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플러스] 클래식의 재치, 무대 위에서 설탕처럼 녹다...쇼뮤지컬 '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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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플러스] 클래식의 재치, 무대 위에서 설탕처럼 녹다...쇼뮤지컬 '슈가'

뉴스컬처 2025-12-21 00:00:00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고전은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의 눈이 더욱 까다로워진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 수없이 변주된 캐릭터, 그리고 명작이라는 타이틀은 창작자에게 양날의 검이다. 브로드웨이 정통 쇼뮤지컬 ‘슈가’는 이러한 부담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고전을 오늘의 무대 언어로 재구성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원작의 유쾌함을 유지한 채, 공연 예술로서의 생동감을 앞세워 관객을 설득한다.

‘슈가’는 고전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를 원작으로, 1929년 금주법 시대의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다. 대공황의 그늘과 범죄의 공포가 뒤섞인 시대 속에서, 가난한 뮤지션 ‘조’와 ‘제리’는 우연히 갱단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며 삶의 전환점을 맞는다. 이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여장과 도피는 극의 중심 사건이자, 이후 펼쳐질 코미디와 로맨스의 출발점이 된다.

뮤지컬 '슈가' 공연모습. 사진=PR 컴퍼니
뮤지컬 '슈가' 공연모습. 사진=PR 컴퍼니

공연은 빠른 템포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장면 전환은 쉼 없이 이어지고, 시카고에서 마이애미로 이동하는 여정은 무대 위에서 유려하게 압축된다. 마치 잘 편집된 영화처럼 흐르는 서사는 관객에게 긴 호흡을 요구하지 않으며, 이야기의 리듬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게 만든다. 속도감은 쇼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지닌 쾌감을 극대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무대 연출은 화려함과 기능성을 균형 있게 조율한다. 시대적 분위기를 살린 세트와 의상은 1930년대 미국의 공기를 효과적으로 환기시키며, 과도한 장식에 의존하지 않고 배우의 움직임과 음악이 중심이 되는 공간을 형성한다. 장소가 시시각각 바뀌는 구조 속에서도 관객의 몰입이 흐트러지지 않는 이유다.

음악은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라이브 밴드가 만들어내는 풍성한 사운드는 극 전체를 관통하며, 무대 위 에너지를 끊임없이 밀어 올린다. 브로드웨이 쇼뮤지컬의 정수를 계승한 음악은 탭댄스와 결합해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며, 공연장의 공기를 경쾌하게 진동시킨다.

‘조’와 ‘제리’ 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는 작품의 균형추 역할을 한다. 여장이라는 설정은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이지만, 작품은 이를 외형적 희화화에 머물게 두지 않는다. 배우들은 위기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불안, 욕망, 그리고 엉뚱한 용기를 설득력 있게 쌓아 올리며 캐릭터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특히 이번 작품을 위해 파격적인 변신에 나선 엄기준, 이홍기, 남우현, 정택운, 김법래, 김형묵, 송원근 등은 각기 다른 결의 에너지로 ‘조’와 ‘제리’의 이중성을 표현한다. 동일한 역할임에도 배우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호흡은 재관람의 재미를 더하며, 앙상블 공연의 매력을 확장한다.

타이틀 롤 ‘슈가 케인’은 극의 정서적 중심축이다. 솔라, 양서윤, 유연정이 맡은 ‘슈가’는 매력적인 보컬리스트이자,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는 핵심 인물로 기능한다. 이 캐릭터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무대를 장악하는 주체로 그려지며, 당당한 에너지로 공연의 온도를 끌어올린다.

뮤지컬 '슈가' 공연모습. 사진=PR 컴퍼니
뮤지컬 '슈가' 공연모습. 사진=PR 컴퍼니

탭댄스 퍼포먼스는 ‘슈가’가 지닌 쇼뮤지컬적 쾌감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리듬감 있는 발놀림과 밴드 음악이 맞물리며 만들어내는 순간들은 관객의 시선을 무대에 고정시키고, 극장이라는 공간을 살아 있는 축제의 장으로 바꿔 놓는다.

제작사 PR 컴퍼니가 밝힌 바와 같이, ‘슈가’는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지향한다. 메시지를 과시하기보다 공연 자체의 완성도와 즐거움에 집중하는 태도는, 연말 시즌 관객이 극장에서 기대하는 경험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결국 ‘슈가’는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모범 사례다. 웃음과 음악, 배우의 에너지, 그리고 정교한 무대 언어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이 공연은 연말 극장가에서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이유를 스스로 증명한다. 클래식이 다시 살아 숨 쉬는 순간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브로드웨이 정통 쇼뮤지컬 ‘슈가’는 한국 초연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작품은 원작의 명성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시대 한국 관객에게 유효한 쇼뮤지컬의 형태를 제시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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