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동차 산업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폭스바겐 그룹이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다. 독일 베를린 데일리가 12월 15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화요일부로 드레스덴 공장의 자동차 생산을 중단할 예정이다. 이는 폭스바겐이 창립 88년 만에 독일 내 자동차 공장을 폐쇄하는 첫 사례로, 독일 자동차 산업 전반에 강한 충격을 주고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생산 중단 이후 드레스덴 공장을 단순 폐쇄하는 대신, 인공지능(AI), 로봇,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반도체 설계 등 핵심 미래 기술을 중심으로 한 혁신 단지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 근무 중인 약 230명의 직원 일자리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생산 라인이 멈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상징적 의미는 작지 않다.
이번 결정은 독일 자동차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독일 자동차 산업은 2018년 이후 약 12만 개의 일자리를 이미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수십 년간 독일 경제를 떠받쳐 온 핵심 산업이었지만, 최근에는 국내 생산 비용 상승,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의 전략적 혼선, 중국 자동차 브랜드의 급부상,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관세 부담 등 복합적인 악재에 직면해 있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폭스바겐 그룹의 판매량과 수익성도 최근 몇 달간 눈에 띄게 악화됐다.
컨설팅 회사 앨리버트는 현재 유럽과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생산 능력 활용률이 지나치게 낮다고 지적했다. 유럽 전역의 자동차 공장 가동률은 평균 55%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가동률이 75%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장들은 기업의 수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앨리버트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유럽과 독일에서 최대 8개의 자동차 공장이 추가로 폐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시장 전망 역시 밝지 않다. 에어비앤비 독일 지부 책임자인 파비안 피온테크는 향후 몇 년 동안 중국 자동차 브랜드의 성장으로 인해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연간 100만~200만 대의 판매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는 단순한 판매 감소를 넘어, 고용과 지역 경제 전반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이다.
비록 드레스덴 공장 직원들이 당장 대규모 실직에 내몰리지는 않았지만, 이번 결정은 업계 전체에 분명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폭스바겐뿐 아니라 BMW 등 주요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는 보쉬를 비롯한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들 역시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재무 여력이 취약한 중소 부품업체의 경우 이번 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도 크다고 우려한다.
폭스바겐 드레스덴 공장의 생산 중단은 단일 기업의 전략 전환을 넘어, 독일 자동차 산업이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미래 기술로의 전환이 새로운 기회가 될지, 아니면 산업 축소의 신호탄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독일 자동차 산업이 더 이상 과거의 방식만으로 생존하기 어렵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지고 있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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