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신문 = 조수빈 기자] 이재명 정부가 5년간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의 운용 방향을 자문할 전략위원회 공동위원장에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을 앉히면서, 생산적 금융 거버넌스의 핵심 축에 민간 자본시장 인사를 전면 배치했다. 정부가 정책자금을 AI·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으로 흐르게 하겠다고 한 만큼, 이를 실제 투자로 연결해온 인물을 전면에 배치해 펀드의 실행력을 끌어올리려는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성장펀드는 정부보증채권 75조원과 민간자금 75조원을 합쳐 150조원 규모로 조성된다. 이 자금은 AI, 반도체, 바이오, 로봇 등 첨단 전략산업과 관련 생태계를 지원하는 데 쓰인다. 향후 5년간 AI(30조원), 반도체(20조9000억원), 모빌리티(15조4000억원), 바이오·백신(11조6000억원), 2차전지(7조9000억원) 등에 민관 자금을 배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성장펀드 전략위원회는 정부와 민간 전문가가 함께 펀드의 운용 방향과 재원 배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자문 기구로 설계됐다.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포함해 박현주 회장과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아 향후 펀드 운용 전략과 실행 방안을 자문하는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 150조 국민성장펀드, 이재명 정부 ‘20년 성장전략’ 청사진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 자본이 직접 성장의 결실로 환원되는 ‘포용적 혁신 금융’ 모델을 제시하고, 산업 전환기에 대응하는 20년 장기 성장엔진 구축을 국가 비전으로 설정했다.
즉, 국민성장펀드는 단기적 경기 부양책이 아니라 민관 공동의 성장형 투자 구조를 제도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기존 정책펀드와 차별화된다.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 역시 “국민성장펀드는 대한민국 산업의 혁신 수요와 금융 자본공급 능력이 만나는 결정적 접점”이라며, “앞으로 20년간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을 마련하는 여정이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이에, 지방정부와 산업계를 중심으로 벌써 100건이 넘는 투자 제안이 접수됐으며, 그 규모는 총 153조원을 넘어선다. 정부는 이달 중 ‘기금운용심의회’를 정식 출범시키고, 연내 ‘1호 투자 프로젝트’ 후보군을 확정할 계획이다. 현재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기반시설 구축, 전남 해남 국가 AI 컴퓨팅센터 조성 등이 유력한 초기 사업으로 거론된다.
■ 박현주가 선택된 이유…‘1000조 운용’과 AI·반도체 투자 경험
국민성장펀드 전략위원회에 박현주 회장이 공동위원장으로 합류한 배경에는 1997년 창립 이후 30년에 걸쳐 미래에셋을 글로벌 종합자산운용그룹으로 성장시킨 경영 경험과 AI·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 대한 선제적 투자 역량이 자리한다.
미래에셋그룹의 총 고객자산(AUM)은 올 7월 기준 1024조원에 이르며, 국내 752조원·해외 272조원으로 약 7대 3 비중을 형성하고 있다. 자본금 100억원으로 출발한 회사가 30년 만에 1000조원대 운용그룹으로 성장한 사례는 국내 자본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사례다.
미래에셋은 해외 대체투자와 ETF·공모펀드 등 다양한 운용 영역을 아우르며 장기 분산투자 모델을 구축해왔다. 2025년 상반기 기준 그룹 세전이익 1조4305억원 중 약 33%(4776억원)를 해외에서 벌어들이며 글로벌 비즈니스의 안정성을 입증했다. 이러한 글로벌 자본운용 구조와 리스크 관리 체계는 국민성장펀드가 지향하는 ‘시장 친화적·민간 협력형 장기자본 운용’과 방향을 같이한다는 평가다.
또 미래에셋자산운용은 AI, 반도체, 전기차, 클린에너지 등 첨단산업을 테마로 한 ETF 상품을 국내 시장에 앞서 출시하며 성장산업에 대한 투자 레퍼런스를 쌓아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TIGER 반도체TOP10 ETF’의 10월 말 순자산은 1조6355억원으로, 국내 주식형 반도체 ETF 가운데 최대 규모다. AI 관련 글로벌 ETF 시리즈 역시 꾸준히 확장하며 첨단산업 투자 기반을 넓혀왔다.
박 회장은 국민성장펀드 출범식에서 “지속가능하고 더 큰 펀드로 발전하도록 경쟁력 있는 시스템 구축에 조언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언제까지나 관이 주도할 수는 없고 민간이 벤처캐피털(VC)에 참여할 길도 터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이 발언을 단기 이벤트성 정책펀드를 반복하지 않고 민간 자본과 함께 시장 친화적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연결해 해석하고 있다. 즉 국민성장펀드가 민간 위험자본을 끌어들이고 글로벌 혁신기업까지 연결하는 새로운 성장 금융 모델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속에서 박현주 회장의 글로벌 투자 경험과 모험자본 철학이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 미래에셋 1호 IMA, 민간 모험자본 ‘실무 엔진’ 부상
국민성장펀드가 이재명 정부의 생산적 금융 구상 아래 추진되는 ‘국가 프로젝트’라면 초대형 증권사의 IMA(기관종합투자계좌)와 발행어음은 민간 자본을 모험자본 영역으로 흘려보내는 실무 엔진 역할을 한다. 미래에셋증권은 국내 1호 IMA 인가를 확보한 데 이어, IMA와 발행어음을 합산해 자기자본의 최대 300%까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며 모험투자 여력을 키웠다.
미래에셋증권은 2025년 6월 말 기준 별도 재무제표상 자기자본 10조2639억원, 발행어음 잔액 8조307억원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IMA·발행어음 조달액의 25%를 2028년까지 모험자본에 공급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지만, 동시에 ‘넉넉한 한도’를 바탕으로 우량 딜을 선점할 수 있는 탄탄한 자본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나이스신용평가는 IMA 인가 관련 보고서에서 “모험자본 영역의 높은 신용·유동성 리스크를 고려할 때, IMA와 발행어음 사업 성과는 선별적 자산 인수와 정교한 위험관리 능력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고수익을 노리는 공격적 운용이 아니라, 투자대상 검증과 스트레스 테스트 등 내부 리스크 관리 체계가 핵심 성공 변수라는 의미다.
미래에셋증권은 원금지급 의무를 지는 실적배당형 IMA 1호 상품 출시를 시작으로, 배당형·프로젝트형(혁신성장 기업 편입) 상품으로 라인업을 넓혀갈 계획이다. IMA·발행어음 조달액의 25%가 AI·반도체·바이오·로봇 등 국민성장펀드가 겨냥하는 영역과 국민성장펀드·BDC·벤처펀드 투자로 채워지면서 정책펀드와 민간 모험자본 공급 체계가 자연스럽게 겹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 전략위원회 공동위원장에 박현주 회장이 합류하고, 미래에셋증권이 1호 IMA 사업자로 모험자본 공급 최전선에 선 만큼 이재명 정부 ‘생산적 금융’ 구도에서 미래에셋의 존재감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며, “정책펀드와 민간 자본의 실질적인 가교 역할을 어느 정도까지 해낼지 주목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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