원보다는 금융의 본업을 사회적 과제와 연결하는 장기적 접근이 중심이 됐다.
체감 속도는 느리지만 방향성만큼은 분명했다고 보여진다.
금융투자협회가 발간한 '2025 금융투자업계 사회공헌활동 통합 백서'에 따르면 증권업계의 상생 활동은 공통 프로그램보다는 각 사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자율형·참여형 모델로 전개됐다.
단기 민생 지원보다는 금융교육, 취약계층 자립, 문화·환경 영역 등 비가격적 방식의 상생이 주를 이뤘다.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금융교육으로 업계 전반에서 청소년·청년·군 장병·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금융 이해력 제고 프로그램이 확대됐다.
금융사기 예방, 신용 관리, 합리적 투자에 대한 교육을 통해 위험을 줄이고 선택의 질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상생의 범위는 생활 안정과 문화·환경 영역으로도 확장됐다.
일부 프로그램은 예술·환경·지역 기반 활동을 통해 금융회사가 축적한 자본과 공간, 인적 자원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단순 기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관계와 참여를 전제로 한 사회공헌이라는 점에서 기존 연말 행사 중심의 관행과는 결이 달랐다.
다만 한계도 분명하다. 고금리·고물가 국면에서 금융 소비자가 체감하는 부담을 직접적으로 덜어주기에는 증권업계 상생이 상대적으로 간접적이다.
'지금 당장'의 효과보다는 '다음 위기'를 대비하는 성격이 강해 성과가 숫자로 드러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유석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은 백서를 통해 "사회공헌은 우리의 본업과 맞닿아 있다"며 "금융이해력 향상을 통해 금융 취약을 줄이고, 자본을 사회적 과제와 연결하는 것이 금융투자업계가 지향하는 상생"이라고 밝혔다.
현금 대신 '보장'… '상생'은 위험을 나누는 방식
보험업계의 상생금융은 현금 지원이나 금리 인하보다는 보험의 본질인 '위험 분산' 기능을 사회적 상생으로 확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생명보험·손해보험 업계는 공동으로 상생기금을 조성해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보험료 전액을 지원하는 무상보험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단기 현금 지원이 아닌, 사고·재해·질병 등 예기치 못한 위험을 사회가 함께 부담하겠다는 접근으로 해석된다.
해당 상생 프로그램에는 상해·질병 보험을 비롯해 화재·풍수해 등 재난 대응형 보장이 포함됐다.
일부 상품은 다자녀 가구와 청년층을 대상으로 설계돼 저출산 대응과 생활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와도 맞물려 있다.
지원 대상과 방식은 지방자치단체 공모를 통해 지역 여건에 맞게 운영되는 구조다.
보험업계 상생의 또 다른 축은 상품 구조 자체의 변화다.
청년층과 금융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저축·보장 결합형 상품, 부채 대물림을 막기 위한 신용보험 등은 수익보다 보호 기능을 전면에 내세운 사례로 분류된다.
이는 보험사가 위험을 가격으로만 계산하던 기존 관행에서 한 발 물러났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다만 체감도는 제한적이다. 보험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효과가 드러나지 않는 특성상, 상생의 성과가 즉각적으로 느껴지기 어렵다.
무상보험 역시 가입 대상과 보장 범위가 제한돼 있어 광범위한 민생 부담 완화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보험업계의 선택은 분명하다.
'돈을 나누는 대신 위험을 나누겠다'는 방식으로 고금리·고물가 국면에서 현금성 지원이 주목받는 가운데, 보험업계는 보장의 공공성을 앞세워 상생의 또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공식 정책은 아직"… 여신금융권 상생은 '실험적 접점' 모색
카드·캐피탈 업계는 다른 금융업권처럼 금융당국의 공식 상생금융 발표가 없는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상생 성격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여신금융의 장점을 활용해 민생과 접점을 넓이려는 여러 시도를 병행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소상공인·취약계층 대상 프로그램과 광의의 소비 촉진 사업 등이 거론된다.
먼저 소상공인을 위한 금융접근성 확대 차원에서 햇살론카드, 성실상환자 후불교통카드가 언급된다.
이 제도는 기존 신용 제약으로 이동·거래에 제약을 받는 이용자에게 후불형 교통카드를 제공해 금융 접근성과 생활 편의를 동시에 보완하는 성격으로 풀이된다.
또한 업계는 민생 소비 쿠폰 사업과 상생 페이백 사업을 광의적 상생금융 활동으로 진행했다.
이들 사업은 소비 진작과 가계 부담 완화 효과를 겨냥한 카드 기반 프로그램으로 경기 침체 국면에서 소비를 촉진하는 부수적 역할을 했다.
카드·캐피탈 업계 상생 시도는 규모나 체감 효과 면에서 은행·증권·보험과 비교하면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금융 접근성과 소비 진작을 겨냥한 시도는 금융권 상생 논의의 범위를 확장하는 단초로 작용했다는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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