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뱀의 해였다. 이 상징적인 해를 불가리만큼 집요하고 우아하게 붙잡은 브랜드도 드물다. 한 해 내내 세르펜티는 전 세계를 유영했으니까. 전시로, 예술 프로젝트로, 그리고 감각적인 이야기로. 연말을 맞은 지금, 불가리는 세르펜티라는 이름으로 완성한 한 해를 조용히 되돌아본다.
불가리에게 뱀은 단순한 모티프가 아니다. 1948년부터 이어진 세르펜티는 변화와 재생, 지혜와 관능을 상징하며 메종의 미학을 이끌어왔다.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뱀처럼, 세르펜티 역시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왔다. 2025년은 그 진화의 서사가 가장 밀도 높게 펼쳐진 해였다. 올해 불가리는 ‘세르펜티 인피니토(Serpenti Infinito)’라는 이름 아래, 세르펜티의 무한한 해석을 조명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세르펜티 포스트카드 경험(Serpenti Postcard Experience)’이다. 작은 카드라는 형식 안에 예술과 감정, 문화와 기억을 담아낸 이 프로젝트는 세르펜티를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도시는 달라도 메시지는 하나였다. 변화는 언제나 창조에서 시작된다는 것. 상하이에서는 예술 아카데미 학생들과 자폐 스펙트럼 아동들이 함께 참여해 총 20점의 엽서를 완성했다. 색과 형태, 움직임이 자유롭게 교차하며 ‘재생’이라는 키워드를 시각화했다. 서로 다른 감각이 만나 하나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
서울에서는 진채연구소(Jinchae Lab)와의 협업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한국 전통 색과 장인정신을 탐구해온 이 아트 스튜디오는 한지 위에 석채를 올려 세르펜티를 한국적인 색감으로 재해석했다. 전통과 현대, 동양적 정서와 불가리 특유의 관능이 공존하는 10종의 한정 엽서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미감을 세르펜티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올해 불가리가 서울에서 남긴 가장 섬세한 인사이기도 했다.
뭄바이에서는 아라바니 아트 프로젝트가 참여했다. 공공 예술을 통해 포용과 연대를 이야기해온 이들은 세르펜티를 회복력과 용기의 상징으로 풀어냈다. 총 9점의 엽서는 개인의 변화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각적 선언처럼 다가온다.
이 엽서들은 모두 작지만 가볍지 않다. 간직할 수도, 누군가에게 보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태도다. 불가리는 세르펜티를 통해 늘 말해왔다. 변화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을 새롭게 만드는 힘이라고. 2025년의 끝자락에서 돌아보면, 불가리는 주얼리보다 이야기를, 상징보다 경험을 더 많이 남겼다. 뱀의 해를 지나며 세르펜티는 또 한 번 허물을 벗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이미 다음 장을 향해 조용히 몸을 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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