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머니=홍민정 기자] 인공지능(AI) 거품론이 재부상하며 글로벌 증시 전반을 강타했다. 미국 주요 AI 관련 대형주의 재정 부담이 부각되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됐고, 국내 증시 역시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코스피는 1.84% 하락한 4090.59로 거래를 마쳤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주가 일제히 급락했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메타, 아마존, 알파벳, 오라클 등 미국 주요 빅테크 4개사는 올해 가을 AI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약 880억달러(약 129조7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JP모건은 투자적격 등급 기업들의 AI 관련 자금 조달 규모가 2030년에는 1조5000억달러(약 22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AI 거품론은 2022년 챗GPT 등장 이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초기에는 주가 밸류에이션 과열 논란이 중심이었으나, 최근에는 기업들의 대규모 자금 조달에 따른 재무 부담과 신용 리스크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기업 신용 위험을 반영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가격 급등이 시장 불안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오라클의 경우 2026회계연도 2분기 실적에서 클라우드 매출이 시장 기대치를 하회하며 투자자 우려를 키웠다. 이에 따라 회사채 매도세가 확대됐고, CDS 프리미엄은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CDS는 기업 부도 시 손실을 보전받는 보험 성격의 상품으로, 신용 위험이 커질수록 가격이 상승한다.
브로드컴 역시 향후 AI 반도체 수주잔고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 12일 주가가 11.4% 급락했다. 엔비디아 주가도 같은 기간 5% 넘게 하락했다. AI 산업 전반의 성장 기대가 흔들리자 미국 기술주 그룹과 연계된 CDS 거래량은 9월 초 이후 약 90%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적 전망도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7대 기술주의 내년 순이익 증가율은 18%로 예상돼 최근 4년 사이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는 대규모 주주환원 정책 영향으로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전환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국발 악재는 아시아 증시 전반으로 확산됐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1.84% 하락했으며,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1.31%, 대만 자취안지수는 1.17% 각각 떨어졌다. 외국인 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9590억원을 순매도했고, 기관도 4830억원을 팔았다. 반면 개인 투자자는 1조4230억원을 순매수하며 하락장을 방어했다.
국내에서는 반도체주의 약세가 특히 두드러졌다. 삼성전자는 3.49% 하락한 10만5100원에 장을 마감했고, SK하이닉스는 장중 한때 6% 넘게 급락한 뒤 낙폭을 줄였지만 결국 12.98% 내린 55만4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에이비엘바이오는 각각 4.73%, 3.05% 상승하며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증시 급락을 단기 조정 국면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고 진단한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AI 산업의 중장기 성장성과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이번 조정은 과도한 기대와 현실 간 괴리를 좁히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단기적으로 미국 기술주 약세가 국내 반도체주에 부담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인내심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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