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전영선 기자] 전기차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캐즘의 골짜기는 깊어졌고,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전동화 속도 조절에 나섰다. 판매량 증가세는 둔화됐고 재고는 쌓인다. 상식적으로라면 전기차의 대명사 테슬라 역시 주가 하락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시장은 다른 문법으로 움직이고 있다. 테슬라 주가는 신고가를 경신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투자자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월스트리트와 개인 투자자들이 테슬라에 열광하는 이유는 더 이상 바퀴 달린 차에 있지 않다. 그들의 시선은 2026년으로 예고된 로보택시와 일론 머스크가 구상하는 AI 생태계에 고정되어 있다. 테슬라 주가 급등의 배경과 로보택시라는 고위험 고수익 베팅의 실체를 분석한다.
■밸류에이션의 대전환, 자동차에서 AI로
테슬라 주가 상승의 근본 원인은 기업가치 평가 기준의 전환이다. 지난 몇 년간 시장은 테슬라를 도요타나 폭스바겐 같은 자동차 제조사로 볼 것인지, 애플이나 구글 같은 테크 기업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여왔다. 최근의 주가 흐름은 이 논쟁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시장은 테슬라를 자동차 회사가 아닌 AI와 로보틱스 기업으로 재규정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기차 판매 둔화는 더 이상 핵심 악재가 아니다. 투자자들은 차량 판매 마진율 감소를 플랫폼 확장을 위한 비용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도로 위를 달리는 테슬라 차량이 많을수록 자율주행 데이터는 기하급수적으로 축적된다. 이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AI를 학습시키고 완전자율주행 기술을 완성한다는 머스크의 장기 전략이 가시화되면서, 테슬라 주가는 제조업의 주가수익비율을 벗어나 빅테크 수준의 멀티플을 적용받기 시작했다. 핵심은 데이터다. 전 세계 도로를 누비는 수백만 대의 테슬라 차량이 실시간으로 주행 데이터를 전송하고 있다. 이 데이터 규모는 경쟁사들이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이다. 투자자들은 이 데이터 격차가 테슬라의 가장 견고한 해자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로보택시,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 전환
투자자들의 핵심 베팅 대상은 2026년으로 예고된 로보택시 사이버캡의 상용화다. 이는 단순한 무인 택시 서비스가 아니다. 테슬라의 비즈니스 모델이 하드웨어 판매에서 소프트웨어 구독 및 서비스로 전환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원가 경쟁력 측면에서 로보택시는 기존 운송 서비스와 차원이 다른 구조를 갖는다. 운전자 인건비가 없고, 전기차 특성상 유지비가 낮으며, 24시간 가동이 가능하다. 머스크는 로보택시의 마일당 운영 비용을 대중교통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우버나 리프트 같은 기존 차량 호출 서비스가 경쟁하기 어려운 가격대가 형성된다. 플랫폼 비즈니스로의 확장도 핵심 구상이다. 테슬라는 직접 로보택시를 운영하는 것을 넘어, 테슬라 차량 소유자들이 자신의 차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 로보택시로 대여해 수익을 창출하는 테슬라 네트워크를 구상 중이다. 이는 테슬라가 에어비앤비나 우버와 유사한 플랫폼 사업자로 진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량 판매 수익에 더해 플랫폼 수수료라는 반복 수익원이 추가되는 구조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진전이 있다. 완전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최신 버전에서 엔드 투 엔드 뉴럴 네트워크 방식을 도입하며 성능이 향상됐다. 인간이 코딩한 규칙이 아니라 AI가 영상 데이터를 보고 스스로 판단하는 방식이 정착되면서, 완전 무인 주행의 기술적 장벽이 낮아지고 있다는 인식이 투자 심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적 환경 변화, 규제 완화 기대감
최근 주가 상승의 강력한 촉매는 정치적 환경의 변화다. 자율주행 상용화의 최대 걸림돌은 기술보다 규제였다. 미국은 주마다 자율주행 규정이 달라 전국적인 서비스 확장에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머스크가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핵심 측근으로 부상하고 차기 행정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시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자율주행 관련 연방 규제를 단일화하고 완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테슬라가 규제 당국의 검증 과정을 신속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치적 베팅까지 가격에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웨이모나 크루즈 같은 경쟁사들이 갖지 못한 테슬라만의 차별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기술력과 무관하게 규제 환경에서의 우위가 시장 선점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옵티머스, 로보택시 너머의 성장 동력
로보택시가 중단기 모멘텀이라면,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는 장기적 성장 스토리의 핵심이다. 테슬라 공장에서 작업을 수행하는 옵티머스의 시연 영상이 공개될 때마다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다. 자동차 공장 자동화를 넘어 가정과 서비스 영역으로 확장될 범용 로봇 시장은 잠재적으로 자동차 시장보다 클 수 있다. 투자자들은 테슬라가 전기차 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배터리 기술, 모터 기술, 그리고 자율주행의 시각 AI 기술이 로봇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테슬라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 단순히 자동차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노동력 시장 전체에 베팅하는 것과 같다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장기 성장 스토리가 현재의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상반된 전망, 낙관과 신중론의 대립
현재 주가 수준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린다. 낙관론자들은 스마트폰 시장 초기에 애플이 그랬듯 모빌리티 혁명의 과실을 테슬라가 독식할 것으로 본다. 자율주행 데이터는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영역이며, 테슬라의 데이터 우위는 후발주자가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전기차 판매 마진은 줄어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판매와 로보택시 서비스의 마진율은 80~90%에 달할 수 있어 테슬라의 수익성이 빅테크 수준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된다. 반면 신중론자들은 현재 주가가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과도하게 선반영했다고 경고한다. 2026년이라는 시점은 머스크의 목표일 뿐 확정된 일정이 아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할 경우 규제가 강화되고 상용화 시점이 무기한 연기될 수 있다. 중국의 바이두, 미국의 웨이모 등 경쟁자들의 기술력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특히 라이다 없이 카메라만으로 자율주행을 구현하려는 테슬라의 접근법이 악천후 등 극한 상황에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술적 의문도 제기된다. 본업인 전기차 판매가 장기 부진에 빠질 경우 현금 흐름 악화로 연구개발과 AI 인프라 투자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 요인이다.
■차가 아닌 미래에 대한 베팅
테슬라의 최근 주가 상승은 전기차는 수단일 뿐 본질은 AI라는 시장의 합의가 만들어낸 결과다. 투자자들은 이번 분기 차량 판매 대수보다 머스크가 제시한 2026년 로보택시 상용화가 실현될 것인지에 베팅하고 있다. 테슬라는 단순한 주식 종목을 넘어 기술이 인류의 이동 방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거대한 실험대가 되었다. 2026년 운전자 없는 로보택시가 도로 위를 달리는 날이 온다면 현재 주가는 저평가였던 것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그 약속이 또다시 지연된다면 주가 조정의 폭도 상당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현재 테슬라 투자자들이 자동차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미래를 파는 회사와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미래가 현실이 될지 여부는 2026년이라는 시간이 증명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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