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윤정현 신부 반공법 위반 재심 무죄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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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윤정현 신부 반공법 위반 재심 무죄 확정

아주경제 2025-12-20 09:59:4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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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북부지방법원은 반공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윤정현 씨에 대해 재심 끝에 무죄를 지난 11일 선고했고, 해당 판결이 18일 최종 확정됐다.

서울북부지법 장원정 판사는 2025년 12월 11일 오전 10시 ‘2024재고단16’ 사건 선고 공판에서 윤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상고기한인 12월 18일까지 항소하지 않으면서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윤 씨는 1975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약 49년 만인 2024년 11월 1일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2025년 4월 4일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및 제422조에 따른 재심 사유가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후 5월부터 12월까지 총 7차례의 공판을 거쳐 무죄 판단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윤 씨가 영장 발부 이전에 약 5일간 경찰서에 불법 구금돼 있었던 사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기간 동안 강압적인 진술 강요와 가혹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진술거부권 등 피의자에 대한 권리고지 없이 이뤄진 체포와 영장 없는 연행 역시 중대한 절차상 위법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윤 씨의 발언과 활동이 반공법에서 규정한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며,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실질적으로 위협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검찰의 공소사실은 증거 불충분과 법리 오해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앞서 검찰은 지난 11월 26일 열린 공판에서 윤 씨에 대해 무죄를 구형했다. 재판부의 무죄 선고 이후에도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이번 사건은 사법적으로 최종 마무리됐다.

이번 판결은 과거 반공법 적용 과정에서 발생한 위법 수사와 인권 침해를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례로, 표현의 자유와 법치주의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해설 ①|이번 판결이 남긴 법적 의미… 사법은 과거를 어떻게 바로잡았나

윤정현 신부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단순히 결과가 ‘무죄’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이번 판결은 사법부가 과거 국가 권력의 수사 방식과 법 적용에 대해 명시적으로 판단을 내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재판부는 불법 체포와 장기간의 불법 구금, 강압 수사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인정했다. 이는 과거 반공법 사건에서 자주 반복됐던 “절차상 하자는 있으나 실체는 유죄”라는 논리를 사실상 부정한 것이다. 절차 위반은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소사실의 신빙성을 근본부터 흔드는 중대한 하자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영장 발부 이전 5일간의 불법 구금은 당시 수사 관행의 구조적 문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재판부는 바로 이 시기를 문제 삼아 강압적 진술 가능성을 추인했고, 이는 공소사실 전체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근거가 됐다. 수사의 출발점부터 위법했다는 판단이다.

이번 판결은 반공법 자체가 갖고 있던 구조적 한계도 함께 드러낸다. 반공법은 구체적인 위해 행위보다는 사상과 태도, 해석의 영역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법이었다.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광범위한 해석 권한을 수사기관에 부여했고, 그 결과 범죄의 경계는 극도로 흐려졌다.

재판부는 윤 신부의 발언과 활동이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실질적으로 위협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법이 처벌해야 할 대상은 실제 위험이지, 사유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을 사법적으로 재확인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사법부가 권위주의 시기의 수사·재판 관행을 현재의 헌법적 기준으로 다시 재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법이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보고 정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해설 ②|50년의 시간과 한 인간의 삶… 이 판결이 남긴 질문

윤정현 신부의 무죄 확정까지 걸린 시간은 약 50년이다. 이는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사법과 국가가 외면해온 시간의 누적이다.

형벌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지만, 유죄 판결은 그의 삶 전체를 규정해 왔다. 사회적 관계와 종교적 삶은 물론, 일상의 선택 하나하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더 깊은 문제는 정신적 후유증이었다. 그는 수십 년간 반복되는 악몽과 불안, 트라우마를 기록해 왔다. 국가 권력에 의한 위법한 수사는 감옥 밖에서도 계속 작동했다.

이번 판결은 그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고통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권력의 책임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사법적으로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는 개인의 명예 회복을 넘어, 국가가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다.

윤정현 신부라는 인물 역시 이번 판결을 이해하는 중요한 맥락이다. 그는 거리에서 외치는 정치적 저항 인물이 아니라, 침묵과 성찰, 삶의 태도로 질문을 던져온 인물이다. 다석 유영모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제도와 권위보다 자기 성찰과 윤리를 중시하는 신앙을 실천해 왔다.

그러나 냉전과 이념 대립의 시대에는 이러한 태도조차 체제에 대한 의심으로 읽혔다. 사유는 범죄로 오인됐고, 침묵은 불순함의 증거로 해석됐다. 이번 판결은 그의 삶과 사유가 범죄가 아니라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을 사법적으로 확인했다.

윤정현 신부의 무죄는 과거를 지운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를 향한 질문을 남긴 판결이다.

국가는 어디까지 개인의 사유에 개입할 수 있는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는 권력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사법은 권력의 기억을 넘어설 수 있는가.

이번 판결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다. 늦었지만, 법치는 결국 권력보다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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