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황명열 기자] 회화와 설치를 오가며 기억과 신체 감각의 분리 상태를 탐구해온 작가 홍은희의 개인전 ‘사라 Sara’가 12월 19일부터 25일까지 서울 마포구 컷더케이크(Cut the Kake)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하나의 인물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그 인물이 감각과 기억 속에서 어떻게 출현하는지를 사유하는 자리다. 전시 제목이자 중심인물인 ‘사라(Sara)’는 실재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이다. 그러나 이 이름은 작가의 기억과 감정, 분리된 경험들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며, 고정된 정체성이라기보다 말해지지 못한 감각이 잠시 머무는 자리를 가리킨다. 홍은희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을 직접 서술하는 대신, 자신과 닮았으나 일치하지 않는 타자의 시선을 통해 세계를 다시 구성한다.
‘사라’는 기억과 감각이 분리되는 상태인 ‘해리(dissociation)’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는 단순한 진단적 개념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감각의 구조로서 전시 전반을 관통하는 조건이다. 작가는 해리를 설명하기보다 회화, 설치, 사물 작업을 통해 시각화하며, 자아와 신체, 기억이 형성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파편적인 장면들로 드러낸다.
전시장에 놓인 회화들은 특정 사건이나 서사를 재현하지 않는다. 인물과 풍경, 현실과 상상은 하나의 화면 안에서 느슨하게 겹쳐지며, 불안과 애착, 보호와 두려움 같은 감각의 상태를 색과 형태로 번역한다. 얼굴은 비워지거나 흐릿하고, 신체는 고정된 형상을 갖지 않은 채 끊임없이 흔들린다.
함께 선보이는 설치 작업 ‘사라의 사물들’은 사과, 꽃, 인형, 옷과 같은 오브제들을 천으로 감싸 배치함으로써 보호와 은폐, 애착과 구속이 교차하는 신체 감각을 환기한다. 이 사물들은 상징으로 고정되기보다 기억의 잔여물처럼 놓이며, 사라를 구성하는 파편이자 분산된 신체의 일부로 기능한다.
관객은 회화와 설치, 사물 사이를 이동하며 이미지와 감각의 파편들을 마주한다. 전시는 완결된 서사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분리되었던 감각들이 잠시 교차했다가 다시 흩어지는 경험을 제공하며, 그 과정에서 하나의 이름이 잠시 부여된다. 그 이름이 바로 ‘사라’다.
홍은희는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회화와 설치를 통해 개인적 경험과 허구적 내러티브를 결합해온 작가다. 최근에는 허구의 인물 ‘사라’를 중심으로 분리된 기억과 감각이 이미지와 사물로 출현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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