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돌아보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좋았던 순간만 골라 기억하기엔 지나온 시간이 너무 길고, 그렇다고 모든 장면을 공평하게 나열하기에는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2025년의 게임들을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먼저 든 생각은 하나였다. '올해는 유난히 재밌게 한 게임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특정 작품 하나가 모든 것을 집어삼킨 해는 아니었지만, 대신 장르와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수작들이 쉼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게임은 끝까지 붙잡고 있었고, 어떤 게임은 짧게 플레이했지만 또렷한 인상을 남겼다. 이 글은 그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남았던 경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록에 가깝다.
한 해 동안 만난 게임들을 정리하고 그중에서도 '올해를 대표해도 좋겠다'고 생각한 작품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 과정이다. 정답을 정하려는 시도라기보다는, 2025년이라는 시간을 게임으로 기억하는 나름의 방식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모바일 부분에서는 마비노기 모바일이 단연 돋보인다.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이 지닌 태생적 한계와 라이브 서비스 특유의 반복 구조 속에서도, 마비노기 모바일은 '모바일 MMORPG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비교적 정공법으로 답한 작품이다.
원작의 감성을 가져가면서 모바일 환경에 맞게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읽혔고, 그 결과물 역시 납득 가능한 수준으로 정리됐다. 적어도 올해 모바일 게임을 돌아봤을 때 이 작품의 존재감은 분명했다.
PC·콘솔 부문으로 시선을 옮기면 입이 닳도록 칭찬해도 모자랄 작품들이 즐비했다. 개인적으로는 클레르 옵스퀴르: 33원정대, 스플릿 픽션, 포켓몬스터 레전즈 za, 디지몬 스토리 타임 스트레인저 등의 게임들을 즐겁게 플레이했다.
장르도 결도 접근 방식도 제각각이지만, '플레이하는 시간 자체가 즐거웠다'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이 목록에 오르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11월 말과 12월 초를 2025년으로 친다면, 가장 최근에 만난 작품인 '산나비: 귀신 씌인 날'과 '아이온2' 역시 인상 깊게 즐긴 게임이다. 출시 시점이나 플랫폼을 떠나, 이 두 작품은 연말에 접어든 시점에서도 충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여운을 남겼다.
플레이했을 때의 '개인적인' 즐거움을 잠시 배제하고 작품 그 자체의 완성도만 놓고 보더라도, 올해는 유독 칭찬받아 마땅한 타이틀이 많았다.
하데스2, 킹덤컴: 딜리버런스 2, 할로우 나이트: 실크송, 데스 스트랜딩 2: 온 더 비치, 고트 오브 요테이, 사일런트 힐 f, P의 거짓: 서곡, 퍼스트 버서커: 카잔, 아크레이더스, 몬스터 헌터 와일즈 같은 작품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장르의 문법을 확장하거나, 최소한 높은 완성도를 증명해냈다. 물론 사일런트 힐 f나 몬스터 헌터 와일즈의 경우 게임성 부분에서 논란이 있었으나, 장르팬들의 상업적 지지는 충분히 받아낸 상태다.
이 중 일부는 아직 충분히 플레이하지 못했거나 개인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만든 게임'이라는 평가를 주저 없이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서브컬처 장르에서는 듀엣 나이트 어비스와 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를 모두 즐겁게 플레이했다. 특히 듀엣 나이트 어비스는 개인적으로 극호하는 장르인 루트슈터를 표방한 작품으로, 말 그대로 루트슈터에 서브컬처 스킨만 입힌 느낌에 가깝다.
가장 파격적인 지점은 BM에서 전통적인 뽑기를 과감하게 제외했다는 점인데, 이 역시 대부분의 루트슈터 장르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따르는 선택이다. 시간을 어느 정도 들여야 하는 구조인 만큼 메인 게임으로 잡아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그럼에도 시스템 자체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점이 인상적이다.
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 역시 서브컬처 장르 특유의 감성과 로그라이크 덱빌딩 구조를 결합하며 꾸준히 손이 가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일련의 논란들과 각종 잡음, 로그라이크 덱빌딩과 서브컬처 공식 문법의 괴리 등은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다.
라이브 서비스 신작 가운데서는 단연 아이온2가 돋보였다.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재밌게 즐긴 게임 중 하나다. 출시 전후로 다양한 화제를 모았던 라이브 서비스 신작 중에서는 '연운'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 특유의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이들 작품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용자를 붙잡아 두는 힘을 보여줬다.
앞서 언급했듯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장르는 PC MMORPG나 루트슈터 쪽에 가깝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올해는 내러티브와 게임성,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라는 요소를 보다 깊게 바라보려 했다. 단순히 오래 붙잡고 있었느냐가 아니라, '이 게임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그 말이 게임이라는 매체 안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됐는가'를 기준으로 다시 한 번 되짚어본 셈이다.
2025년은 툭 튀어나온 하나의 절대적인 지배자가 존재한 해는 아니었다. 대신 장르별로, 플랫폼별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작들이 고르게 쏟아져 나온 한 해였다. DLC를 제외하고 게임의 작품성과 개인적인 플레이의 즐거움을 모두 감안했을 때, 올해의 게임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으로 꼽은 타이틀은 바로 '클레르 옵스퀴르: 33원정대'다.
올해 포켓몬스터 레전즈 za가 기존 포켓몬스터 특유의 턴제 전투에서 탈피해 실시간 배틀을 도입하며 주목받았다면, 33원정대는 그보다 앞선 시점에 출시돼 턴제 전투의 묘미를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지난해 발더스게이트3의 흥행 이후, 많은 게이머들이 장르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고 이런 방식의 게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33원정대의 등장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턴제 전투를 기반으로 한 JRPG 스타일의 게임은 여전히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장르다. 33원정대는 이 진입 장벽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전투 시스템을 정교하게 벼려놓았다. 완성도 높은 그래픽과 함께 패링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기존 턴제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이용자에게도 새로운 재미의 출구를 마련했다.
아울러 플레이어의 전략적 판단뿐 아니라 패링을 통한 반사신경, 이른바 '피지컬'적인 요소가 함께 요구되면서 전투의 흥미를 끌어올렸다. 턴제의 전략성 안에서 플레이어를 나누고, 그 안에서도 또 한 번의 손맛 차이로 장벽을 만들어낸 구조는 분명 신선했다.
JRPG 시스템에 영향을 받은 모습을 보이면서도 이를 프랑스 감성의 세련된 연출로 풀어낸 점 역시 매력적이다. 여기에 독창적인 스토리와 세계관, 캐릭터들이 덧입혀지며 겉보기에도 플레이하기에도 모두 만족스러운 작품이 완성됐다. 전투의 타격감, 전반적인 그래픽과 사운드 등에서도 뚜렷한 약점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플레이하는 동안 '아쉽다'는 감정이 먼저 들지는 않았다.
물론 게임의 특성상 극 후반부로 갈수록 고조되는 스토리와 달리, 유저는 전투에 점차 익숙해지고 캐릭터는 강해지면서 일정 부분 괴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난이도 조절을 통해 완화할 수 있는 수준이며, 엔딩 이후 이어지는 스토리에서 발생하는 인플레 역시 큰 문제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33원정대는 올해라는 시점을 대표하기에 가장 균형 잡힌 선택지였다.
돌아보면 2025년은 게임을 고르는 일이 유난히 어려웠던 해였다. 선택지가 많았고, 이유도 많았다. 보통 압도적인 체급의 게임이 하나 존재하거나 졸작들이 넘쳐날 때 선택은 쉬워진다. 올해는 반대의 경우로, 수작들만 유난히 눈에 띄는 해였다. 그래서 이 한 작품을 꺼내는 일 역시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있다. 플레이하는 동안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고, 엔딩 이후에도 여러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다른 선택이 더 설득력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위의 작품들이 한 해를 대표해도 좋겠다고 느껴진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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