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더봄] 병원에선 ‘치료’하고 숲에선 ‘치유’한다···우울한 당신에게 권하는 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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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더봄] 병원에선 ‘치료’하고 숲에선 ‘치유’한다···우울한 당신에게 권하는 탐조

여성경제신문 2025-12-19 10:00:00 신고

며칠 전 동생이 정신병동에 입원하였다. 몇 년 전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는 정신적으로 우울증과 여러 증상이 생겼다. 다친 몸을 치료하느라 몰랐는데 마음이 피폐해진 것이다. 다행히 증세를 진단받아 치료를 꾸준히 했더니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이번 입원은 증세에 대한 확실한 진단이 필요해서 한 거라 별일은 아니다. 다만 정신병동에 입원했다니 주변에서 깜짝 놀란다. 걱정 어린 문자를 많이 받았다. 

우울증은 확실히 치료받으면 좋아진다. 우울감과 의욕 저하가 약물치료나 상담을 통해 완화된다. 그걸 옆에서 지켜봤기에 주변에 우울증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진단과 상담을 권유한다. 그냥 놔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원이나 상담센터까지 이끌기가 쉽지 않다. 현재 상태가 무기력하니 치료나 상담을 받고 싶은 의욕조차 없어 거절한다. 내가 미쳤냐면 화를 내기도 한다. 친한 친구가 아니면 참 어렵다.

얼마 전에도 그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우울증세가 보이는 지인이 있어 갖은 노력을 하며 상담을 권유했는데 실패했다. 오히려 나를 멀리한다. 이게 아닌데···. 좋은 일 하려다 관계가 끊어지게 생겼다. 아쉽다. 

우울증 상담 유도에 실패하니 되려 내가 기분이 우울해졌다. 착잡한 마음이 나를 감싼다. 갑자기 배터리가 방전되는 듯한 느낌이 온다. 내게도 치유가 필요해졌다. 다행히도 나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치유를 위해 필요한 것 세 가지를 찾아 나섰다. 그 세 가지는 ‘햇볕’, ‘움직임’, 그리고 ‘관심의 전환’이다.

최고의 생태 치유 처방전, ‘탐조(Birdwatching)’

나는 이 세 가지 요소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치유 활동으로 ‘탐조’를 한다. 새를 보러 간다. 탐조는 단순히 새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생명력과 교감하는 고도의 치유 행위다.

우울증은 시선을 내면의 어두운 곳으로 가둔다. 하지만 탐조는 시선을 밖으로, 숲으로, 강으로, 하늘로 돌린다. 망원경 너머 작은 새의 움직임에 집중하면 나의 뇌는 부정적인 잡념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게 된다. 

바로 울산의 태화강으로 갔다. 서울보다는 조금 더 따뜻하고 도시 안에 새들이 사는 곳. 기왕이면 조금 먼 곳으로 가야 기분 전환이 되기에 울산으로 갔다. 태화강은 산책하며 새를 관찰하기에 좋다. 매우 긴 산책 코스가 있어서 운동이 된다. 햇볕, 움직임, 관심의 전환을 모두 충족하는 곳이다.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에 삼호대숲을 중심으로 철새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철새홍보관은 태화강의 텃새와 철새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고 5층 전망대에 올라가면 삼호대숲의 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 /사진=김성주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에 삼호대숲을 중심으로 철새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철새홍보관은 태화강의 텃새와 철새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고 5층 전망대에 올라가면 삼호대숲의 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 /사진=김성주

태화강 철새공원은 도심 속 세계 최대의 떼까마귀류 월동지이다. 무려 약 13만 마리가 대나무숲에 몰려온다. 해 질 무렵에 가면 떼까마귀 군무를 볼 수 있다. 봄에는 백로류가 그 자리를 찾는다. 겨울에는 까만 새들이, 여름에는 하얀 새들이 산다.

그날 태화강에서 눈에 띈 새는 흰뺨검둥오리와 물닭, 그리고 가마우지였다. 가마우지는 별명이 ‘바바리맨’이다. 깃털이 기름기가 적어 방수가 되지 않는 원시 새이다. 물속으로 사냥하고 나오면 젖은 몸을 말리느라 두 날개를 치켜올린 채 한참을 있는다. 그 모습이 ‘바바리맨’같다. 음흉한 놈이다.

텃세로는 소쩍새, 멧비둘기, 참새, 올빼미, 박새, 직박구리, 붉은머리오목눈이 등이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뱁새가 ‘붉은머리오목눈이’다. 그런데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뱁새 타이틀을 다른 아종에 빼앗겼다. 흰머리오목눈이가 뱁새 타이틀을 쥐고 있다. 

탐조의 즐거움: ‘눈의 요정’을 만나는 설렘

흰머리오목눈이. 겨울 철새이다. 하얀 솜뭉치에 검은 눈만 콕 박아놓은 듯한, 엄청나게 귀여운 ‘눈의 요정’. 이 새가 나뭇가지에서 재롱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 그 어떤 사람도 무장해제 될 수밖에 없다. 

BTS가 뱁새라는 노래를 불러 온 나라에 뱁새를 띄워놓았다. 가사는 황새와 뱁새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득권 금수저인 황새를 향한 흙수저 뱁새의 저항이 보인다. 아무튼 뱁새는 ‘흰머리오목눈이’가 아니고 ‘붉은머리오목눈이'이다. 

흰머리오목눈이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새로 손꼽힌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행복해지게 만든다. /사진=써니스카이즈
흰머리오목눈이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새로 손꼽힌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행복해지게 만든다. /사진=써니스카이즈

탐조는 어렵지 않다. 거창한 장비가 없어도 좋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가벼운 쌍안경 하나 챙겨 들고 숲이나 강가로 나가면 된다. 탐조의 가장 큰 장점은 ‘발견의 기쁨’과 ‘귀여움이 주는 위로’다. 

멀리 떠날 기력이 없다면 가까운 공원도 훌륭한 탐조지다. 아파트 숲도 좋고 뒷동산도 좋다. 농촌에 산다면 사방에 새들이 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새들이 진짜 관찰 대상이다.  

겨울에 쉽게 만나는 까치는 은근히 귀여운 새이다. 걷지 않고 두 발로 통통 뛰는 모습이 깜찍하다. 더 깜찍한 것은 겨울을 나려고 살을 통통 찌운 참새다. ‘떨찐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오동통해진 참새를 보면 마음이 놓인다. 

새가 가르쳐주는 인생의 지혜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은 말했다. “새는 나뭇가지가 부러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가 믿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잠시 좌절하고 넘어졌다고 추락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겐 아직 펴지 않은 날개가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가지가 부러지는 경험을 했다. 그때마다 좌절하고 불안해했다. 하지만 저 작은 새들을 보라. 영하의 추위 속, 앙상한 가지 위에서도 그들은 씩씩하게 노래하고 둥지를 튼다.

탐조는 잊고 있었던 우리 마음속 ‘날개’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주먹만 한 핏덩이도 이 겨울을 이토록 당당하게 살아내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우리가 이깟 우울감에 지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혹시나 우울증이 의심되면 반드시 진료받아야 한다. 가까운 보건소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가거나 전문 심리상담센터 또는 정신의학과의 문을 두드려라. 그리고 스마트폰과 망원경을 들고 새를 보러 가자.

새들이 내 마음을 다시 뛰도록 치유해 줄 것이다. 새와 눈이 마주친 순간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 여전히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태화강 변을 걸으니 우울감이 사라진다. 다음 주에는 동생이 퇴원하니 성동구 살곶이 다리를 함께 걸어야겠다. 요즈음 중랑천 살곶이다리 부근에 수백 마리의 원앙이 몰려와 월동하고 있단다. 원앙보고 기운 차려라. 동생.

여성경제신문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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