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현지시간) 호주 시드니 본다이 비치(해변)에 총알이 날아다녔을 당시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웨인과 제시카는 악몽 같은 시간을 겪게 됐다. 두 사람 모두 3살 난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혼란 속에서 이들은 각자 필사적으로 잔디밭 곳곳을 헤매며 아이를 찾았다. 하누카 첫날을 축하하고자 모인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달아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일부는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그렇게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긴 10여 분을 보냈다.
웨인은 큰딸을 자기 몸으로 감싸 보호하고 있었으나, 신경은 온통 사라진 다른 딸 지지에게 쏠려 있었다.
웨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총성이 멈출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했다. 영원처럼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웨인이 알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다. 같은 시각, 제시카라는 여성의 시선은 무지개색 치마를 입은 어린 소녀에게 고정돼 있었다. 아이는 잔뜩 겁에 질린 채 홀로 엄마 아빠를 찾고 있었다.
임신 중이었던 제시카는 자기 아들은 사라져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아이만큼은 지켜주기로 결심했다. 재빨리 지지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감싸안은 뒤 "내가 널 지켜줄게"라며 거듭 속삭였다.
그렇게 불과 1m 옆에 있던 여성이 총에 맞아 숨지는 순간에도 지지를 보호했다.
마침내 주변이 조용해졌고, 웨인은 작은 딸이 죽었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감정에 북받쳐 "나는 피와 시신 사이를 헤치며 딸을 찾았다"고 했다.
"제가 본 것은 … 그 어떠한 사람도 봐서는 안 될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 익숙한 무지개색 치마를 발견했다. 딸 지지는 붉은 피에 물들어 있었지만 무사했다. 여전히 제시카의 몸 아래 웅크린 상태였다.
제시카의 아들 역시 이후 무사히 발견됐다.
웨인은 "제시카는 자신은 엄마이기에 모성 본능에 따라 행동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제시카는 슈퍼히어로입니다. 우리는 평생 갚지 못할 빚을 졌습니다."
이 두 사람의 사연은 호주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날 믿기 힘든 이타심과 용기를 보여준 여러 사례 중 하나다.
현지 경찰이 공식적으로 테러로 규정한 이번 사건은 호주 역사상 최악의 참사다. 수십 명이 부상당했고, 10살 소녀를 포함해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에 따르면 총을 난사한 두 범인은 지하디스트 단체 '이슬람국가(IS)'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 아흐메드 알 아흐메드가 없었다면 분명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것이다.
시리아계 호주인으로 상점 주인인 그는 총격이 시작될 무렵 근처 카페에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BBC 아랍어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은 "피해자, 피, 거리에 쓰러진 아동과 여성들을 보고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아흐메드가 근처 차 뒤에서 뛰어나와 총격범에게 달려들어 그의 총을 빼앗는 순간이 담긴 영상은 큰 화제가 됐다. 그 또한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총상을 입었으며, 팔을 잃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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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우벤 모리슨이라는 이름의 남성 역시 아흐메드가 총격범의 무기를 빼앗은 직후 같은 총격범을 향해 물건을 던지는 모습이 영상에 포착됐다.
그의 딸 셰이나 구트닉은 영상 속 아버지를 곧바로 알아봤다.
구트닉은 BBC의 파트너사 미국 C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엎드려 숨기보다는 위험을 향해 달려가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구트닉에 따르면 모리슨은 총격이 시작되자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한 총격범에게 벽돌을 던졌고, 그후 치명상을 입었다.
"아버지는 사랑하던 사람들을 지키며 끝까지 저항하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한편 이번 공격 초반 목숨을 잃은 보리스, 소피아 구르만 부부는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총격범에 맞서 싸우는 모습이 담겼다. 구르만 부부가 총을 빼앗자, 이 남성은 자신이 방금 내린 차에서 또 다른 총을 꺼내 들어 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부부의 아들 알렉스는 19일 거행된 장례식에서 "부모님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용기, 이타심, 사랑을 잃지 않으며 자신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했다.
"이분들이 헌신적인 부모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의미에서 진정한 영웅이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이러한 사연은 계속 이어진다.
14살에 불과한 차야는 어린아이 2명을 총격으로부터 보호하다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근무한 지 불과 4개월 된 새내기 지역담당경찰관 잭 히버트(22)의 가족에 따르면 그는 머리와 어깨에 총상을 입었음에도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시민들을 도왔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평생 후유증이 남을 부상을 입었다.
해변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잭슨 둘란은 사건 당시 의료용품이 든 가방을 메고 해변가로 달려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는 신발조차 신을 틈조차 없었던 듯 맨발이었다.
다른 안전요원들도 해변에서 총격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들이 사용하는 빨간색과 노란색의 인명 구조용 보드는 들것으로 사용됐다.
한 안전요원은 총격의 공포로 물에 빠진 시민들을 구하고자 파도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학생인 레비 쉬(31)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자신 혹은 달려오는 구조대가 표적이 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안전요원 로리 데이비는 쉬와 친구가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발견했고, 달려들어 이들을 해변으로 끌어냈다.
쉬는 "곧장 일어나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자 했으나, 데이비는 이미 다른 이들을 구하러 바다로 뛰어든 후였다"고 했다.
한편 헌혈을 하겠다는 호주 시민 수천 명이 몰려들며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당국은 비번이던 수많은 응급대원들이 그저 도움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에 본다이 비치로 향했다고 전했다. 일부는 2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오기도 했다.
의료진 역시 사건 소식을 접하자마자 병원으로 모여들었고, 생명을 구하고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트라우마와 마주해야 했다.
뉴사우스웨일스주의 라이언 파크 보건장관은 BBC에 "(대원들은) 너도나도 현장에 와서 '나는 준비됐다', '나를 투입해달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보통 일요일 밤이면 (세인트빈센트 병원에는) 수술실 1곳을 운영할 수 있는 인력만 일한다. 그러나 그날은 수술실 8곳이 동시에 운영됐다"고 했다.
크리스 민스 뉴사우스웨일스 주지사 역시 평범한 시민들이 보여준 영웅적인 행동을 높이 평가했다.
사건 다음 날 민스 주지사는 "정말 끔찍하고, 악의적인, 파괴적 폭력 행위다. 그러나 호주에는 여전히 놀라운 선인들이 있으며, 이들은 어젯밤 진정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했다.
웨인은 제시카, 아흐메드와 같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BBC와의 인터뷰 당시 그는 이번 사건의 최연소 희생자인 10살 마틸다의 장례식에 막 참석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장례식 내내 눈물을 쏟으며 … '내가 맨 앞에 있을 수도 있었다', '내 딸의 장례식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훨씬 더 큰 비극이 벌어졌을 겁니다 … 이들은 그저 도망칠 수 있었지만 상황에 개입했습니다. 자신의 아이만 챙길 수 있지만 타인의 아이도 돌봐주었죠."
"이 세상에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더 필요합니다."
추가 보도: 판 왕
- '아들은 피해자를 보자마자 행동에 나섰습니다'...본다이 비치 총격범 제압한 '영웅'의 아버지 BBC 인터뷰
- 호주 시드니 본다이 비치 총격 사건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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