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희 사진작가의 작업실 -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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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희 사진작가의 작업실 -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

채널예스 2025-12-19 00:00:00 신고

동물 살처분 매몰지, 5월 광주의 기억,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 있는 고라니의 초상 등 사회의 그림자가 진 곳에 렌즈를 비추는 문선희 작가의 사진은 대상을 오래, 지긋이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은 15년간 고공농성이 일어났던 장소에 대한 기록입니다. 2015년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 차광호 씨가 공장 굴뚝에서 408일을 보내는 아픈 신기록을 세운 지 10년이 지난 2025년에도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박정혜 씨가 고공농성 최장기간을 갱신하고 600일 만에 땅을 밟았고,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 고진수 씨의 고공농성도 300일 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외로운 싸움을 묵묵히 견뎌온, 그리고 기어코 다음 세상의 출발점을 새롭게 만들어 낸 등대 같은 사람들. 그리고 이들을 비추는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의 작업 이야기를 전합니다.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 작업을 마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안도감이 듭니다. 이 책을 내가 과연 쓸 수 있을까, 오래 고민한 까닭입니다. 도저히 완성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무사히 책이 되어 나왔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편집자님과 디자이너님의 정성까지 더해진 이 책을 책 속 고공농성자분들께 보내드릴 수 있어 기뻤습니다.

 

2019년 전시  <거기서 뭐 하세요>  이후 6년 만에 작업 과정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작품을 지금 책으로 출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노동자들은 고공농성을 통해 위태롭게 고립된 자신의 현실을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2025년까지 이어지는 이유에 대해 다 같이 한 번 들여다보고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 기조가 암세포처럼 퍼져나갔습니다. 청소 노동자부터 IT엔지니어까지. 생산직 직원부터 정부 연구 기관 연구원까지, 직종과 민간공〮공 영역 여부를 가리지 않고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일회용 노동자로 전락합니다. 너무나 소수만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1등이 아닌 대다수의 우리가 어떻게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사회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답을 찾는 것을 정치가, 전문가에게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몫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작가님 사진에는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대상을 오래 지긋이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공농성의 장소들을 심상하게 지나치기 어렵게 만들고 싶었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현장을 촬영하실 때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신 관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언급하신 것처럼 무심코 지나치기 어렵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현실 속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아서, 오려서 바다로 데려왔습니다. 그들이 견딘 긴 침묵의 시간을 시각화하고 싶어 배경은 장노출로 촬영했습니다. 지친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어, 노을이 물든 하늘을 담았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과 그들을 둘러싼 침묵, 심리적 고립감을 드러내기 위해 컬러를 덜어내 흑백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고공농성의 장소들을 주인공처럼 한 가운데 우뚝 세웠어요. 그 구조물들이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처럼 보이길 바랐고, 동시에 일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의 무사와 안전을 바라는 수호 토템처럼, 어둠을 밝히는 등대처럼 보이길 바랐습니다.

 

현장에서 촬영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구도였어요. ‘그들이 건너온 시간에 대한 정중한 관심을, 그럼에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실제적 거리감을, 아무리 노력해도 감히 온전한 이해에 가닿을 수 없음을 어떻게 고백할 것인가.’ 고민했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정면에서 촬영하는 일련의 고공농성을 바라보는 저의 태도와 자세를 반영했습니다. 

 

책에는 수년간 전국의 굴뚝, 송전탑, 전광판을 찾아다니며 기록한 과정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특별히 오래 남는 순간이나, 현장에서 새롭게 마주한 장면이 있었나요?

저는 고공농성이 지나간 자리들을 주로 기록했기 때문에 현장을 ‘취재’했다고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곳에서 겪은 일들을 찾아 읽고 갔기 때문에 상상했을 따름입니다. 

 

예를 들어 국회를 바라보며 CCTV탑이나 광고탑에 올랐던 분들이 있습니다. 대개 고공농성까지 간 경우는 법의 보호 밖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의 힘이 아니면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에 그 장소들이 선택된 것입니다. 건설 노동자들도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국회의원들이 건설노동자의 삶을 살펴봐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고공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온몸으로 비바람을 맞고 버텼는데, 밤이 되니 여의도가 화려하게 빛나더랍니다. 그렇게 눈부신 야경은 처음 봤다고 술회했습니다. 저 화려한 불빛을 내뿜는 건물들도, 반듯한 저 길들도 모두 건설 노동자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우리들이 받는 처우는 왜 이럴까, 생각했다는 말이 떠올라 저도 덩달아 울컥했습니다.  

 

또 경찰의 강제진압에 사람이 두 명이나 떨어진 CCTV탑, 용역업체 직원들이 밤만 되면 찾아와 쇠 파이프로 기둥을 내려쳤다는 광고탑, 용역업체 직원들이 밤에 칼을 들고 급습해 고공농성자들을 구타하고 결박해 끌고 내려왔다는 송접탑에 갔을 때는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장소 중 하나는 100미터 높이의 굴뚝입니다. 밑에서 올려다보는데, 그 스펙터클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스스로 저런 곳에 오를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 높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오른 분은 자기 문제 때문이 아니라,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복직을 돕기 위해 그곳에 오른 것이었어요. 크리스마스이브에 말이에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런 마음은 어디서 솟아오르는 것일까,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고공농성을 ‘등대’에 빗대 표현하신 점이 인상적입니다. 여전히 고공농성,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을 통해 지금도 거대한 힘에 맞서는 이들에게, 또는 지상에 있는 우리에게 건네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고공농성이 매번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이 헛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그만큼 버텨줬기 때문에 그다음의 싸움은 더 나은 위치에서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 어떤 고공농성도 실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어서, 각각의 고공농성 말미에 그들의 싸움으로 인해 법과 제도가 바뀌거나, 비슷한 처지의 다른 이들의 운명이 바뀐 사례들을 찾아 넣었습니다. 

 

세상은 느리게 변합니다. 답답하지만 냉소와 비관만으로 넘을 수 있는 산은 없습니다. 고공농성자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서 직접 행동했습니다. 지금 아무것도 안 하면 더 나빠질 테니까요.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합시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요. 모두 파이팅입니다! 

 

고공농성뿐만 아니라 5.18 광주 민주화운동, 구제역-조류독감 매몰지, 고라니 초상 등 폭력이 남긴 흔적을 꾸준히 기록해 오셨습니다. 이런 장소나 장면에 머무르게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도 제가 이런 작업들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우연한 만남이 있었고,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진실을 마주하게 되니 뭐라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시리즈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점들이었는데, 시간이 이렇게 흐르고 보니 저절로 궤적이 되었고, 그게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서 저도 ‘아, 내가 이런 인간이구나’ 생각하는 중입니다.   

 

싸움이 지나간 자리, 지난 흔적들을 더듬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89쪽)라는 질문이 책에 나오는데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셨나요?

그 일이 벌어질 당시에는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드러나는 것들도 있고요. 들춰보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일지라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다시 살펴보고,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지켜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복기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작가님께 기록은 어떤 의미인가요? 앞으로 구상 중이신 작업이나 이어가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여러 시각 매체 중 사진이 갖는 강점은 ‘기록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록할 가치가 있으나 아직 진지하게 다뤄진 적 없는 부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 여름에  <친애하는 구구씨> 라는 전시를 열었습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다 적발되면 최대 1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서울시의 정책에 대한 저의 응답이었습니다. 인간 위주로 재편된 지구에서 죽어가면 ‘보호종’이 되고, 번성하면 ‘유해동물’이 됩니다. 이것이 정말 우리가 바라는 방향인지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작업실에서는 리서치와 후반작업을 주로 합니다. 책과 컴퓨터, 모니터가 작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작업실 벽에는 테스트 프린트나 작품들을 걸어두고 계속 보면서 형식적인 부분의 완성도를 고민합니다. 

 파일이 쌓여있는 사진(오른쪽)은, 책 출간 후 그간 모아온 리서치 자료들을 정리하기 전에 촬영한 것입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 ]

저의 반려 고양이, 호리, 나리, 스노우입니다.

 

왼쪽부터 호리, 나리, 스노우


엄마가 남기고 간 바람에 생후 3일 된 아기 고양이 ‘호리’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두 시간마다 우유를 먹이고, 품에 안아 재우며 키운 저에겐 아들이나 다름없는 녀석입니다. 나리는 야생동물의 습격으로 자식 넷을 잃고, 겨우 남은 하나를 지키려고 아이를 데리고 작업실 문을 두드린 엄마 고양이입니다. 어쩌다 보니 고양이 셋을 구조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누가 누구를 구조했는지 모를 정도로 제가 사랑과 위로를 듬뿍 받고 있습니다.  

 

마감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호리랑 산책하기, 스노우랑 뒹굴기, 나리랑 낮잠 자기입니다.

 

할 일이 있을 땐 그것 빼고 모두 재밌게 느껴집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 특히 재밌게 본 남의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마스다 미리의 만화들을 자주 꺼내 봤습니다. 어둡고 무거운 세상사를 직시하면서도,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방편이었습니다.

 


세상은 “이 모든 것은 당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우리를 몰아세운다. 우리를 살아 있는 생명이 아니라 숫자로 정리하고 비용으로 처리한다. 규정하고 분류하고 대체 가능한 존재로 균질화하려 든다. 사람과 도구를 구분하지 않는 세상. 이것은 계급의 문제라기보다 실존의 문제다.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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