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이후, 역설적으로 ‘전세사기 빌라’가 경매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매물로 부상하고 있다. 서울 남부지방법원 앞에는 경매가 시작되기도 전에 수백 명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들이 몰리는 것은 단순한 저가 매물이 아니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제공하는 ‘인수조건변경’ 물건 때문이다. 부동산 규제 강화로 아파트 매수 문턱이 높아진 가운데,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 투자 가능한 빌라 경매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모습이다.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는 10·15 대책 이후 아파트 거래 규제가 대폭 강화됐다. 규제지역 확대에 더해 취득 후 2년 실거주 의무가 도입되면서 실수요자뿐 아니라 투자자들의 접근이 눈에 띄게 줄었다.
반면 빌라의 경우 토지거래허가 대상이 아니고, 실거주 의무도 없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경우 세제 혜택도 가능해 투자자들이 몰릴 만한 여건이 만들어졌다. 특히 전세사기 빌라는 1억~3억대의 소액 물건이 많아 접근성이 월등히 높다.
빌라, '토허제 대상도 아니고 실거주 의무'도 없어
이런 흐름 속에서 가장 강력한 매력으로 꼽히는 것이 HUG의 인수조건변경 제도다. 해당 조건이 붙은 경매 물건은 낙찰가만 지불하면 전세보증금 잔액을 추가로 부담할 필요가 없다. 즉, 보증금 2억원이 걸린 빌라가 1억원에 낙찰되더라도, 매수인은 나머지 1억원을 갚지 않아도 된다.
부족분은 기존 집주인에게 구상되기 때문에 매수인에게는 사실상 리스크가 크게 줄어든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HUG도 부실채권을 회수하고, 매수인도 부담을 덜어주는 구조”라며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거래’라고 설명한다.
이 제도로 인해 경매장에서는 상상 이상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남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된 경매는 보통의 종료 시간인 오후 1시를 넘겨 오후 3시까지 이어졌고, 참석자가 너무 많아 집행관이 교체되는 이례적인 상황도 발생했다.
현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투자자가 10개 물건에 입찰해 5개를 한꺼번에 낙찰받는 일도 있었다. “신규 임대사업 시장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특히 재개발·재건축 예정 지역의 전세사기 빌라는 ‘없어서 못 사는’ 수준으로 인기가 치솟고 있다.
조합 설립 이전 단계라면 빌라 매수자도 조합원 지위를 확보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높은 개발 이익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실례로 최근 경매에서 감정가가 3억 원대였던 신정동 인근 빌라는 4억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돼 감정가를 1억 이상 웃돌기도 했다. 반면 외곽 지역 물건들은 몇천만원에 거래되며, 소액으로 월세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의 관심도 꾸준하다.
경매 물건 중 상당수가 인수조건변경이 붙어 있다는 점도 시장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부 경매일에는 전체 출품 빌라의 90%가 이 조건을 포함한 물건이었을 정도다. 임차인 대항력 등 복잡한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낙찰가 외 추가 비용 발생 가능성이 낮아 ‘안전한 경매’로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기만 보고 무턱대고 입찰하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인수조건변경이 붙지 않은 일반 물건을 헷갈려 잘못 입찰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고, 일부 빌라는 문제가 복잡해 몇 달 만에 재매각으로 다시 나오는 경우도 있다. 가격만 보고 섣불리 뛰어들기보다는 권리관계와 현황을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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