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서학개미’ 등에 고환율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가 통화정책에 대한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행태는 오히려 시장 불안을 키워 추가적 원화 약세를 유도한다는 비판도 있다.
20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주간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월 30일 처음 1400원 선을 넘긴 뒤 80일 이상 내려가지 않고 있다. 지난달 7일을 시작으로 심리적 방어선이라는 1450원을 넘어선 지도 오래다.
이중 한은이 지적한 부분은 유동성 증가, 한미 금리차 등 통화정책과 관련된 요소가 아닌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 급증이었다.
한은 이창용 총재는 지난달 27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미 금리차 때문이 아니고 단지 해외 주식 투자가 늘었기 때문”이라며 환율 상승의 원인으로 ‘서학개미’의 공격적 투자에 따른 환전 수요 급증을 언급한 바 있다.
이후 지난 16일 한은 블로그 ‘최근 유동성 상황에 대한 이해’ 보고서에서 환율에는 “유동성 상황보다는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 확대, 수출기업의 외화보유 성향 강화 등 외환수급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재차 언급했다.
이어 “국내외 금융시장이 연계돼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만으로 국내 유동성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는 등 고환율의 원인을 책임전가 하고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을 변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태도에 화살 돌리기라며 시장 참여자들의 반발이 일자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학개미들에게 책임을 돌릴 생각은 전혀 없다”고 나서기도 했다.
명지대 경제학과 우석진 교수는 “고환율의 원인이 서학개미나 국민연금의 해외투자라는 등 원인을 밖으로만 돌리는 건 상당히 잘못된 접근법”이라며 “통화정책을 주관하는 기관으로서 책임감 없는 태도”라고 짚었다.
이어 “이런 발언은 원화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근본적인 문제는 누적돼온 통화정책의 실패”라고 덧붙였다.
최근 고환율 기조가 고착화되며 이창용 총재와 구윤철 부총리를 비롯해 외환당국은 환율 안정을 위한 구두개입에 나서기도 했으나 효과는 미미하거나 금세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고환율은 한가지 이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며 “현재는 달러의 공급 문제 자체로 원화의 약세심리가 워낙 심해 외환당국의 구두개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내수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환율 불안과 집값 상승 우려, 연준의 신중한 금리 인하 기조 등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시각이 나온다. 이에 시장에서는 더 이상의 기준금리 인하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우 교수는 “자본시장 개방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금리 또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여태까지 펼쳐온 통화정책의 문제점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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