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다가오면 으레 헬스장 등록과 닭가슴살 주문이 폭주하던 풍경이 바뀌고 있다. 무작정 굶거나 맛없는 음식을 참아내는 고통스러운 다이어트 대신, 즐겁게 건강을 관리하는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가 소비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2030 세대를 중심으로 급부상한 ‘저속노화(Slow Aging)’ 트렌드가 기름을 부었다. 단순히 젊어 보이는 외모를 넘어 신체 기능을 오랫동안 건강하게 유지하려는 욕구가 2025년 식품 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식품업계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맛과 편의성을 무기로 했던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이제는 영양 성분표를 깐깐하게 따지는 스마트 컨슈머를 겨냥해 '성분 전쟁'에 돌입했다.
◇ "흰쌀밥은 옛말"... 즉석밥 시장, 잡곡으로 승부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한국인의 주식인 밥상에서 일어나고 있다. 탄수화물 과잉 섭취의 주범으로 몰렸던 즉석밥 시장이 잡곡과 특수 곡물로 체질 개선을 시도 중이다.
하림은 자사의 즉석밥 브랜드 ‘더미식 밥’의 라인업을 14종까지 확대했다. 기존 백미 중심의 시장 구조를 귀리, 메밀, 흑미, 현미 등 다양한 잡곡으로 재편하겠다는 의도다. 눈여겨볼 점은 공정 방식이다. 곡물 특유의 거친 식감이나 즉석밥 특유의 이취를 잡기 위해 보존료 없이 100% 쌀과 물만 사용했다. 냉수가 아닌 온수로 뜸을 들이는 공정을 도입해 포장 필름과 밥알 사이에 공기층을 형성, 눌리지 않은 고슬고슬한 식감을 구현한 점은 기술적 차별화 포인트로 꼽히다. 이는 건강을 챙기면서도 밥맛은 포기할 수 없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고든 전략으로 풀이된다.
◇ 의학 전문가와 손잡은 유업계... '저당·고단백' 공식 확립
마시는 음료 시장에서는 '설탕 빼기'와 '단백질 더하기'가 필수 공식이 됐다. 매일유업은 아예 '저속노화'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저속노화 식단 전도사로 불리는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와 공동 개발한 ‘매일두유 렌틸콩’이 대표적이다.
이 제품은 정 교수가 주창한 마인드(MIND) 식단의 핵심인 렌틸콩을 주원료로 채택했다. 현대인의 과도한 당 섭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탕을 배제하고, 190mL 한 팩당 당류를 1.5g 수준으로 낮췄다. 대신 식물성 단백질 9g과 식이섬유 3g을 채워 영양 밀도를 높였다. 단순한 신제품 출시를 넘어 의학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제품 신뢰도를 확보하려는 시도는 식품업계의 새로운 마케팅 문법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 피자집에서 단백질을 찾다... 경계 무너지는 외식업계
고칼로리 정크푸드의 대명사로 불리던 피자 프랜차이즈의 변신도 흥미롭다. 도미노피자는 사이드 메뉴인 스파게티 면을 닭가슴살 소재로 교체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했다.
새로 출시된 ‘치즈 볼로네즈’에 적용된 하이프로틴 치킨면은 단백질 함량이 약 13g에 달한다. 달걀 2개 분량의 단백질을 면 요리로 섭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도미노피자 측 데이터에 따르면 구매자의 과반수(54.5%)가 2030 세대였으며, 특히 남성 고객 비중이 60%를 넘어섰다. 운동과 식단 관리에 민감한 젊은 남성층이 피자를 주문할 때 죄책감을 덜 수 있는 대안으로 해당 메뉴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2025년은 '건강한 음식은 맛이 없다'는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지는 원년이 될 것"이라며 "단순히 칼로리만 낮추는 것을 넘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균형을 맞추고 노화 속도까지 고려한 정교한 제품들이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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