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한국의 시간만 정신없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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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한국의 시간만 정신없이 흐른다

프레시안 2025-12-20 18:33:10 신고

3줄요약

타이베이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처음 아기를 한국에 데리고 가느라 두 나라 여권을 만들어야 했다. 먼저 주타이베이 대한민국대표부를 찾았다. 외교관계가 없는 대만에서 영사업무를 맡은 곳이다. 공식적인 발급 기간은 '영업일 기준 10일'이었지만 국제특송 비용을 내면 더 빠르다고 안내받았다. 결국 국제특송으로 아기의 한국 여권을 받은 건 신청한 지 1주일 만이었다. 역시 한국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반면에 대만 여권을 만드는 건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느렸다. 먼저 관할구청에 갔다. 구청에서는 접수만 대행하기 때문에 외교부 청사에 직접 가야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고 안내받았다. 대만 외교부 여권민원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기표를 받고 두 시간 정도 기다리고 나서야 접수를 마칠 수 있었다. 다시 외교부를 방문해 아이의 대만 여권을 받은 건 신청 후 2주일이 지난 후였다. 며칠 늦었으면 아기가 출국하지 못할뻔했다.

▲ 대한민국 여권과 대만 여권을 가지고 처음 비행기를 타던 날. ⓒ필자

할 말이 많다. 한국인인 내 상식으로는 여권 신청하느라 몇 시간을 기다려선 안 된다. 여권을 발급받는데 2주일이 걸릴 이유도 상상이 안 됐다. 어떻게 한국에서 여권을 만들어 보내는 것보다 느릴 수가 있을까?

"한국에서 여권 신청하는 데 2시간이 걸리면 민란이 일어날 거야."

아내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한국이라면 접수창구를 늘리든, 여권민원실을 늘리든 대책을 마련했을 거다. 대만은 예산이 부족한 나라도, 정보화가 덜된 나라도 아니다. 얼마 전 세금을 너무 많이 걷었다고 전 국민에게 50만 원 가까운 현금을 돌려준 나라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는 39살의 젊은 트랜스젠더 장관이 3일 만에 앱을 만들어 해결하기도 했다.

대만에서는 상품 배송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느리다. 한국에선 다음 날, 급하면 당일, 문제가 있어도 2~3일 후에는 현관 앞에서 만날 수 있는 택배다. 그런데 대만에서는 3~4일 걸려서, 그것도 현관 앞이 아니라 편의점이나 온라인쇼핑몰이 운영하는 택배 보관 점포를 방문해야 찾는 게 보통이다. 대만에도 쿠팡이 들어온 지 몇 년이 지났다. 대만 쿠팡의 '로켓배송'이 2~3일 정도 걸리는데, 그걸 보고 빠르다고 할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급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입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여기가 한국이었다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실 대만이 유난히 느린 나라는 아니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단 하나,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경험해본 나라 중에는 대만보다 느린 나라가 더 많다. 몽골이나 쿠바는 말할 것도 없다. 오래전 이탈리아 식당에서 하염없이 음식을 기다렸던 기억도 생생하다. 통장 하나 만드는데 한나절이 걸렸던 미국이나, 안전에 강박적인 일본에 비해서 대만이 더 느리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내가 경험한 대만의 속도는 여권 발급에 걸린 날짜에서 보듯 딱 우리의 절반 정도로 느리다. 어쩌면 정보화, 도시화 수준, 급속한 경제발전의 역사와 생활 수준 등 많은 면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대만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에 때문에 실망이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만 사람들은 기다리는 걸 잘한다. 점심을 먹기 위해 대만 사범대 인근 푸드코드에 간 일이 있었다. 주문을 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바로 앞 손님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다. 결제 문제인지, 주문 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몇 분째 해결하지 못하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누군가 나서서 항의하거나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만한 상황이었다. 긴 줄에 선 사람들은 모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웃으며 잡담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휠체어를 탄 승객이 버스에서 탑승하는 걸 몇 번 봤다. 불과 5분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애가 타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대만 승객 누구에게서도 초조하거나 답답한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저녁에 식당에 가려면 예약을 하는 게 당연한 일이고, 예약해도 제법 긴 시간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푸드트럭이나 노점상 앞에도 줄이 길게 늘어서고, 마트 계산대나 관공서에서도 긴 줄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당연한 듯이 기다림을 감수한다.

▲ 악명 높은 초토푸(臭豆腐, 취두부)를 파는 푸드트럭에 줄을 선 대만 사람들. 트럭이 지나가도 몇 시간 정도는 냄새가 남아있다. ⓒ필자

사실 이 글의 제목은 완전히 엉터리다. '대만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가 아니라 '한국의 시간이 정신없이 흐른다는 걸 대만에서 다시 확인했다'가 되어야 맞는다. 아내에게 "왜 대만에선 모든 게 느리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마 여권이나 택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때마다 아내는 "나도 몰라. 도대체 한국은 어떻게 그렇게 빠른 거야?"라고 되묻는다. 그렇다. 세상에 정상과 비정상이 있다면, 비정상적으로 빠른 쪽은 한국이다. 아내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이렇다.

"한국 사람들은 느린 걸 참지 않아. 회사도 관공서도 그런 속도로는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그렇게 대답해놓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가 태어나 자란 한국은 왜 그렇게도 빠를까? 왜 우리는 느린 것을 견디지 못할까? 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렇다. 먼저 한국에서는 시간이 훨씬 더 귀한 자원이다. 대만 사람들도 바쁘고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학교나 학원,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출퇴근이나 다른 이동에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든다. 무언갈 기다린다는 건 가장 소중한 자원을 낭비한다는 뜻이다. 엘리베이터가 닫히는 몇 초, 앞차가 출발하지 않는 몇 초가 아깝다. 택배를 기다리거나 찾으러 가는 시간도, 줄을 서서 대기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참을 수 없다.

한국인은 기질부터가 다르다. 느리게 움직여서는 한국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한여름이 지나서 이제 좀 살만하다 싶으면 곧 겨울옷과 난방을 준비해야 한다. 부지런히 다음 계절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은 아마도 이 땅에 유전자를 남기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또 서로 역동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서울을 떠나서 무주나 제주도에 살던 시절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느낀 점이 있었다. 서울 사람들은 걷는 것도, 먹는 것도 빠르다. 서울에 며칠 있다 보면 나 역시 주변 사람들 속도에 맞춰 빨라지곤 했다. 아마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에 이런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그러니 한국을 기준으로 봤을 때 대만의 시간은 느려 보인다. 어떨 때는 도대체 왜 이런 느림을 감수하고 살아가는 건지 답답하기도 하고, 한국의 다이나믹한 속도감이 그립기도 하다. 반대로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유가 부러울 때도 있다. 대만에 대해 '나라는 부강하지만, 임금이 낮아 국민은 가난하다'는 평가가 있다. 내가 보기엔 임금은 낮아도 생활 수준은 결코 낮지 않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데 돈 못지않게 중요한 '시간'이 훨씬 더 풍요롭기 때문이다.

▲ 카페에서 한가로이 게으름피우는 고양이. 대만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필자

'답답해 죽겠는 느려터진 나라'라고 불평할 필요도 없고, '삶의 여유가 있는 나라,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부러워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다른 속도로 사는 방법도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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