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한수지 기자] 태종의 셋째 아들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공개됐다.
16일 방송된 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2’ 15회에서는 조선의 4대 왕위를 놓고 뒤바뀐 운명을 맞이한 태종의 셋째 아들 세종대왕과 적장자로 14년간 왕세자의 자리를 지킨 양녕대군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날 역사 커뮤니케이터 최태성은 “백성을 사랑한 어진 임금이자 조선의 황금기를 이끌며 대왕으로 칭송받는 세종은 사실 왕이 될 운명은 아니었다”라며 “적장자도 왕세자도 아니었던 세종이 어떻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라고 운을 뗐다.
이어 최태성은 세종과 양녕대군의 성장 배경을 설명하며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다. 부왕 태종은 다섯 번째 아들로서 피로 물든 권력 다툼을 벌여 왕이 됐기에 자신의 후계자를 정함에 있어서는 장자 세습을 이어가고자 적장자였던 양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했다.
적장자였던 양녕은 외교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무예 실력이 출중해 아버지를 쏙 빼 닮았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고. 하지만 그는 왕위 세습을 ‘떼어 놓은 당상’으로 여기고 학문을 멀리한 것도 모자라 여자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일탈을 일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태성은 “태종은 양녕의 스승을 모두 파직시키고, 환관들에겐 양녕 대신 벌을 주기도 했다”라며 “그럼에도 양녕은 바뀌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화가 난 태종은 24시간 감시망을 풀가동했다.
이에 반해 세종대왕의 왕자 시절이었던 충녕대군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한 번 책을 잡으면 셀 수 없이 반복하여 읽었고, 서예와 그림, 꽃과 수석, 거문고와 비파 등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에 통달했다. 충녕을 다른 자식보다 특별히 아꼈던 태종은 그가 책만 읽어서 병이 날까 두려워 글 읽는 것을 금지하기까지 할 정도였다고. 왕으로서의 자질이 충분했지만 충녕은 적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왕위 세습에서 늘 배제돼 있었다.
양녕의 위태로운 일탈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도 태종은 적장자의 왕위 세습을 고수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종이 적장자 후계를 포기하고 세자 폐위를 논하기로 결단을 내린 사건이 발생했다.
양녕은 첫번째 스캔들이 발각되자, 개구멍을 통해 기생 소앵을 세자궁에 출입시켰다. 이후 양녕은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될 여인과 세번째 스캔들이 일었다. 그가 아버지 태종의 형이자 조선의 2대 왕 정종이 가까이 했던 기생 초궁장을 건드린 것.
“양녕은 초궁장이 큰아버지의 여인인 걸 몰랐냐”라는 김동현의 질문에 김경수 교수는 “실록에 의하면 상황인 정종이 일찍이 이 기생을 가까이했는데 세자가 이를 알지 못했다고 기록됏다. 세자가 몰랐다는 걸 굳이 기록했다는 것이 어색하다. 태종이 미리 손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이 상황 자체가 도의적으로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다”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양녕은 아버지의 명을 어기고 몰래 매를 키우다가 또 발각이 됐다.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기 커녕 아프다는 핑계로 누워있었다고. 결국 분노한 태종은 양녕을 향해 왕위에 대한 살벌한 경고를 날렸다.
그렇게 충녕은 양녕대군의 왕세자 폐위 후 차기 세자로 책봉됐고, 그로부터 두 달 뒤 태종은 충녕에게 왕위를 양위하게 된다. 한글 창제를 비롯해 과학, 농업, 기술, 문화, 예술 등 눈부신 업적을 이룩한 위대한 성군 세종대왕이 탄생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를 들은 김동현, 권혁수, 백지헌은 “하마터면 세종대왕이라는 위인을 못 만날 뻔했다”, “아직까지 한글이 아닌 한문을 공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운명이었던 것 같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한수지 기자 hsj@tvreport.co.kr / 사진= 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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