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반년, 건설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급격한 환경 변화를 맞고 있다.
가계부채 관리 강화와 세 차례에 걸친 부동산 정책, 산업재해 무관용 기조가 동시에 작동하며 건설사의 경영 전략은 '확장'이 아닌 '선별과 생존'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대출 규제와 PF 경색 속에서 건설사들은 알짜 정비사업과 리스크가 낮은 해외 EPC에 집중하고 있으며, 반복된 산업재해는 국정감사를 통해 경영진 책임 문제를 전면에 끌어올렸다.
정책·금융·안전이라는 세 개의 추가 동시에 건설업계를 짖누른다.
공급 확대 여부와 대출 규제 조정 방향에 따라 내년 건설사의 희비는 더욱 뚜렷하게 갈릴 전망이다.
<뉴스락>뉴스락>은 새 정부 정책 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10대 건설사의 전략 변화와, 그 명암을 가르는 향후 변수들을 짚어본다.
생존 택한 10대 건설사, 미래 대신 '알짜 정비사업'으로 유턴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어느덧 6개월이 흘렀다. 이 짧은 기간 새 정부는 3차례에 걸친 부동산 정책을 통해 대출 규제를 재정비하고 토지거래허가제 개선, 정비사업 제도의 유연화 등 시장 전반의 틀을 손질했다.
특히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가 유연해지자 대형 건설사들은 수주 전략을 민간 정비사업 중심으로 재편하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건설사들도 일제히 '수익성 우선의 알짜 정비사업'과 '안전한 해외 EPC(설계·조달·시공)시장'이라는 두개의 안전지대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10대 건설사들은 PF 경색과 고금리 상황을 반영해 '미래 신사업 기반의 질적 성장'을 목표로 내걸었으나, 이 정부의 정책 기조가 겹치면서 행보는 급격히 '생존을 위한 극한의 선별 수주'로 회귀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탈(脫) 주택'을 선언했던 대형 건설사들이 돈이 되는 알짜 정비사업으로 유턴했다는 점이다.
PF 시장의 돈줄이 끊기자 조합원 자금 동원력이 확실한 서울 강남권과핵심지의 재건축·재개발 사업만이 유일한 현금 확보 창구가 됐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국가사업을 포기하고 하이엔드에 올인했다.
연초 SMR(소형 모듈 원전), 수소 등 미래 신사업 선점을 강조했던 현대건설은 수익성 최우선 기조를 선언하며 가덕도 신항 공사 수의계약을 파기하는 초강수를 뒀다.
비수익성 국가 사업을 포기하는 대신, 강남권 하이엔드 정비사업에 집중하며 포트폴리오를 '고마진 알짜 사업'위주로 재편했다. 이는 '리스크 없는 사업만 한다'는 건설업계의 뉴노멀을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삼성물산·DL이앤씨는 리스크 제로를 향한 수축 경영에 들어갔다.
삼성물산은 바이오·친환경 등 그룹 EPC 및 리스크 최소화를 기조로, 해외 대형 플랜트와 서울 핵심 재건축 등 초우량 사업만 선별적으로 참전하며 국내 시장의 변동성을 극단적으로 회피했다.
한편, 가장 보수적인 행보를 보인 DL이앤씨는 CCUS(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 기술) 등 신사업 확대 목표에도 불구하고 주택 부문에서 극단적인 선별 수주로 전환했다. 수주 물량 감소를 감수하고 수익성이 낮은 지방 PF 사업장은 과감히 배제하며 '현금 흐름 중심 경영'에 올인했다.
롯데건설은 유동성 방어와 재무 총력전을 벌였다.
'NEW Spirit' 등 기업 문화 혁신을 강조했던 롯데건설은 PF 경색의 직격탄을 맞으며 전략을 전면 수정에 들어갔다.
PF 우발채무 해소 및 그룹 차원의 유동성 확보에 경영 역량을 집중하며, 혁신보다 생존을 위한 현금 방어전이 최우선 목표로 전환됐다.
이는 재무 건전성 위기가 모든 성장 전략을 덮어버린 대표적 사례 꼽힌다.
포스코이앤씨·대우건설은 안전 리스크를 무릅쓴 외형 방어에 나섰다.
포스코이앤씨는 반복된 중대재해로 안전 리스크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노량진·여의도 등 상징성이 큰 정비사업에 공격적으로 참전하며 국내마진 확보와 외형 방어에 집중했다.
대우건설 역시 중대재해 Zero를 목표로 내걸면서도, 해외 거점을 활용한 플랜트 수주와국내 핵심 지역 수주를 병행하며 안정적인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시도했다.
이재명 정부의 '산재 무관용'...건설사들 '식음땀'
올해 건설업계를 뒤흔든 이슈는 단연 연이은 사건·사고였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는 국토부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 중 삼성물산과 SK에코플랜트, GS건설을 제외한 7개 건설사 CEO와 CSO가 대거 국감 증인 대상으로 채택되며 건설사 전반에 긴장감이 돌았다.
증인 명단으로는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 김보현 대우건설 대표, 송치영 포스코이앤씨 대표, 여성찬 DL건설 대표, 박현철 롯데건설 대표,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 조태제 HDC현대산업개발 CSO가 출석해 질의를 받았다.
각 건설사는 안전 책임 외에도 사업 유형별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집중 추궁당했다.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는 가덕도 신항 건설공사 수의계약 파기 문제와 윤석열 전 대통령 관저 공사 특혜 의혹 등으로 핵심 증인으로 채택돼 국가 사업 포기에 대한 윤리적 책임과 공정성 확보 방안에 대한 심문을 받았다.
또 근로자 사망 사고 등 중대 산업재해 발생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질의도 이어졌다. 이날 국감에서 이 대표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성찬 DL건설 대표는 DL그룹 총수 대신 계열사 대표가 출석하며 DL그룹 차원의 중대재해 책임 문제를 집중적으로 질타받았으며, 안전 분야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와 경영진의 책임 강화 방안을 추궁당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부실시공 관련 혐의를 받고 있는 조완석 금호건설 대표는 자진 출석하며 오송 참사 시공사로서의 윤리적 책임과 재발 방지 대책을 소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질적 성장 전환 여부가 명운 가른다"... 10대 건설사의 향후 5년 전망
[뉴스락 미니 인터뷰] 최산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건설산업을 둘러싼 정책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가계대출 관리 강화, 부동산 규제 조정, 산업재해 무관용 기조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건설사들은 수익성 중심의 선별 수주와 리스크 관리 강화로 빠르게 방향을 틀었다.
최산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뉴스락>뉴스락>과 인터뷰를 통해 변화의 구조적 배경과 향후 정책 보완 방향을 짚었다.
정책의 미세 조정과 구조 개선 병행 필요
"가계부채 관리 틀 유지하되, 거래 정상화 위한 미세조정 불가피"
최 부연구위원은 내년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에 대해 "가계부채 관리라는 큰 틀은 유지되겠지만, 시장 유동성 위기와 거래절벽을 완화하는 방향으로의 미세 조정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는 "서울을 중심으로 가격이 급등하는 흐름이 나타날 경우, 정부가 검토 중인 보유세 조정 카드가 내년 하반기나 2027년 상반기쯤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보유세 인상은 단기적으로 매물 출회를 유도할 수 있지만, 임대료 상승과 실수요자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규제 강화가 아니라, 실수요 중심의 선택적 완화를 통해 왜곡된 거래 흐름을 정상화하는 것"이라며 "거래가 살아야 가격 왜곡이 줄고, 실수요 이동도 원활해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국민이 체감하는 가장 큰 불안 요인은 여전히 서울·수도권 공급 부족"이라며 "도심 정비사업이나 리모델링처럼 공급 효과가 비교적 빠른 영역에서 절차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PF 특별보증·미분양 환매 효과...지원 속도·공사비 현실화가 관건"
건설사 유동성 위기 해소 방안과 관련해 최 부연구위원은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중소건설사 PF 특별보증, 미분양 안심환매 등은 현장의 숨통을 트는 효과가 분명히 있고 실제로 접수와 집행이 진행 중"이라면서도 "이제는 정상화 가능 사업장에 자금이 신속히 도달하도록 지원 속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금융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공사비 현실화, 물가 연동 공공공사 예정가격 조정, 안전관리비 구조 개선 등 비용 구조 전반을 함께 손보지 않으면 유동성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산재 무관용 시대..."안전 투자는 비용 아닌 수주 경쟁력"
올해 국정감사에서 대형 건설사 CEO들이 대거 증인으로 채택된 배경에는 '산업재해 무관용'이라는 정부 기조가 자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 부연구위원은 "안전 리스크 관리는 더 이상 현장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CEO가 직접 책임지는 핵심 경영 과제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 인력 확충, 장비 교체, 공정 관리 강화로 단기적인 비용 부담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중대사고 발생 시 공사 중단, 손실, 신뢰도 하락, 입찰 제한 등을 감안하면 안전 투자는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손실 리스크를 줄이고 수익 구조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공공공사나 해외 프로젝트에서는 안전 관리 역량 자체가 수주 경쟁력"이라며 "안전 투자는 기업 가치와 직결된 필수 투자"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문제는 이러한 초기 비용을 기업이 전적으로 부담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정부의 역할을 주문했다.
"스마트 안전 기술 지원·안전관리비 현실화 병행돼야"
최 부연구위원은 산업재해를 줄이면서도 건설사의 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실질적 지원책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스마트 안전 기술 도입에 대한 지원 강화다. 그는 "AI 영상 모니터링, 스마트 추락 방지 장치, 근로자 위치·위험 감지 센서 등은 효과가 입증됐지만 초기 도입 비용이 높아 중소·중견사에는 진입 장벽이 크다"며 "보조금, 투자세액공제, 시범사업 확대 등을 통해 정부가 초기 부담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는 공사 원가 내 안전관리비 산정 기준의 현실화다. 그는 "현행 기준은 실제 현장에서 요구되는 인력과 장비, 스마트 기술 비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며 "공공공사를 중심으로 안전관리비를 독립적이고 필수적인 원가 항목으로 명확히 반영하고, 물가와 공사 특성에 연동해 조정하는 구조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급 확대 신호는 필요하지만, 단기 해법은 아니다"
향후 주택 공급 확대 가능성에 대해 최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내년 이후 건설사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공급 확대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은 높다"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2026년 국토교통부 예산안에 반영된 공적주택 공급 물량 등을 감안하면, 이는 단기적인 공급 부족 해소라기보다는 중장기 시장 안정 신호에 가깝다"며 "재정 여건과 인허가, 사업 준비 기간을 고려할 때 공급 확대만으로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는 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공급 확대가 건설사에 새로운 일감을 대규모로 제공하기보다는 제한적인 보완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며 "PF 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공급 확대는 오히려 지방이나 수요 불확실 지역의 부실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1기 신도시도 알짜 선별 수수...상징 단지는 경쟁 격화
1기 신도시 재건축·재개발 수주전 전망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는 수익성 우선, 리스크 최소화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분당·일산·평촌 등에서도 입지 경쟁력이 높고 사업성이 명확한 단지에 대형사들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며 "사업 기간이 길거나 공사비 조정 리스크가 큰 단지는 상대적으로 외면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주택 사업 비중이 높고 연간 수주 목표 압박이 큰 회사의 경우, 브랜드 노출 효과가 큰 상징적 대단지에서는 수익성이 다소 낮더라도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며 "구간별로 양극화된 수주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질적 성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가 향후 5년 명운 가른다"
미래 신사업을 둘러싼 건설사들의 전략 변화에 대해 최 부연구위원은 "단기 위기 이후 다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와 같이 PF 리스크와 고금리, 분양 침체가 겹친 환경에서는 신사업 확대보다 재무 안정성과 현금 흐름 관리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며 "당분간은 정비사업과 해외 EPC 중심의 생존 모드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시장 여건이 안정될 경우, 이미 사업 경험과 기술을 축적한 대형사를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SMR, 수소, CCUS 분야에서 신사업 확대가 다시 시도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삼성물산처럼 리스크 최소화 전략을 택한 기업은 외형 성장은 느리지만 안정적인 전환 여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포스코이앤씨처럼 주택 비중이 높은 기업은 단기 실적 방어에는 유리하지만, 경기 회복 지연 시 중장기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 부연구위원은 "이번 위기 이후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느냐가 향후 5년간 건설사들의 명운을 가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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