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향의 책읽어주는선생님'
루 드 라쥬는 어디서 보았다 했더니 <줄리아의 인생극장> 에서 보았고, 그보다 전에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에서 줄리엣 비노쉬의 아들을 기다리는 여자친구로 출연했다. 처연한 엄마의 심정에 젊은 에너지를 주는 역할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신을> 줄리아의>
장과 알랭을 맡은 두 배우 역시 프랑스 영화들에서 만났던 익숙한 얼굴들이다. 그들도 세월과 함께 인생이 보이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 영화의 단연 문제적 인물은 감독 우디앨런이다. 괴물로 언급되는 책에서도 다루어진 것처럼 그의 행보와 영화는 길이 달라서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어쨌든 구순에 이르는 우디 앨런이 바라보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파리를 배경으로 다시 읽어본다. 나는 어떻게 생각하며 나이 들어가고 있는가.
주인공 파니는 두 남자 사이에서 진동하듯 오간다. 첫번째 남편은 음악가였으나 가난했고, 거기서 구해준 현재 남편은 부자다. 다시 만난 고등학교 동창은 작가다. 허영과 사치스런 사교계에 발을 들여야 하는 남편 장의 세계에 염증을 느끼는 파니는 시집과 장미 한송이, 복권에 거는 희망, 튈르리 공원에서 샌드위치 점심을 먹는 알랭의 세계로 빠져든다.
극명한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파니를 다시 구한 것은 남편 장이다.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흔적없이 알랭의 세계를 지워버린다. 그런데 이 세계를 눈치챈 파니의 엄마마저 죽이려 했으나, 의도하지 않게 장은 사냥꾼의 오발탄에 의해 죽고만다. 허망한 인생이다.
스토리만으로 보면 스릴러 일수도 있다. 하지만 우디 앨런은 잔인한 묘사를 하거나, 막장의 분노를 다루지 않는다. 스리슬쩍 지나간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키워드는 럭키다. 우연한 만남과 우연한 사랑과 죽음까지. 물론 무조건 우연에 맡기려는 알랭이 목숨을 잃은 것처럼 그 세계 또한 우위에 있지 않다.
마치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유일한 진리가 있다는 믿음이 어리석다는 질타처럼 보인다. 우디 앨런이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운명적이고, 컨트롤 되는 세계와 사이에서 진동하는 것이라는 것. 마치 파니가 갈등하고 망설이고 괴로워하면서 존재하는 것처럼. 그런 관점으로 보니 이전에 보았던 그의 영화들도 조금 더 이해되는 것 같다. 겉으로는 계속 대화하는 인물들의 소동을 그리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인간 본연의 존재적 질문을 담고있다. 영화로웠던 과거를 회고하듯 음악은 계속 재즈였던 것 같다.
계속 책을 읽고, 우연한 삶과, 지금의 소중함을 중시하는 나는 알랭의 세계에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장의 세계쪽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너무 늦은 거 같다. 인생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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