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된 뒤에도 한국 금융시장의 가장 복잡하고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던 삼성생명의 유배당보험 관련 '일탈회계' 논란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이는 단순한 장부 기재 방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약 12조 8000억 원에 달하는 미실현 이익을 부채로 볼 것인가, 아니면 자본으로 숨겨둘 것인가 하는 회계적 딜레마였으며, 그 밑바닥에는 삼성그룹 핵심 지배구조의 안정성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지난 1일,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질의회신 연석회의 논의를 거쳐 삼성생명이 수십 년간 고수해 온 계약자지분조정 회계처리 방식을 중단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이 결정이 "정상적인 국제회계 기준대로 돌아오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소급적용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거대 생명보험사의 어긋난 회계 관행은 국제적 투명성 요구에 굴복하게 되었다.
삼성생명, 유배당 자금으로 쌓아 올린 ‘우호 지분’의 역사
삼성생명이 유배당보험의 계약자 몫인 미실현 이익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별도 부채 계정으로 처리해 온 역사는 1980년대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생명은 유배당보험 판매로 조성된 보험료를 활용해 삼성전자 등의 계열사 주식을 대량 매입했다. 유배당보험은 원래 투자 차익이 발생하면 그 몫을 계약자에게 배당하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이 핵심 자산인 삼성전자 지분(8.5%)을 매각하지 않았고, 계약자들에게도 배당도 하지 않았다. 대신 처분 시 지급해야 할 잠재적 몫을 부채 항목으로 기록하는 '예외적인' 회계 처리, 즉 일탈회계를 유지해 왔다. 이는 삼성그룹의 핵심 지배구조와 직결된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물산(19.8%)을 통해 삼성생명(19.3%)을, 다시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8.5%)를 간접 지배하는 편법 구조를 유지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는 결정적인 '우호 지분'으로 기능했으며, 이 지분이 매각될 경우 그룹 지배구조에 구조적인 변화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이러한 구조가 삼성전자 주식이 단순한 투자 자산을 넘어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로 작동하는 '기형적인 구조'라고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실제로 김현정 의원은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이 투자자산을 넘어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로 작동하는 기형적 구조에 있다"며 금융당국이 책임 있는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ICS라는 재무 건전성의 딜레마
당초 2023년 새로운 회계기준 IFRS17이 도입됐을 때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IFRS17의 핵심은 보험 부채를 시가(공정가치)로 평가하여 재무 건전성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라면 삼성생명은 계열사 주식의 처분 계획을 수립하고, 그 시가 변동분을 보험부채에 반영해야 했다. 시가 기준으로 약 12조 8000억 원으로 추산되는 계약자 몫이 보험부채로 분류될 경우, 삼성전자 주가 변동에 따라 부채가 매일 수천억 원씩 급변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는 신지급여력제도(K-ICS) 비율의 급락을 야기해 재무제표의 심각한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실제 삼성생명의 K-ICS 비율은 2023년 2분기 223.5%에서 5분기 연속 하락하며 지난해 3분기 기준 193.5%로 처음으로 안정적인 기준선인 200% 아래로 떨어졌다. 시장 금리 하락으로 인한 보험 부채 증가와 더불어, 삼성전자 주식 평가액이 지난해 2분기 20조 원대에서 3분기 15조 원대로 감소한 것이 가용자본 감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재무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금융당국은 IFRS17 도입 초기 '3개년 동안 예외적으로 기존의 일탈회계를 허용'하는 '과도기적 특수 회계처리'를 승인했었다.
국제사회의 ‘일탈’에 대한 엄격한 경고
그러나 한국 금융당국의 예외적 조치는 국제 회계기구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했었다.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C)는 이 사안을 정식 안건으로 채택하지 않기로 만장일치로 표결하며, 삼성생명을 비롯한 한국 생명보험사들의 해당 회계 처리가 국제회계기준(IFRS) 체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IFRS IC 위원들은 이 회계 처리가 국제적으로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쟁점이 아니라, 한국만이 국제기준의 기본 원칙을 명백히 위반한 예외적 사례로 보았다. 브라질 위원은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글로벌 규제·감사 환경의 공통된 태도"라고 언급했고, 영국 전문가는 "감사 실무에서 일탈은 극히 드물며 국제회계기준 체계에서는 더욱 적용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국제적 고립의 위험 앞에서 금융당국은 결국 "일탈회계 관련 부분은 국제회계기준에 맞게 해야 한다"는 이찬진 금감원장의 방침에 따라 원상복귀를 공식화한 것이다.
'주석 공시'라는 고도의 규제적 절충
2025년 12월, 금감원은 마침내 삼성생명의 일탈회계를 중단시키고, 유배당 계약이 회사 재무상태에 미친 영향을 '시가 기준으로 재평가하여 주석으로 충실히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조치는 금융당국이 고심 끝에 내놓은 고도의 규제적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IFRS17의 핵심인 '시가 평가' 원칙을 수용하여 국제적 정합성 요구에 응답하는 동시에, 12조 8000억 원에 달하는 계약자 몫을 재무제표의 '본문 부채'가 아닌 '주석'에만 기재하도록 했다. 이는 K-ICS 비율에 직접적이고 급격한 변동성이 초래되는 것을 방지하면서도, 정보 이용자들에게 투명성을 확보하는 실용적인 해법이었다.
그러나 이 회계적 해소는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삼성생명은 여전히 "매각 계획이 없어 이를 부채로 측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IFRS 기준 자체가 매각 계획 유무에 따라 자산 분류를 다르게 허용하는 원칙을 활용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삼성생명이 이 입장을 관철할 경우, 시가 기준 12조 8000억 원의 계약자 몫이 향후 재무제표에서 자본으로 처리되거나 사실상 0원 수준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결과적으로 삼성생명은 회계 투명성이라는 규제적 명분은 확보했지만, 계약자 몫이라는 거대한 미실현 이익을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자산에서 분리하지 않는 방어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게 됐다. 한마디로 회계적 논쟁은 일단락됐으나, 이재명 정부에서 조차 유배당 계약자 권리 보장과 금산분리 원칙의 근본적인 재정립이라는 숙제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Copyright ⓒ 저스트 이코노믹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