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확인받아야만 안심하는 당신에게

사랑을 확인받아야만 안심하는 당신에게

밑 빠진 독에 사랑 붓기

당신의 연애는 늘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난다.

• - “나 사랑해?”
• - “왜 연락이 늦었어?”
• - “화난 거 아니지?”

상대방이 웃으며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당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마치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가 다시 물속에 들어간 것처럼, 그제야 숨이 쉬어진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불과 몇 시간 뒤, 상대의 답장이 조금이라도 늦거나 표정이 미묘하게 건조해지면, 당신의 머릿속에는 다시금 사이렌이 울린다. ‘마음이 변했나 봐.’ ‘내가 질린 걸까.’

이 지옥 같은 루프는 멈추지 않는다. 당신은 이것을 ‘사랑이 깊어서’라고 포장하고 싶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당신이 요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 정서적 생명 유지 장치를 요구하고 있다. 상대방이 공급해주는 확신이라는 산소가 없으면 스스로 숨을 쉴 수 없는 상태, 그것이 당신이 겪고 있는 불안의 정체다.

우리는 흔히 사랑하면 끊임없이 표현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묻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진짜 신뢰다. 확인해야만 안심이 된다면, 이미 그 관계는 병들어 있다. 당신이 퍼부어대고 있는 그 질문들이 사실은 관계를 질식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당신의 무너진 자아가 도사리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 글은 그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는 심리 부검 보고서다.

대상 항상성(Object Constancy)의 결여: 당신의 사랑은 기체다

심리학에는 ‘대상 항상성(Object Constancy)’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대상이 존재하며, 그 대상과의 정서적 유대가 지속되고 있음을 믿는 능력이다.

어린아이들은 이 능력이 발달하기 전까지 엄마가 방을 나가면 세상이 무너진 듯 운다.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소멸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엄마가 다시 돌아와야만 아이는 안정을 되찾는다. 건강한 성장은 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엄마는 나를 사랑해’라는 믿음을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혼자 있어도 불안해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어떤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 능력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다. 이를 정서적 영속성(Emotional Permanence)의 부재라고도 부른다. 당신이 바로 그런 경우일 수 있다.

당신에게 사랑은 ‘고체’가 아니라 ‘기체’다. 상대방이 끊임없이 “사랑해”라고 말해주고, 연락하고, 곁에 있어 주는 그 순간에만 사랑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가 전화를 끊거나 출근을 해서 물리적, 정서적 거리가 생기는 순간, 당신의 마음속에서 사랑은 증발해버린다. 공기 중으로 흩어진 사랑을 다시 붙잡기 위해 당신은 그에게 연락을 강요하고 애정을 확인하려 든다.

문제는 상대방이 이 밑 빠진 독을 채워줄 수 없다는 데 있다. 당신의 불안은 상대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당신 내면의 구멍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상대방을 연인이 아니라, 당신의 불안을 잠재워줄 ‘인간 신경안정제’로 쓰고 있다.

상대방이 아무리 확신을 주어도 당신은 만족할 수 없다. 어제 먹은 밥이 오늘 배부르지 않듯, 어제의 “사랑해”는 오늘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한다. 결국 상대방은 지쳐 나가떨어진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당신의 불안이라는 블랙홀에 쏟아부어도 아무런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 행위는, 사실 상대방의 진을 빼놓는 정서적 착취였다.

과도한 안심 추구(Excessive Reassurance Seeking): 버림받기 위한 리허설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바로 ‘과도한 안심 추구(Excessive Reassurance Seeking)’다. 이는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지, 상대가 떠나지 않을 것인지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행동이다.

“나 안 뚱뚱해?” “나보다 예쁜 여자 많잖아.” “정말 나 안 떠날 거지?”

처음에는 상대방도 다정하게 답해준다. “아니야, 네가 제일 예뻐.” 하지만 이 질문이 반복되면, 그것은 더 이상 질문이 아니라 ‘강요’와 ‘비난’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당신의 질문 이면에는 “너는 언젠가 나를 버릴 거야”라는 강력한 불신이 깔려 있고, 상대방은 그 불신을 감지한다.

심리학자 제임스 코인(James Coyne)의 우울증 대인관계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행동은 필연적으로 상대방의 거부를 이끌어낸다. 당신은 안심하고 싶어서 묻지만, 역설적으로 그 질문들이 상대를 질리게 만들고, 짜증 나게 하고, 결국에는 당신을 떠나게 만든다.

더 소름 끼치는 사실은, 당신의 무의식이 사실은 ‘거절’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를 자기 입증 이론(Self-Verification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부정적인 자아상(“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을 확인받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당신은 끊임없이 상대를 시험한다.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억지를 부리거나, 밤새 전화를 붙들고 늘어진다. 속마음은 이렇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도 나를 사랑해줄 거야?” 하지만 이것은 사랑의 테스트가 아니라 인내심 테스트다. 결국 상대가 폭발하여 “도저히 못 해먹겠다”고 이별을 통보하면, 당신은 슬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거봐, 역시 나를 버리잖아. 내 예감이 맞았어.”

당신은 자신의 불안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멀쩡했던 관계를 스스로 파괴해버린 것이다. 당신은 버림받은 피해자가 아니라, 버림받는 상황을 주도적으로 연출한 기획자였다. 확인받으려는 욕구는 관계를 지키려는 노력이 아니라, 이별을 앞당기는 촉매제일 뿐이다.

불안이라는 파도를 혼자 타는 법

사랑을 확인받아야만 안심이 된다면, 당신은 아직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다정한 연인이 아니라, 스스로 서는 법을 배우는 고독의 시간이다.

이제 그 지겨운 질문들을 멈춰야 한다. “나 사랑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삼켜야 한다. 그 질문을 삼킨 자리에 찾아오는 불안과 공포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한다. 연락이 오지 않는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느끼는 그 식은땀 나는 초조함이 바로 당신이 해결해야 할 몫이다. 그 고통을 상대방에게 떠넘기지 마라.

불안은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상대방의 확신으로 덮어버린 불안은 언제든 다시 튀어 오른다. 하지만 당신이 혼자서 그 불안의 파도를 타고 넘는 경험을 하게 되면, 뇌는 새로운 사실을 학습한다. “확인하지 않아도 나는 죽지 않는구나. 그가 잠시 없어도 나는 괜찮구나.”

이 깨달음, 즉 정서적 자립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건강한 연애가 시작된다. 그때의 당신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구걸하는 거지가 아니라, 넘치는 사랑을 나누어주는 주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신뢰는 상대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다. 그가 나를 떠나더라도 나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다. 그 믿음만이 당신을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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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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