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2025년 12월, 전 세계 자본시장의 시선이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로 쏠렸다. 지난 반세기 동안 자본주의의 나침반 역할을 해온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2026년 1월 1일부로 그렉 아벨 부회장이 거대 제국의 지휘봉을 넘겨받게 된다는 소식 때문이다. 투자의 신이 떠난 자리를 메워야 하는 과제를 안은 인물. 투자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버핏이 나보다 더 일을 잘할 사람이라며 신뢰를 보낸 그렉 아벨. 버크셔 해서웨이의 포스트 버핏 시대를 이끌 그의 경영 철학과 앞으로의 과제를 조명한다.
■캐나다의 회계사, 에너지 제국을 일구다
그렉 아벨의 이력은 화려한 천재보다 성실한 개척자에 가깝다. 1962년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앨버타 대학에서 상업을 전공하고 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를 거쳐 지열 발전 회사 칼에너지에 합류하며 에너지 산업과 인연을 맺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 계기는 1999년 버핏의 미드아메리칸 에너지 인수였다. 당시 미드아메리칸의 임원이었던 아벨은 버핏의 눈에 들었고, 이후 탁월한 경영 능력을 입증하며 승진을 거듭했다. 2008년 미드아메리칸의 CEO에 오른 그는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회사를 미국 최대 전력 회사 중 하나인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로 성장시켰다. 버크셔 전체 영업이익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에너지 사업 부문은 사실상 아벨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직관의 버핏, 디테일의 아벨
버핏이 서류 몇 장만 보고 수십억 달러의 인수를 결정하는 직관의 승부사라면, 아벨은 현장을 누비며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운영의 전문가다. 버핏은 자회사 경영에 거의 간섭하지 않는 방임형 스타일을 고수해왔다. 반면 아벨은 세부적인 운영 사항까지 챙기는 핸즈온 방식을 선호한다. 자회사 CEO들에게 구체적인 성과 지표를 요구하고, 비용 절감과 효율성 제고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방대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버크셔의 조직 기강을 다잡고 수익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 찰리 멍거 부회장은 생전 아벨을 두고 나보다 더 현명하고 일도 훨씬 많이 한다며 훌륭한 학습 기계라고 극찬했다. 아벨의 성실함과 헌신은 버크셔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그를 후계자로 지목한 핵심 배경이다.
■비보험 부문 총괄로 검증된 역량
아벨의 진가는 2018년 버크셔 해서웨이의 비보험 부문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에너지뿐 아니라 철도, 제조업, 소매업 등 버크셔의 실물 경제를 담당하는 방대한 사업군을 총괄하며 버핏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공급망 붕괴와 인플레이션 위기 속에서도 자회사들의 운영을 안정화시키며 위기 관리 능력을 입증했다. 버핏이 아벨이 있기에 나는 밤에 편히 잠들 수 있다고 말한 일화는 그의 조직 장악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3000억 달러의 현금, 어디로 향할까
아벨 체제 버크셔 해서웨이의 최대 관심사는 3000억 달러가 넘는 현금성 자산의 활용 방향이다. 아벨은 투자 전문가인 테드 웨슐러와 토드 콤스의 조력을 받아 자본 배분을 결정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버핏이 선호했던 대형 인수합병보다는 에너지와 인프라 등 아벨이 전문성을 갖춘 분야에서의 실리적 투자나, 자사주 매입 및 배당 확대 같은 주주 환원 정책이 강화될 가능성을 점친다. 에너지 전문가인 아벨의 등장은 버크셔가 기후 변화와 에너지 전환 시대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임을 시사하기도 한다. 아벨은 버크셔의 핵심 가치인 장기 투자, 건전한 재무구조, 자회사 자율성 존중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조직의 안정성을 우선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대와 우려 사이에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워런 버핏이라는 인물이 가진 상징성과 카리스마를 대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주총회에 수만 명을 끌어모으는 버핏의 팬덤이 사라진 후 버크셔의 주가 프리미엄이 유지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투자보다 운영에 특화된 이력이 금융 시장에서의 자본 배분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시장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버핏의 천재성은 복제할 수 없지만, 아벨의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월가에서는 아벨을 버크셔의 복잡한 기계 장치를 정비하고 최적화하는 데 최고의 엔지니어라고 평가한다. 워런 버핏의 은퇴는 한 시대의 종언이자, 버크셔 해서웨이가 천재의 직관에 의존하던 회사에서 시스템의 힘으로 움직이는 조직으로 전환하는 분기점이다. 그렉 아벨은 화려한 언변가는 아니지만, 묵묵히 성과로 증명해온 경영자다. 그가 써 내려갈 새로운 장은 제2의 버핏이 아닌 제1의 그렉 아벨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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