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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데이터처가 지난 1월부터 소비자물가지수(CPI)를 5년 만에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작업에 돌입한 상황에서 안형준 데이터처장은 이렇게 말했다. 데이터처는 내년 말 발표한 소비자물가지수 개편안에 간편식(밀키트)·클라우드 저장공간 이용료 등 최근 급증한 지출 항목이 새로 포함하고, 이미 소비 비중이 크게 줄어든 품목들은 제외되거나 가중치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안 처장은 “물가 통계는 국민이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영역인 만큼 현실 반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과거보다 훨씬 생활에 가까운 물가 지표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물가 지수는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 기준에 맞춰 5년에 한 번씩 손질되지만, 최근의 변화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크다. 1·2인 가구가 급증했고, 집에서 식사와 영화 등 문화생활 등 소비를 많이 하는 경향이 늘었다. 디지털 서비스는 필수 지출로 자리잡았고, 구독경제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
안 처장은 “국민이 실제 쓰는 항목과 통계에 반영된 항목이 다르면 물가 지표가 현실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소비 패턴변화의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밀키트’다. 5년 전만 해도 일부 가구의 편의식(食)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편의점·마트뿐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가정식 중 주요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안 처장은 “밀키트는 이미 하나의 재화로서 소비 비중이 상당하다”며 “이런 소비 변화를 물가가 따라가지 못하면 체감 물가와 통계가 계속 괴리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변화는 ‘클라우드 저장공간 이용료’다. 과거에는 이동식 저장장치(USB) 등을 구매해 쓰는 형태였지만, 지금은 대부분 월정액 기반의 클라우드로 이동했다. 그럼에도 이 비용은 통계에 반영되지 않았다. 안 처장은 “예전에는 USB나 외장하드를 들고 다녔지만 지금은 누구나 사진·영상·문서를 클라우드에 보관한다”며 “필수 지출인데도 물가 항목에는 없었는데 이번 개편에 반영해 실제 생활과 물가 지표와의 괴리를 줄이고자 한다”고 했다.
가중치도 바꾼다. 안 처장은 “물가 지수는 어떤 품목을 포함하느냐보다 ‘얼마나 소비되는가’를 나타내는 가중치 변화가 훨씬 더 민감한 부분”이라며 “국민이 실제로 많이 쓰는 영역의 무게를 제대로 반영해야 정책 판단도 정확해진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1년 발표한 개편안에선 전세, 온라인 콘텐츠 이용료, 입원 진료비, 외래 진료비, 건강기능식품 등의 가중치는 늘리고 해외단체 여행비, 휴대전화료, 중학생 학원비, 휘발유, 사립학교 납부금, 도시가스, 시내버스료 등은 줄였다.
이에 소비자물가지수의 품목과 가중치 개편은 단순한 통계 조정이 아닌, 우리 사회의 소비·생활 구조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공식 데이터에 새로 새겨 넣는 과정인 셈이다.
개편된 물가 지수는 내년 말부터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새 기준이 도입되면 기존 지수보다 물가가 소폭 높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지만, 이는 오히려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한 결과라는 게 데이터처의 설명이다.
안 처장은 “물가 지표는 국민이 가장 자주 접하는 통계”라며 “항목 몇 개가 달라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국민 생활·산업 구조·정부 정책의 방향까지 바꿀 수 있는 변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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