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은 지금,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기로에 서 있다. 한때 연간 100만 대를 훌쩍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중국 시장을 휘어잡던 그 기세는 이제 옛이야기가 되었고, 최근 몇 년 사이의 급격한 점유율 하락과 연이은 공장 정리 소식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연이은 신차 투입에도 반등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브랜드 이미지마저 현지 소비자에게 희미해진 지금, 현대차가 마주한 질문은 냉정하고도 단순하다. "중국은 버릴 수 없는 시장인가, 아니면 떠나야 할 시장인가?"
중국은 더 이상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특히 전기차 분야에서 중국은 기술·가격·인프라를 모두 손에 쥔 절대 강자로 떠올랐다. BYD, 샤오펑, 니오, 지리 등 현지 브랜드들은 전기차 플랫폼부터 배터리, 반도체, 심지어 자율주행 알고리즘까지 자국 생태계 안에서 소화해내며, 사실상 '완결형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반면 현대차는 여전히 글로벌 전기차 플랫폼인 E-GMP를 중심으로 전기차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이러한 기술력이 통하지 않는다. 높은 품질과 글로벌 감각도 중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격 대비 기능'과 '현지화된 감성'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SUV든 세단이든, 중국산 EV에 비해 비싸고 감성적으로는 낯설며, 소프트웨어와 커넥티비티 부분에서는 현저히 밀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 큰 문제는, 단순히 판매 부진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대차는 이미 중국 내 일부 공장을 매각하거나 가동을 중단했고, 남은 시설의 활용도조차 불확실하다. 딜러망은 붕괴 직전에 놓였고, 브랜드 충성도는 젊은 소비자층에서 거의 바닥 수준이다.
불과 10년 전, 중국 시장에서 '가성비의 대명사'로 불리며 위풍당당하던 현대차의 흔적은 이제 찾기 어려워졌다. 철수를 결정한다면 단기적으로는 고정비를 줄이고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겠지만, 이는 곧 아시아 전기차 시장에서의 영향력 약화, 그리고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위상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셈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재도전을 선택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과감한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 기존의 '현지 생산·글로벌 제품' 전략은 실패로 판명났고, 이제는 '현지 기획·현지 플랫폼·현지 브랜드'에 가까운 전면 재편이 요구된다. 중국 로컬 파트너와의 합작 확대, 소프트웨어 스타트업과의 협업, '중국 전용' 저가 전기차 브랜드의 신설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천문학적인 투자와 장기간의 리스크를 동반하며, 성과가 담보되지 않는 모험이다. 성공하면 부활의 기회가 될 것이고, 실패하면 한 세대의 전략적 실책으로 남게 될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지금껏 세계 곳곳에서 승승장구해왔다. 미국에서는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이라는 장벽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생산 거점을 확충했고, 유럽에서는 디자인과 품질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높여왔으며, 인도·중동 등 신흥시장에서도 굳건한 존재감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유독 중국에서만은 반등의 단초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전기차 전환이 한창인 이 시대에, 전 세계 전기차 판매의 절반 이상이 이뤄지는 중국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그룹의 글로벌 주도권에도 균열을 낼 수 있다.
이제 현대차그룹은 결단해야 한다.
중국 시장에서 끝없는 침체를 감수하며 시간을 버는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손을 떼고 새로운 판에 집중할 것인가. 혹은 다시 한 번 전면적인 재설계를 통해 '현지 중심'으로 태도를 전환하고 도전장을 내밀 것인가. 그 어느 쪽이든 명확한 방향성과 실행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21세기 자동차 산업의 패권이 전기차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지금, 현대차의 중국 전략은 단지 한 시장에 대한 대응을 넘어, 그룹 전체의 미래와 직결되는 중대한 과제다.
과연 현대차그룹은 중국을 다시 한 번 도전의 무대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과감히 내려놓고 미래를 위한 전열 정비에 나설 것인가. 그 선택은 곧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의 무게를 담아낸 하나의 상징이 될 것이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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