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핌리코 로드가 조용한 설렘으로 들썩이고 있다. 일상과 오브제, 작가적 감성까지 아우르는 JW 앤더슨의 홈웨어 플래그십이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옷보다 홈 컬렉션을 전면에 내세운 이 공간은 단순한 상점이라기보다, 센 강에서 줄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화제가 될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는 조나단 앤더슨의 취향과 미감을 그대로 옮겨 놓은 큐레이션에 가깝다.
내부에 들어서면 흔히 기대하는 포근한 홈웨어 매장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빗겨간다. 대신 공간을 채우는 건, 차분하지만 분명한 취향의 무게다. 흰색 벽돌과 벨벳 패널이 어우러진 내부는 전시장을 겸한 아티스트의 스튜디오처럼 느껴지고, 미니멀한 선반과 페그 디스플레이는 오브제 하나하나가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긴다. 2,400스퀘어피트 규모로 구성된 두 개 층에서는 홈 컬렉션을 중심으로 패션과 아트 피스, 오브제가 자연스럽게 뒤섞이며, 이 공간이 단순한 매장이 아닌 하나의 큐레이션 장면임을 분명히 한다.
조나단 앤더슨의 취향은 홈 오브제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패션 디자이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살아가는 방식'을 제안하는 사람이다. 테이블웨어 섹션에 놓인 니콜라스 모스의 샴록머그는 어린 시절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돼지 문양 아카이브와 함께 아일랜드 공예의 소박함을 그대로 담았다. 멜린 트레그윈트의 블랭킷은 웨일스 직물의 전통을 이어받아 포근함을 넘어 텍스처 자체가 예술이 되고, 무라노 유리 피처는 빛이 스며들 때마다 공간을 달라 보이게 만든다.
폴리 리스터의 더 다이웍스와의 협업 쿠션이나 라벤더 필로우는 식물 염료로 물들인 색감이 은은하게 퍼져, 공간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영국 아티스트 키라 프레이의 조형미가 돋보이는 벽등과 조각들. 그리고 금속과 패브릭 등이 얽힌 형상은 촛불 모티브를 빌려 미묘한 긴장감을 주는데 이게 바로 조나단이 사랑하는 '불완전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이 새로운 플래그십은 단지 쇼핑 공간이 아니다. 패션, 오브제, 아트,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사물.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서사로 얽히는 무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조나단이 오래전부터 분명히 해온 기준이 있다.
It’s things that I either want to wear or want to live with
"내가 입고 싶거나, 함께 살고 싶은 것들이에요." 이 말은 오늘, 런던 핌리코 로드의 한 건물 안에서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 옷 한 벌보다 더 많은 의미를 지닌 하루의 선택들이 이곳에서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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