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가 44년 숙원사업인 '한일해저터널' 건설의 해결을 위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 여야 정치권에 전방위로 접근했다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잇는 200㎞ 길이의 해저 터널은 부산이 시작점으로, 한일해저터널은 한일 양국의 협의 없이는 건설이 불가능하다. 통일교는 자신들의 숙원사업 실행을 위해선 정치권의 도움이 절실했고 이를 위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부산 지역 유력 정치인들에게 접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도 특검 진술에서 정치인 청탁의 현안으로 '해저터널'을 지목한 만큼 터널 건설을 명목으로 금품을 건넸다면 이번 금품수수 의혹에 연루된 여야 정치인들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세계본부장으로부터 더불어민주당 전·현직 의원 2명의 금품 수수 관련 진술을 받았다고 알려졌으나 관련 의혹이 여야 정치인 5명으로 늘어났다.
특검팀은 최근 5명 중 3명을 금품 수수 혐의자로 적시해 경찰에 사건을 인계했다. 특검과 경찰이 공식적으로 피의자들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의혹을 받는 3명은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했으나 혐의자로 적시되지 않은 2명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며 5명 모두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한일 200㎞ 해저터널로 연결, 1981년 문선명 첫 언급
한일해저터널 사업은 부산에서 시작해 대한해협과 대마도를 건너 일본 규슈까지 200㎞의 거리를 바다 아래로 철길을 깔아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사업이다. 1981년 통일교 주최 국제행사인 '제10회 국제과학통일회의(ICUS)'에서 문선명 통일교 초대 총재가 처음으로 한일해저터널을 언급하며 통일교의 대표 숙업사업으로 떠올랐다.
무려 44년이 된 사업 구상으로, 이 때문에 통일교가 여야를 막론하고 과거부터 정치권 유력 인사들에게 전방위 로비를 했을 가능성이 거론되며 경찰 수사에 따라 의혹 관련자들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1981년 11월 당시 문선명 초대 총재는 "(한일 해저터널이) 건설되면 아시아 국가들은 고속도로로 연결돼 하나 될 수 있다"며 해저터널의 사업성을 강조했고, 1990년 5월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일본 국회 연설에서 한일 해저터널을 공식 제안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부산시장이 직접 추진 의사를 말하는 등 정치권에선 오래전부터 거론됐던 주제다.
하지만 100조 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천문학적 건설비와 긴 거리를 바다 밑으로 연결한다는 구상에 국민적 관심이 적어 정치인의 선거철 공약 수준에 머물렀다.
통일교는 교단의 숙원사업인 만큼 해결을 위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 로비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부산이 시작점…부산서 정치인 공약으로 수차례 나와
윤 전 본부장이 특검 조사에서 전재수 의원에게 현금과 시계를 전달한 시점을 2018년 8월로 진술해 2010년 들어 통일교가 부산지역에서 자주 행사를 개최했고 행사 자리에 정치인들의 참여도 다수였다는 점이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통일교는 '세계피스로드재단' 등을 설립해 한일 해저터널 건설에 공을 들였다. 터널의 시작점으로 통일교 내에서 유력하게 검토된 곳이 부산이어서 부산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에게 전방위로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교는 문선명 초대 총재가 추진 의사를 밝힌 숙원사업을 실행할 핵심 인물을 '부산시장'으로 보고 부산시의 협조를 위해 꾸준히 접촉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통일교는 꾸준히 해당 사업 성사를 위해 부산 정치권과 접촉해 왔다. 윤 전 본부장이 전재수 의원의 이름을 거론한 2018년 9월 부산 5지구 모임 외에도 2008년엔 부산 한일터널연구회가 꾸려졌다.
2022년에는 통일교 관련 단체가 부산에서 개최한 'Think Tank2022' 영남권 출범 희망전진대회에도 지역 정치권 인사 다수가 참여한 바 있다.
전재수 의원 이전에도 2016년 12월엔 서병수 당시 부산시장은 시 자체 예산으로 '한일 해저터널'의 기초연구 학술용역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동명대 총장이었던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터널 추진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밝혔으며 전 의원은 당시 부산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이기도 했다.
2021년 부산 시장 보궐선거 때는 김종인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부산을 방문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적극 지지하며, 부산 가덕도와 일본 규슈를 잇는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박형준 당시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는 당의 방침을 수용하다가 민주당이 '친일 공약'이라고 비판하자 "경제적 타당성 조사부터 선행돼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통일교와 민주당 의원 간 가교 구실을 한 것으로 의심받는 임종성 전 의원은 국회의원 당선 첫해인 2016년 12월 8일 통일교 유관 단체인 남북통일운동국제연합, 세계평화터널재단과 함께 '한·일 해저터널의 필요성과 과제'를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다. 임 전 의원은 2018년 문 총재 서거 4주기 추모제에도 참석했다.
윤영호, 특검 진술서 '해저터널' 전재수 청탁현안으로 지목
통일교 2인자였던 윤영호 전 본부장은 지난 8월 특검 진술에서 전재수 의원에게 현금 4000만원과 명품시계 2점을 제공했다고 말하며 청탁 현안으로 통일교 숙원사업인 '한일 해저터널' 추진을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 의원이 통일교 행사에 참석하는 등 적극적으로 교류한 정황도 드러났다. 그는 2018년 5월 부산 벡스코에서 통일교가 주최한 '2018년 희망전진결의대회'에 참석해 한학자 총재와 와인을 마시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 총재의 자서전을 들고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으며 통일교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한 바 있다. 통일교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전재수 의원이 부산 통일교 행사에 참석해 여러 현안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강제수사가 이뤄진 15일 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단연코 분명히 불법적인 금품 수수 등의 일은 추호도 없었다"며 금품 수수 의혹을 부인했다.
현재 대한석탄공사 사장인 김규환 전 의원도 같은 날 국가수사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일교로부터 불법적인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 세상을 살다가 죽고 싶을 만큼 억울한 게 뭔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윤영호라는 사람과는 전화 한 통도 한 사실이 없다. 확인되지 않은 범죄자 한마디 말로 명예를 실추시킨 것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전했다.
박형준 부산시장, 통일교 행사에 축사…서병수·오거돈도 축사
전재수 의원이 통일교 관련 행사에 축사를 한 데 이어 박형준 부산시장도 통일교 행사에 영상축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일교 파문 불똥이 국민의힘 소속 박형준 부산시장과 서병수 전 부산시장, 민주당 소속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게도 옮겨 붙기 시작한 것이다.
16일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박형준 시장은 2021년 통일교 우호 단체인 천주평화연합 주최 '씽크탱크 2022' '신통일한국 안착을 위한 영남권 희망전진대회'에서 영상 축사를 했다. 2022년 2월 한반도 평화서밋 100만 구국구세 희망전진대회에서도 영상으로 축사한 것이 확인됐다.
서병수 전 부산시장도 통일교 유관 단체가 주최한 '피스로드(Peace Road) 2015' 부산 출발식 참석해 축사를 했으며 2016년 11월엔 '서부산 글로벌시티 그랜드플랜' 발표하며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핵심 공약사업으로 포함했다. 2017년에는 부산시 예산으로 '한일해저터널 기초연구 용역' 발주하기도 했다.
민주당 소속 오거돈 전 부산시장도 지난 2019년 '유라시아 대륙의 환경변화와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 포럼에 참석해 한일 해저터널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에 친필 사인을 하며 당시 축사를 통해 "한일 해저터널 연구와 남북열차 연결 시 부산은 물류 도시로서 위상을 높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도시"라고 말했다.
정치권 안팎 "與, 통일교에 타격…부산시장, 지방선거 바로미터"
정치권 일각에서는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이 부산시장 지방선거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현재 전재수 의원은 민주당의 부산시장 유력 후보이며 박형준 현 부산시장 또한 국민의힘 후보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에 대적할 것으로 예상됐던 전 의원이 수사 결과에 따라 출마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민주당의 지방선거 구도 전체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동훈 개혁신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11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 에서 "수사 결과에 따라서 전재수 장관이 낙마하게 된다면 여권 입장에서는 선거 구도 전체가 흐트러진다"며 "부산이 서울, 경기와 함께 승패의 바로미터 구실을 할 텐데 (전 의원이) 남은 6개월의 시간 동안 어떻게든 해명하고 풀어서 선거가 나가겠단 의미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시그널>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같은 라디오에서 "전재수 의원 한 사람이 한일해저터널을 할 수 없다. 말 그대로 해저보험으로 PK 기반을 닦아두는 것"이라며 "문선명 사망 이후 교세가 급격하게 기울어진 통일교가 유지를 위해 정치권의 힘이 필요했고, 명분으로 해저터널을 활용한 것 같다. 정치권과 긴밀한 유착 관계로 접어드는 연결고리로 해저터널을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에서 "전재수 의원이 내년 과연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까지 든다"며 "전재수 의원과 통일교를 연결시켜준 또 핵심 키포인트, 브릿지 역할을 한 사람이 등장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했다. 김현정의>
장 소장은 "전 의원이 정치적으로 파고를 넘겼으면 좋겠지만 통일교가 국민들에게 주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있지 않나. 통일교의 한학자 총재 자서전을 들고 사진을 찍고 하는 것은 다른 이미지를 줄 수 있어 대단히 조심스러워 했어야 된다"고 질책했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같은 라디오에서 "한학자 특별보고를 보면 2019년 1월 7일 오후 2시에 'TM 일정 전재수 국회의원'이라고 쓰여 있다"며 "직접 트루 마더를 만나 전재수 의원이 경배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만났다는 정황이 있다. 2018년 12월 27일 전재수 미팅도 적혀 있다고 하는데, 전 의원이 해명을 했기 때문에 현재로선 나머지 증거들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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