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백연식 기자] SK텔레콤과 알뜰폰 업계가 ‘사후 규제’ 도입 후 처음으로 망도매대가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협상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SK텔레콤의 경우 해킹 사고로 실적이 급감했고, 알뜰폰 업계의 경우 지난해 산업 전체가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특히 알뜰폰 업계의 경우 올해부터 전파사용료를 내고 있다. 그동안 중소 알뜰폰 업체는 면제됐던 전파사용료가 올해부터 20% 수준으로 부과되고 있고, 내년에는 50%, 2027년에는 100%를 납부해야 한다.
15일 이동통신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12월 초부터 알뜰폰 업체들과 망도매대가 관련 개별적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당초 지난 4월 협상을 시작했어야 하지만 SK텔레콤 해킹 사고로 논의가 지연됐다. 망도매대가는 알뜰폰 사업자가 이동통신사 망을 빌릴 때 지급하는 비용이다. 요금제 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도매대가 인하는 곧바로 알뜰폰의 가격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사전규제는 협상력이 약한 알뜰폰 사업자를 대신해 과기정통부가 망제공 의무가 있는 이동통신시장 지배 사업자인 SK텔레콤과 직접 망도매대가 협상에 나서는 방식이다. 반면 사후규제는 알뜰폰 업체와 망도매제공 사업자인 SK텔레콤이 먼저 협상한 뒤, 그 결과를 과기정통부에 보고하고 필요 시 정부가 이를 반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정부는 사후규제를 적용하더라도 일정한 대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해당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으며 고시에는 도매대가 기준 대신 ‘과도한 가격 인상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만 담겼다. 올해 초 발표된 정부와 SK텔레콤의 마지막 도매대가 협상의 경우 망도매대가 인하가 너무 소폭으로 이뤄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3월 법 개정으로 사전 규제에서 사후 규제로 바뀌었다.
관례 상 SK텔레콤이 먼저 망도매대가 협상을 진행한 후 KT와 LG유플러스가 협상하게 된다.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알뜰폰 업체가 도매제공을 요청한 날부터 60일 이내에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이후 SK텔레콤과 알뜰폰 업체는 협정 체결 후 30일 이내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과기정통부에 신고해야 한다. 정부는 신고 내용을 검토한 뒤 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15일 내에 해당 신고를 반려할 수 있다. 하지만 도매 대가 인상의 경우를 제외하고 정부가 반려하기는 쉽지 않다.
절차대로라면 이달 협상을 시작해 내년 3월 중순 종료된다. 기존 도매대가 적용이 종료된 지난 4월부터 약 1년만에 협상이 체결되는 셈이다. 이에 알뜰폰 사업자들은 “경영 불확실성이 크다”는 입장이다.
알뜰폰 도매대가 산정 방식은 종량제(RM)와 수익배분(RS)으로 나뉜다. RM은 알뜰폰 사업자가 통화·문자·데이터를 사용한 만큼 통신사에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이며, RS는 알뜰폰 업체가 통신사의 요금제를 재판매한 뒤 일정 비율을 도매대가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현재 알뜰폰 업체가 개별적으로 SK텔레콤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별 요구사항도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사전 규제 당시 요구했던 수준보다 더 나은 조건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뜰폰 업계 고위 관계자는 “전년 대비 RM 20% 인하를 SK텔레콤에게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알뜰폰 업계는 지난해 전체적으로 1.5%의 적자를 기록했고 전파사용료 납부 부담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상당 수준의 도매대가 인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알뜰폰 업계 요청사항에는 △지난해 5.1% 할인된 음성 도매대가 데이터(36.4%) 수준 할인 △종량제(RM) 도매대가 10%~20% 할인 및 수익배분(RS) 할인 확대 △연단위 선구매 제도 확대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SK텔레콤 역시 사정이 좋지 않다는 점이 있다. 올해 4월 해킹 이슈로 인해 올해 3분기 영업이익(연결기준)이 전년 동기 대비 91% 급감한 484억원이었다. SK텔레콤 실적만 반영하는 별도실적의 경우 적자였다. SK텔레콤도 앞으로 인공지능(AI) 등 비통신 영역에 투자해야 하고, 주파수 재할당 전제조건에 따른 5G 단독모드(SA) 전환에도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SK텔레콤 관계자는 “현재 협상 진행 중이며, 변경된 제도 취지에 맞게 성실히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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