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현대자동차(005380)와 기아(000270)의 독주가 구조로 굳어지면서, 국내 자동차시장의 또 다른 얼굴도 함께 선명해졌다. 점유율 90%가 넘는 양강 체제 아래에서 △르노코리아 △KG 모빌리티 △한국GM 3사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는 단기 실적 부진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구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에 가깝다. 그들은 구조적 경쟁력이 약화된 조건 속에서 생존전으로 내몰렸다.
올해 1~11월 세 브랜드의 국내 판매량은 9만9042대(△르노코리아 4만7500대 △KG 모빌리티 3만7590대 △한국GM 1만3952대), 점유율은 7.93%다. 11월만 놓고 보면 7669대(△르노코리아 3575대 △KG 모빌리티 3121대 △한국GM 973대), 점유율은 6%대에 그쳤다.
위에서부터 르노코리아, KGM, 쉐보레 로고. ⓒ 각사
한 달의 성적표만 놓고 보면 일시적 부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월별 흐름을 넓게 보면 반등의 기미를 찾기 어렵다. 문제는 얼마나 덜 팔렸느냐가 아니라, 왜 구조적으로 회복이 어려워졌느냐에 있다.
◆한두 개 모델 의존…생존형 포트폴리오
세 브랜드의 공통된 특징은 판매가 특정 차종에 과도하게 쏠려 있다는 점이다. 시장을 지탱하는 다층적인 포트폴리오보다는 한두 개 히트 모델로 버티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
르노코리아는 그랑 콜레오스, 한국GM은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내수판매를 사실상 떠받치고 있다. KG 모빌리티는 토레스를 축으로 무쏘 EV와 액티언이 일부 역할을 하고 있으나, 한 모델의 신차효과가 꺾이는 순간 실적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이 구조가 '버틸 수는 있어도, 쌓을 수는 없는 전략'이라는 점이다. 모델 노후화나 시장 트렌드 변화가 겹치는 순간 리스크가 급격히 확대된다. 주력 모델의 판매가 흔들리면 이를 보완할 대안이 부족해 전체 실적이 그대로 흔들리는 구조다. 현대차·기아가 △차급 △파워트레인 △가격대를 촘촘히 나눠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것과 대조적인 지점이다.
그랑 콜레오스는 함께 타는 가족구성원 각자의 다양한 취향과 요구를 세심하게 고려한 패밀리 SUV다. ⓒ 르노코리아
특히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하이브리드가 대세로 자리 잡은 이후 나머지 3사는 더욱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하이브리드는 이제 친환경차의 한 갈래가 아니라 구매 판단의 기본 조건에 가까워졌다.
문제는 이 수요를 체계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라인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일부 차종에 하이브리드가 도입됐거나 도입이 예고돼 있지만, 차급 전반을 아우르는 선택지로 보기에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선택지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단순한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개발 투자·상품 전략이 장기간 누적돼야 가능한 영역이라는 점에서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
◆틈새전략 한계→경쟁무대 상실
세 브랜드의 전략은 서로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국내 시장에서 확장 전략을 제대로 취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내수를 핵심 성장 무대로 삼기보다는 수출이나 특정 틈새 수요에 의존하는 방식이 굳어졌다.
이 전략은 글로벌 차원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브랜드 존재감을 점점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판매량 감소는 곧 딜러망·정비 인프라·중고차 가치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소비자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는다.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 ACTIV. ⓒ 한국GM
현대차·기아 중심으로 재편된 유통·서비스 환경 속에서 소규모 브랜드일수록 체감 경쟁력은 더 빠르게 떨어진다.
중요한 점은 이들 브랜드가 경쟁을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경쟁이 가능한 무대 자체가 좁아졌다는 사실이다. 하이브리드와 SUV 중심으로 재편된 시장, 촘촘해진 신차 사이클, 브랜드 내부 경쟁까지 감안하면, 나머지 3사가 정면 승부를 벌일 수 있는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선택지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특정 차급·콘셉트에 더 깊게 파고드는 초집중 전략, 다른 하나는 국내 시장 비중을 줄이고 글로벌 역할에 무게를 두는 전략이다.
◆같은 결론, 다른 붕괴의 방식
또 세 브랜드는 모두 같은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지만, 그 한계가 드러나는 방식은 브랜드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한국GM은 내수붕괴가 가장 극명한 사례다. 수출 중심 전략이 생존 공식으로 굳어지면서, 국내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사실상 소멸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국GM은 이제 한국에서 '팔기 위해 존재하는 회사'라기보다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회사'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르노코리아는 올해 그랑 콜레오스를 앞세워 내수판매 반등에 성공했지만, 동시에 브랜드 체력은 약화되는 모순적인 국면에 놓여 있다. SM6와 QM6가 단종 수순에 들어가면서 세단 공백과 엔트리 모델 부재가 동시에 발생했고, 파워트레인 선택지도 제한적이다.
토레스 하이브리드는 전기차의 정숙성과 높은 연비효율을 동시에 제공한다. ⓒ KG 모빌리티
결과적으로 '팔리는 차는 있지만, 브랜드로서의 체력은 약해졌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단기 실적과 중장기 생존 가능성이 분리돼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단일 모델 성과로 브랜드 전체를 지탱해야 하는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KG 모빌리티는 세 브랜드 중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기업 정상화 이후 일정 수준의 브랜드 신뢰 회복에는 성공했지만, 신규 고객 유입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릴 만한 동력은 아직 부족하다.
연간 내수 3만~4만대는 자체적으로는 의미 있는 성과지만, 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이다. 전동화 전략 역시 시장 기대에 비해 속도가 더딘 상황으로, 구조적으로 '버티는 단계'를 넘어설 동력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독주체제 속 다가올 선택의 시간
2025년 국내 자동차시장은 현대차·기아 독주가 구조로 굳어졌음을 확인한 해였다. 동시에 나머지 3사에게는 '현상 유지로는 버틸 수 없다'는 신호가 분명해진 시점이자 소비자가 이 브랜드를 선택해야 할 명확한 이유가 흐릿해졌다.
이들이 다시 존재감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시장 구조가 바뀐 지금의 판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독주 체제의 그늘 아래에서 이제 남은 것은 선택의 문제다. 버틸 것인가, 바꿀 것인가. 그 선택의 결과는 2026년 이후 국내 자동차시장의 또 다른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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