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국가가 일정 부분을 먼저 보전한 뒤 사후에 회수하는 이른바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안이 다시 검토 단계에 들어갔다. 피해 규모가 계속 확대되는 가운데 정부 책임론이 재부상했지만, 재정 부담과 형평성 논란, 회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여전해 제도 도입까지는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는 지난 11월 한 달 동안 세 차례 전체회의를 열어 1624건을 심의했고, 이 중 765건을 전세사기 피해자로 추가 인정했다. 이에 따라 위원회 출범 이후 최종 가결된 전세사기 피해자는 총 3만5264명으로 늘어났다. 피해 인정 사례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보다 직접적인 피해 회복 방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 회복 대안 가운데 하나로 선구제 후회수 방식의 제도화 가능성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 12일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가 먼저 지급하고 이후 구상권을 행사하는 법안이 이미 국회를 통과했음에도 이전 정부에서 거부됐다"며 "공식적으로 약속한 사안인 만큼 준비해 별도로 보고하라"고 지시한 이후 관련 검토가 본격화됐다.
선구제 후회수는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이 임차보증금 반환채권을 먼저 매입해 피해자에게 보증금을 지급하고, 이후 해당 주택을 경매나 공매로 처분해 투입 자금을 회수하는 구조다.
이 방안은 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강하게 추진했던 정책 가운데 하나로,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최종 폐기된 바 있다.
국토부는 당시 법안 내용을 토대로 제도의 현실성을 다시 점검하고 있다. HUG 등 공공기관이 피해자의 반환채권을 평가해 주택도시기금으로 매입하고, 최우선변제금 수준을 웃도는 보증금 일부를 우선 지급한 뒤 향후 전세사기 주택 매각 등을 통해 회수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다만 제도가 현실화될 경우 사회적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다단계 사기나 보이스피싱 등 다른 유형의 사기 피해와 비교해 전세사기에만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형평성 문제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주택시장 안정과 서민 주거 지원을 위해 조성된 주택도시기금을 사실상 사기 피해 보전에 활용하는 데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대위변제액 추이. = 박선린 기자
주택도시기금은 국민주택채권과 청약저축 등을 재원으로 임대주택 공급, 신생아 특례대출,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 다양한 주거 정책에 사용된다. HUG가 보유한 여유 자금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 쓰여야 할 공적 재원이라는 점에서, 이를 임차보증금 반환채권 매입에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져 왔다.
실무적인 난제도 만만치 않다. HUG의 전세보증채권 회수율이 70%대까지 개선되긴 했지만 전액 회수에는 이르지 못했고, 이미 부실화된 반환채권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회수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잣대가 부족하다는 점 역시 제도 설계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같은 이유로 선구제 후회수 방안은 정책 논의 과정에서 여러 차례 등장했지만, 실제 실행 단계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선구제가 도입되더라도 피해액 전부를 보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공적 기금을 투입한 뒤 회수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제도 자체가 또 다른 논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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