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세금 완화, GPU·비자·정주여건 전폭 지원
"백화점식 전략으론 싱가포르·두바이 못 이긴다"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글로벌 인공지능(AI) 3대 강국에 도전 중인 정부가 우리나라를 아시아 태평양 지역 우수 인재와 스타트업이 살기 위해 찾는 '둥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국내 AI 인재 거액 연봉과 성장 기회가 제공되는 미국, 중국으로 유출되는 현상을 적극적인 해외 인재 유치를 통해 해소하고 국내 AI 생태계를 활성화하겠다는 복안인데 과감한 투자, 규제 완화와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 "한국을 아태 AI 허브로…규제 완화·전폭적 우대 검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2일 대통령 업무계획에서 아태 지역 우수 AI 인재나 스타트업에 창업·연구·정주 공간과 컴퓨팅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우리나라를 '아태 AI 허브'(AHAP·AI Hub of Asia-Pacific)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AI 개발과 서비스 실증에 적용되는 규제 강도를 상당 부분 낮춘 'AI 특화 시범 도시'를 조성해 글로벌 인재와 우수 스타트업을 유치한다는 구상이다.
K 콘텐츠·컬처 붐이 일면서 한국살이에 매력을 느끼는 구미·중동·동남아 인재들이 늘고 있고 엔비디아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다량 확보로 한국의 AI 개발 인프라가 갖춰지며 개발자들의 관심도가 높아진 점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아태 지역 우수 AI 인재와 스타트업이 모여 연구와 초기 창업 활동을 활발히 하면 관련 데이터 축적과 국내 AI 생태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과기정통부는 향후 유치한 해외 인재와 스타트업에 엔비디아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AI 인프라를 우선 제공하고 법인세·소득세 감면, 투자 세액 공제 등 세금 혜택과 규제 적용 예외 등의 특례를 주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자율주행, AI 의료, 로보틱스 등 다양한 분야의 AI 서비스를 개발하고 실증하려면 '규제 프리존'으로 운영할 필요성도 고려하고 있다.
거주와 창업 공간을 저렴하게 제공하고 국민성장펀드 등과 연계한 투자 유치를 지원하는 것도 정부 계획 중 하나다.
해외에서도 특정 지역을 'AI 특구' 등으로 지정해 전폭적인 규제 완화와 인재·기업 모시기에 적극 나서는 사례들이 이미 쏟아지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 4월부터 AI 성장 특구(AI Growth Zones) 지정 절차를 공식적으로 시작했고 200곳 이상의 지방자치단체가 손을 들었다.
싱가포르는 AI 분야 최우수 해외 인재에게 5년 거주 허가인 '원 패스' 비자를 줘서 안정적인 연구·사업 활동을 보장하며 부양가족 구직도 허가해 매력적인 해외 취업처로 인기를 끌고 있다.
◇ 내년 공모 통해 지자체 선정…업계, 세밀한 유치 전략 주문
아태 AI 허브를 어느 지역에 조성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과기정통부는 내년 본격적인 사업 기획을 거쳐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공모 과정을 통해 선정할 예정이다.
인구 유출 지역의 인프라 개선 사업과 AI 거점 도시를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나 이미 쇠락한 지역은 AI 인재의 자녀가 다닐 국제학교 등의 교육 인프라가 열악하거나 기존의 국내 AI 연구개발 생태계와 동떨어져 있는 어려움이 있다.
과기정통부는 또 AI 인재가 손쉽게 입국해 체류 자격에 대한 걱정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무비자 제도를 운용하는 등의 방안을 외교부·법무부 등과 협의 중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미·중 양대 강국의 틈새에서 전략적인 AI 인재 허브가 될 가능성을 놓고 기획안을 짜는 중"이라며 "해외 인재, 스타트업이 국내에서 활동하며 우리 AI 업계와 협업한 뒤 함께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노릴 수 있다"고 기대했다.
국내 AI 업계에서는 정부 구상에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실효성을 거두기 위한 치밀하고 중장기적인 정책 설계·추진을 주문했다.
AI 기업에서 인재 양성 리더를 맡은 한 전문가는 "해외 인재 유치 프로젝트의 성패는 '규제 프리'가 얼마나 실효성 있게 설계되느냐에 달렸다. 선언적 완화가 아니라 데이터 활용부터 상용화까지 전 주기에 걸친 구체적 특례와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통해 한국을 선택할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재 유치는 급여보다 비자·배우자 취업·자녀 교육·주거를 통합한 '삶의 패키지' 지원이 핵심"이라며 세심한 지원 없이는 이미 AI 인재 유치에 사활을 건 싱가포르·두바이 등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범용 AI 전 분야를 다루겠다는 건 메시지도 약하고 경쟁력도 떨어진다"며 "K-콘텐츠·게임·방위 산업 등 한국의 강점 분야에 집중해 특정 영역에서 한국이 아태 지역의 명실상부한 허브가 될 때 인재들도 몰려올 것"이라고 제언했다.
c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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