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연말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을 일단락하고 내년도 사업 전략 수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지정학 리스크, 원화 약세 등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요 기업들은 인공지능(AI)을 차기 경영의 핵심 축으로 삼아 선제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내부 경쟁력 강화의 방향이 AI 전환으로 모아지고 있다”며 “각 그룹이 조직 개편과 동시에 사업 전략의 흐름을 ‘AI 중심 구조’로 다시 짜고 있다”고 말했다.
◆ 삼성전자, 글로벌 전략회의로 ‘AI 로드맵’ 정교화
삼성전자는 16일부터 사흘간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어 2026년 사업 계획과 중장기 전략을 점검한다. 매년 6월과 12월 열리는 이 회의는 전영현 DS(반도체)부문장 부회장, 노태문 DX(세트)부문장 사장 주재로 주요 경영진과 해외법인장이 참석해 그룹 차원의 경영 목표와 투자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올해 하반기 회의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AI’다. 삼성은 반도체·모바일·가전 등 모든 사업영역에서 AI 내재화를 가속화하며 ‘AI 드리븐 컴퍼니(AI-Driven Company)’ 전환을 전사적으로 추진 중이다.
DS부문은 HBM4 중심의 고객 맞춤형 메모리 전략, 엔비디아 GPU(그래픽처리장치) 5만장을 활용한 ‘AI 팩토리’ 구축,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핵심 과제를 다룰 것으로 전해졌다. DX부문은 갤럭시 스마트폰과 TV 등 주요 제품의 AI 기능 강화, 소비자 경험 기반의 데이터 분석·판매 전략이 논의 대상이다.
삼성전기의 패시브 부품 AI 설계, 삼성SDI의 AI 품질관리, 삼성디스플레이의 생산 자동화 AI 도입 등 전 계열사도 연말 전략회의를 통해 관련 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 LG, 사장단 회의 후 ‘AX 전환’ 속도전
LG그룹은 지난 10일 구광모 회장이 주재한 CEO 사장단 비공개 회의를 통해 내년 경영방향을 확정했다. 회의에는 40여명의 최고경영자가 참석해 올해 사업 성과를 공유하고 인공지능·바이오·클린테크(ABC) 중심의 신성장 전략과 AI 전환(AX) 속도 제고 방안을 논의했다.
류재철 LG전자 사장과 김동춘 LG화학 사장 등 신임 CEO들도 처음으로 자리했다. LG는 그룹 차원의 ‘AX(AI Transformation)’ 전략에 따라 제조·서비스·연구·영업 등 전 조직 프로세스를 AI 기반으로 전환하고 있다.
LG전자는 오는 19일 류재철 사장이 주관하는 확대 경영회의를 열어 본사·사업본부·해외법인 간 AI 추진 현황과 내년 실행 계획을 점검할 예정이다. LG 관계자는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모든 사업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변화가 올해 조직 개편에도 반영됐다”고 전했다.
◆ SK, ‘O/I’ 혁신 모델로 그룹 AI 체질 강화
SK그룹은 이른 시점부터 내년도 사업 구상을 마무리하고 AI 전략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10월 사장단 인사와 11월 CEO 전략 세미나를 통해 그룹 경영의 핵심 방향으로 ‘O/I(Outside-In)’ 방식을 확정했다. 외부 데이터를 경영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반영하는 AI 중심 경영 혁신 체계다.
SK하이닉스는 지역별 AI 리서치 센터 설립으로 글로벌 고객 대응력을 높이고 HBM 중심의 AI 반도체 경쟁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CEO 직속으로 AX 전담조직을 신설해 생산·물류·에너지 효율 관리의 AI 통합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SK 관계자는 “AI가 데이터를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단계”라며 “각 계열사별로 실행 가능한 AI 모델을 빠르게 적용하는 게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 현대차, 모빌리티·신에너지 ‘투트랙’ 전략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번 주 사장단 인사를 마무리하는 즉시 본격적인 경영 전략 수립에 돌입한다. 글로벌 관세 리스크와 공급망 불안에 대응해 지역별 맞춤형 판매·생산 거점을 강화하고 하이브리드·EREV(장거리 주행 전기차)·수소차 등 ‘탄력적 친환경 라인업’ 확대 전략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로보틱스, UAM(도심항공모빌리티), AI 기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강화 등 미래 사업 확장도 주요 과제로 거론된다. 그룹 내부에서는 AI를 모빌리티 서비스 운영 전반에 결합해 차량·인프라·사용자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자는 논의가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 불확실성 속 ‘AI 중심 전환’ 가속
각 그룹의 공통된 화두는 AI다. 글로벌 지정학 리스크와 경기 둔화 등 외부 변수 속에서 ‘AI 경영 체계’를 새 성장 해법으로 보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주요 그룹은 CEO 직속 AI 조직 신설, 데이터 거버넌스 고도화, AI 윤리 기준 강화 등을 추진하며 경영·생산·영업 전반의 AI 내재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는 경쟁 우위의 기술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기본 인프라”라며 “2026년은 한국 기업 경영의 ‘AI 대전환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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